고물가·집값 폭등에 신혼부부들 ‘반셀프 인테리어’ 도전

  • 주간동아
  • 입력 2025년 11월 16일 09시 35분


작업자 섭외, 현장 감독 힘들지만 비용 크게 줄고 만족도 높아

서울 서대문구에 있는 27년 차 아파트 주방을 ‘반셀프 인테리어’로 바꾸기 전(왼쪽)과 후 모습. 독자 제공
서울 서대문구에 있는 27년 차 아파트 주방을 ‘반셀프 인테리어’로 바꾸기 전(왼쪽)과 후 모습. 독자 제공
6월 혼인신고를 한 박모 씨(33·여)는 지난해 말 경기 용인 기흥구 마북동에 있는 32평형 구축 아파트를 4억 원대에 매입했다. 준공 30년이 넘은 이 집은 한 번도 교체하지 않은 창틀과 누렇게 변한 주방 수납장이 흘러간 시간을 숨김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더 깨끗한 집에서 신혼 생활을 시작하고 싶은 마음에 같은 생활권에 있는 신축 아파트를 직접 찾아가 보기도 했다. 그나마 저렴한 매물이 8억 원대. 대출을 최대로 받아도 살 수 없는 가격이었다.

신축을 찾아 가격이 더 싼 지역으로 눈을 돌리기엔 20년을 살아온 동네에 정이 너무 많이 들었다. 남편과 박 씨 모두 직장까지 20~30분이면 도착하고, 근처에 초중고교가 있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박 씨는 11월 10일 기자와 전화 통화에서 “주택 청약 당첨을 기대하기에는 자녀가 없어 청약 점수가 높지 않고, 앞으로 5~6년은 기다려야 할 청약 당첨을 위해 전세로 살기에는 요즘 전세 사기가 많아 마음을 졸일 것 같다”며 “사회 초년생인 30대 신혼부부에겐 구축 아파트를 매입한 뒤 리모델링해 사는 것 말고는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다”고 말했다.

30대 중심으로 인기 확산
그런데 어렵게 집을 산 박 씨는 비싼 인테리어 비용 앞에서 다시 한 번 계산기를 두드려야 했다. 인테리어 디자인부터 각 공정의 관리·감독까지 맡아 진행하는 ‘턴키(turn-key)’업체 네 곳에 문의한 결과, 높게는 1억 원까지 견적이 나온 것이다. 박 씨는 “2년 전 새롭게 고쳤다는 화장실을 빼고는 모든 방의 철거 작업부터 창틀·타일·문·문틀·붙박이장·마루 교체, 중문 설치, 도배까지 손댈 게 많았다”며 “턴키업체에서는 이것저것 포기해도 6000만~8000만 원은 든다고 했는데, 주택담보대출 원리금을 매달 80만 원씩 상환하고 있는 우리의 예산을 한참 벗어난 견적이었다”고 전했다.

6월 박 씨는 턴기 견적의 절반 수준인 3500만 원으로 한 달간 리모델링을 진행하고 성공적으로 입주했다. ‘반셀프 인테리어’를 진행한 덕이다. 반셀프 인테리어란 비전문가인 개인이 직접 공정별 작업자를 따로따로 섭외하고 현장에서 작업자들을 관리·감독하는 방식이다. 인테리어업체에 모든 공정을 일임하면 업체가 알아서 작업자를 섭외하고 작업별 일정을 조율하며 감리까지 진행하는 턴키방식과 대비된다. 턴키업체를 거치지 않고 직접 작업자와 거래하니 중간 마진을 아낄 수 있다. 시공까지 개인이 직접 하는 ‘셀프 인테리어’보다는 비용이 들지만 부담은 덜하다.

고물가와 집값 상승으로 경제적 부담이 커지면서 구축 아파트를 사서 반셀프 인테리어를 하는 신혼부부가 늘고 있다. 키워드 분석 플랫폼 ‘블랙키위’에 따르면 네이버에서 ‘반셀프 인테리어’ 검색량은 2022년 10월 1080건에서 올해 10월 1840건으로 3년 만에 약 70% 증가했다. 한 탄성코트 시공업자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시공업자와 직접 계약하려는 사람이 많아지는 추세”라며 “주로 30대 젊은 사람들의 문의가 많다”고 전했다.

턴키방식보다 비용을 절약하는 만큼 몸과 마음의 에너지는 더 많이 써야 한다. 1999년 준공된 서울 서대문구의 한 24평형 아파트를 올여름 매입해 최근 반셀프 인테리어를 끝낸 안모 씨(26·여)는 “철거, 전기, 목공 등 각 공정을 시작하는 날과 끝나는 날에는 반드시 현장에 가서 작업자들과 소통해야 했다”며 “아침 8시부터 현장에 나가 한두 시간 작업 상황을 확인한 뒤 택시를 타고 출근하곤 했다”고 말했다. 또 안 씨는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만 소음이 나는 작업을 할 수 있는 아파트라서 화장실을 드릴로 깨는 작업을 오후 5시에 진행하려는 작업자와 갈등을 빚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프리랜서로 일하는 덕에 공사 기간에 늘 현장에 있었다는 박 씨도 “한 달 넘게 인테리어를 공부한 뒤 공사를 시작했음에도 작업자끼리 쓰는 말을 못 알아들을 때가 많았는데, ‘이 정도는 알고 오셔야죠’라며 짜증을 내는 작업자도 있어 마음이 상했다”면서 “현장에 먼지가 많아 공업용 마스크를 쓰고 있었는데도 평소 앓고 있던 비염이 심해져 병원에 다니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턴키보다 꼼꼼하게 공사 가능한 게 장점”
부족한 예산에 ‘울며 겨자 먹기’로 시작한 반셀프 인테리어지만 경험자들은 “오히려 턴키보다 좋았다”는 반응이다. 21평형 구축 아파트를 반셀프 인테리어로 수리해 5개월째 살고 있다는 예비 신랑 A 씨는 “아까운 휴가를 현장 감독에 써야 한다는 단점은 있었지만, 신혼집이자 첫 보금자리를 내가 직접 만들었다고 생각하니 집에 대한 애정이 깊어져서 좋다”며 “모든 공정을 지켜보면서 미흡한 부분은 현장에서 확인하고 추가 작업을 요청한 덕에 턴키 견적보다 60% 저렴하게 진행했는데도 지금까지 하자가 전혀 없다”고 전했다.

안 씨도 “전체 인테리어 총금액을 정해놓고 공사를 시작하는 턴키업체는 낡은 전선 교체 등 하자로 보기 애매한 부분은 무시하고 공사하는 경우가 있는데, 반셀프 인테리어는 작업자들이 공정별로 돈을 받는 구조라 하자를 발견했을 때 이야기를 잘 해줘 좋다”며 “앞으로 인테리어를 할 때 예산이 충분하더라도 반셀프를 선택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인테리어 전문가들은 충분히 준비만 돼 있다면 반셀프 인테리어를 통해 집의 완성도를 더욱 높일 수 있다고 설명한다. 책 ‘반셀프 인테리어 교과서’를 쓴 이제희 디자이너는 “반셀프 인테리어 도중 포기하고 턴키로 바꾸려는 경우 맡아줄 업체를 찾기가 어려울 수 있다”며 “인테리어에 대해 충분히 공부하고,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문제들을 감안해 예산과 일정을 짠 뒤 반셀프 인테리어에 도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 기사는 주간동아 1514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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