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드민턴 레전드 이용대는 요즘도 주 5일 훈련과 러닝으로 몸을 관리한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화순초-화순중-화순실업고를 나온 ‘윙크 보이’ 이용대(37)는 전남 화순군이 배출한 최고의 스포츠 스타다. 이용대 외에 프로야구 KIA 타이거즈의 김선빈, 2024년 파리 올림픽 복싱 동메달리스트 임애지 등도 몇 화순군 출신 스타들이다.
요넥스 플레잉코치로 활동하고 있는 ‘배드민턴 전설’ 이용대의 모습. 요넥스 제공 하지만 자신의 이름을 딴 체육관이 있는 선수는 이용대가 유일하다. 화순군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배드민턴 혼합복식에서 금메달을 딴 이용대의 활약을 기려 국제규격 9면, 국내규격 12면을 갖춘 ‘이용대 체육관’을 건립했다. 이용대는 “부모님이 살고 계신 고향에 내려갈 때마다 내 이름이 걸린 체육관을 보면 너무 기분이 좋다. 자부심과 함께 더 열심히, 잘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든다”고 했다.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뒤 환호하는 이용대. 동아일보 DB 하지만 ‘배드민턴 레전드’ 이용대는 탄생하지 못할 수도 있었다. 요즘이야 배드민턴이 생활체육 뿐 아니라 엘리트 종목으로도 큰 인기를 얻고 있지만 이용대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비인기 종목 중에 비인기 종목이었다. 이용대가 배드민턴 라켓을 잡은 건 화순초에 배드민턴부가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야구는 당시에도 꽤 인기가 있었다. 아들이 뛰어난 운동신경을 갖고 있는 걸 안 이용대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야구를 시키려 했다. 화순과 멀리 않은 광주에는 야구 명문 팀이 여럿 있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실제로 광주로 전학을 갈 뻔 하기도 했다. 이용대는 “배드민턴에 소질이 있다면서 감독님이 부모님을 설득하셨다. 잘 모르겠지만 아마 내가 야구 선수를 했다면 배드민턴만큼은 못하지 않았을까?”라며 웃었다.
공교롭게도 얼마 지나지 않아 화순초에도 야구부가 생겼다. 국가대표 2루수로 성장한 1년 후배 김선빈이 그때 야구부에 들어갔다. 그렇게 이용대는 배드민턴, 김선빈은 야구 선수로 성장했다.
이용대는 지난해 세계배드민턴연맹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이용대 제공 이용대의 앞길엔 거칠 게 없었다. 중학교 3학년 때 최연소 국가대표로 선발됐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배드민턴 혼합 복식에서 이효정과 함께 금메달을 따냈다. 당시 스무살이던 이용대는 세리머니 도중 중계 카메라를 향해 ‘찡긋’ 윙크를 했다. 훈훈한 외모에 빼어난 실력까지 갖춘 그는 단숨에 국민 남동생이 됐다. 2012년 런던 올림픽 남자복식에서는 동메달을 추가했다.
이용대는 복식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선수였다. 이용대는 “배드민턴을 시작할 때 박주봉, 김문수, 김동문, 하태권 같은 선배님들이 우상이었다. 그분들이 모두 복식 전문 선수들이라 나도 그렇게 되고 싶었다”고 했다.
그의 남자 복식 파트너는 정재성에서 고성현으로, 또 유연성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누구와 짝이 되던 이용대 조는 항상 세계랭킹 1위를 했다. 그렇게 130주 넘게 정상을 지켰다. 이용대는 지난해 세계배드민턴연맹(BWF) 명예의 전당에도 헌액됐다.
학생 시절 이용대가 한국 배드민턴의 전설 박주봉 현 대표팀 감독과 포즈를 취했다. 동아일보 DB 이용대는 공격이 화려한 선수가 아니었다. 네트 플레이와 수비에 강했다. 특히 어떤 공격을 해도 번번이 막아내는 수비에 상대 선수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수밖에 없었다. 많은 선수들이 가장 만나기 싫어하는 상대가 바로 이용대였다. 이용대가 수비에 특화된 플레이를 한 것은 살아남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상대적으로 파워가 부족했던 이용대는 “내가 잘할 수 있는 부분에 집중하고자 했다. 상대의 강한 스매싱을 받아내는 수비와 이어지는 빠른 공격 전환을 죽어라 연습했다”고 했다.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일본 야구의 전설적인 스타 스즈키 이치로 역시 자신의 강점을 최대한 살려 최고의 스타가 됐다. 이치로의 현역 시절 트레이드 마크는 바로 내야 안타였다. 다른 타자라면 평범한 땅볼이 될 타구를 이치로는 내야 안타로 만들었다. 타격과 동시에 곧바로 1루로 달려나가는 그만의 타격법을 완성했기 때문이다.
