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시절 어머니의 가정폭력 겪어
폭식-운동 강박으로 신체적 억압
◇헤비/키에스 레이먼 지음·장주연 옮김/392쪽·2만 원·교유서가
“당신에게 이 글을 쓰고 싶지 않았습니다.”
편지 형식으로 쓰인 이 책은 이렇게 시작한다. ‘당신’은 어머니다. 현대 흑인 문학을 대표하는 에세이스트인 저자가 자신의 유년 시절을 회고하면서 흑인 남성으로서 겪은 내면의 상처를 정면으로 마주했다.
서사의 큰 줄기는 어머니와의 관계다. 저자와 어머니는 사랑하면서도 동시에 폭력으로 점철된 관계였다. 그리고 이런 뒤엉킨 감정선은 저자의 ‘몸’을 통해 구체화된다. 어머니는 저자에게 “가장 친한 친구”라고 속삭이면서도, 말대꾸를 하거나 성적이 뛰어나지 않다는 이유로 온몸을 때리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저자의 기억에 오래 남았던 건 어머니가 저자의 옷을 모두 벗기고, 침대에 엎드리게 한 날이었다.
“당신은 내가 저항하지 못하도록 얼굴을 침대에 파묻게 했습니다. 매 맞는 건 물론 아팠지만, 아홉 살짜리의 벌거벗은 뚱뚱하고 검은 몸을 보면서도 그토록 세게 나를 때릴 수 있는 당신의 존재 자체가 훨씬 더 아팠습니다.”
그리고 이 상처와 결핍은 ‘헤비(Heavy)’라는 책 제목처럼 다시 ‘몸’의 무게로도 증명된다. 저자는 평생을 어머니의 사랑을 갈망하며 음식을 탐했다. 어머니와 사이가 안 좋아질 때마다 부엌으로 가 음식들을 먹어치웠다. 특히 자신을 사랑해 줬던 할머니의 땅콩버터와 배잼을 비웠다. 키가 175cm인 저자는 한때 131kg까지 몸이 불어났다.
그런 저자는 스스로를 보며 “살찐 쓰레기 같다”고 여겼다. 탈진할 때까지 달리면서 살을 빼는 데 강박적으로 매달리기도 했다. 자기혐오로 몸을 벌하고, 흑인 남성의 신체를 위협적이라 보는 사회적 시선이 싫어 더 굶었다. 저자는 “체중계의 숫자를 통제하는 일은 사랑을 느끼거나 돈을 버는 일보다도 내 몸을 덜 역겹게 느껴지게 했다”고 했다.
숨김없이 상처를 드러내는 저자를 따라가다 보면 자기 고백의 무게가 지닌 힘을 실감하게 된다. 이 책은 2018년 첫 출간 뒤 미국도서관협회가 수여하는 최고상인 ‘앤드루 카네기 메달’을 수상했다. 뉴욕타임스(NYT)가 선정한 ‘21세기 최고의 책 100선’에도 이름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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