당시 미국 유력 언론 뉴욕타임스는 이치로와의 인터뷰에서 “여자들은 홈럼처럼 큰 타구를 좋아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다소 무례한(?) 질문을 했다. 이에 이치로는 “내야 안타에는 섹시함이 있다. 내야 안타를 치기 위해서는 테크닉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윙크보이’ 시절 이용대가 윙크를 해 보이고 있다. 동아일보 DB 이용대 역시 “스매싱은 화려해 보이지만 더 섹시한 건 수비다. 네트를 살짝 넘기는 헤어핀이나 크로스 헤어핀, 드롭샷 같은 기술이 통할 때의 쾌감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고 했다.
현재 요넥스 배드민턴팀의 플레잉코치로 활동하고 있는 이용대는 요즘도 선수들과 함께 실전을 방불케하는 훈련을 한다. 그의 오른 손바닥은 여전히 물집으로 가득하다.
대신 쉬는 날에는 가끔 스포츠 예능 프로그램에 얼굴을 내밀곤 한다. 운동신경이 좋은 그는 축구와 골프 예능에 참여했고. 최근에는 배구 예능에도 얼굴을 내밀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가장 재미있다고 느끼는 종목은 배드민턴이다. 이용대는 “랠리가 길게 이어지면 점점 숨이 가빠진다. 그럴 때 도파민이 터지면서 큰 행복감이 밀려든다. 배드민턴은 할수록 어렵고 재미있는 운동”이라고 말했다.
2023 항저우 아시안게임 때 한 방송사 해설위원으로 활동한 이용대가 야구 스타 이대호와 찍은 셀카. 이용대 제공 최고의 선수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이용대의 꿈은 배드민턴 지도자로도 성공하는 것이다. 이용대는 “배드민턴은 알수록 재미있다. 제가 배워왔던 걸 후배들에게도 잘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 크다”라며 “기회가 된다면 국가대표 지도자로도 활동해 보고 싶다”고 말했다.
한국 배드민턴의 전성기를 열어가고 있는 안세영, 서승재, 김원호 같은 선수들이 그에게 큰 동기부여가 된다. 3월 전영오픈 때 임시로 대표팀 지도자를 맡았던 이용대는 “안세영은 실력과 체력, 기술 등 모든 면에서 부족함이 없다. 이런 선수가 다시 나올까 싶을 정도”라며 “남자복식 최강자로 떠오른 서승재-김원호 조도 점점 완벽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용대가 물잡 가득한 오른손을 보여주고 있다. 이헌재 기자 이용대는 또 유소년 선수들에게도 도움이 되고자 ‘이용대 재단’도 설립했다. 이용대배 꿈나무 최강전을 지난 2년간 전남 강진에서 열었고, 내년 2월 제3회 대회는 경남 합천에서 개최한다. 몇 해 전까지는 이용대배 학교대항 배드민턴선수권대회도 열었다.
이용대는 “내가 어릴 적 배드민턴을 할 때도 삼성배 최강전이라는 대회가 있었다. 우승 상금이 50만 원이었던 걸로 기억되는데 어린 마음에도 정말 큰 동기부여가 됐다”라며 “덕분에 나도 지금과 같은 선수가 될 수 있었다. 많이 받은 만큼 재단 활동을 통해 돌려드리려 한다”고 말했다.
배드민턴은 생활 체육으로도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종목이다. 이용대는 “실외도 좋지만 가능하면 실내에서 치는 경험을 해보셨으면 좋겠다”라며 “바람이 없으면 다양한 기술을 쓸 수 있고, 경쾌한 타구음도 더 잘 들린다. 레슨까지 받으면 더 재미있게 즐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