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갱년기 비켜… 질풍노도 ‘부모기’를 아시나요”[이설의 글로벌 책터뷰]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2월 16일 10시 00분


글로벌 책터뷰
탐독하다 보면 슬그머니 싹트는 궁금증. ‘글쓴이는 어떤 사람일까.’ 번역 외서(外書)가 쏟아지는 시대지만 해외 저자는 만남의 문턱이 높죠. 한국 독자와 해외 작가 간 소통을 주선합니다.


① ‘부모됨의 뇌과학’ 첼시 코나보이

게티이미지코리아


부모 자동 업그레이드는 없다

“아기를 낳자마자 모성애 스위치가 켜질 줄 알았는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어요.”
미국에서 아이를 낳고 기르는 앨리스는 딸 에벌리와 좀처럼 유대가 생기지 않자 고민에 빠졌다. 친구는 아기에게 노래를 불러 주고 눈을 들여다보고 젖을 먹이며 손을 쓰다듬어 주라고 했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앨리스는 딸이 자신을 신뢰한다고 느끼기 시작했다.(p. 48)

‘출산→필요한 기술 다운로드→부모로 자동 업그레이드→어른 2.0….’
예비 부모 대부분은 이런 그림을 기대한다. 아기를 낳기만 하면 인내, 온유함, 희생, 아량 같은 미덕을 품게 될 것만 같다. 하지만 ‘부모됨’을 겪어 보면 성숙에 이르기까지 치러야 할 값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바로 시간이다.

‘부모됨의 뇌과학’(코쿤북스)은 부모로 옷을 갈아입는 기간, 즉 ‘부모기(期)’를 탐구한 책이다. 부모란 무엇인지,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떤 부분이 어떻게 바뀌는지를 촘촘히 들여다본다. 퓰리처상을 받은 미국 건강 저널리스트 첼시 코나보이는 사무실에서 모유를 유축하다가 이 주제에 꽂혔다고 한다. e메일 인터뷰에서 그는 “2015년 첫 출산 이후 3중 걱정에 시달렸다”며 “그런 내 상태에 의문이 들었고, 그때부터 이 문제를 파고 들었다”고 했다.

―첫 출산 당시 걱정 더미에 파묻힐 뻔하셨다고요.
“첫 아이를 낳은 후 걱정에 시달렸습니다. 아이에 대한 걱정, 그 아이를 잘 돌볼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 그리고 그런 걱정을 하는 자신에 대한 걱정까지도요. 처음 몇 달 간 걱정이 멈추지 않는 잡음처럼 자리 잡았고, 걱정에는 죄책감이 따랐어요. 죄책감은 외로움을 불렀고요. 극도로 소모적이며 기쁨과 함께 절망을 느끼게 되는 육아의 모든 것이 상상과 너무 달랐습니다.”

―초보 엄마로서 겪는 불안이 상당했군요.
“언젠가 접한 ‘부모가 되면 뇌가 변한다’는 이야기가 머릿속을 스쳤고, 그때부터 이 주제를 탐구하기 시작했어요. 논문을 뒤지고 전문가들을 만났죠. 공부할수록 자신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었고, 동시에 이러한 과학적 사실이 왜 부모가 되는 과정에 대한 담론에 포함되지 않는지 답답함을 느꼈습니다. 취재 내용을 담아 ‘새내기 부모 시절 나에게 필요했던 책’을 쓰게 됐어요.”

20년 경력의 미국 건강 저널리스트 첼시 코나보이. 한국인인 남편이 촬영했다. @Yoon S. By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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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부모가 되면 누구나 변화를 겪죠.
“네, 분명 ‘어떠한 변화’를 겪어요. 과거엔 엄마가 되면 바로 모성이 생긴다고 생각했죠. 일명 호르몬 변화로 인한 ‘모성신화(神話)’인데요. 자동으로 생기는 게 아니라 서서히 뇌가 바뀌게 되는 거예요. 뇌에 이른바 ‘돌봄 회로(caregiving circuitry)’가 만들어지면서 모성이 싹트게 됩니다.”

―‘부모의 뇌’를 만드는 돌봄 회로는 어떻게 형성되나요.
“호르몬과 경험, 이 두 가지 요소에 영향을 받습니다. 임신하게 되면 호르몬 영향으로 뇌가 변화하기 쉬운 상태가 돼요. 이렇게 유연해진 뇌가 아기의 귀여운 얼굴과 옹알이, 울음소리, 체취에 자극을 받아 돌봄 회로를 형성하죠. 동기 부여, 경계심, 의미 해석, 작업기억과 관련된 뇌 영역의 활동과 연결성이 증가하게 되는 겁니다. 호르몬이 기초를 마련하지만 궁극적으로 뇌를 돌봄에 적합하게 배선시키는 것은 상호작용인 셈이에요.”

―아기의 자극으로 발달한 돌봄 회로가 다시 육아에 도움을 주는 쪽으로 작동하나요.
“맞습니다. 부모의 동기 부여, 의미 해석, 작업기억 같은 능력이 좋아지면서 아기의 필요에 잘 집중하고 실수에 빠르게 대처하게 되죠. 시간이 지나면서 회로는 더 탄탄해지는데, 자녀의 감정과 생각을 잘 읽고 자신의 감정도 성숙하게 조절하게 되죠. 뇌에서 사회적 정보 처리를 담당하는 이 회로는 타인의 사회적, 감정적 정보를 읽고 반응하는 데에도 도움이 됩니다.”

―돌봄 회로가 엄마의 전유물은 아니라고요.
“최근 연구에 따르면 임신하지 않은 부모, 예컨대 양부모나 아버지 역시 부모 역할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경우 중요한 호르몬 변화와 유사한 신경생물학적 변화를 경험하는 것으로 나타났어요. 이로 인해 사회적 인지 능력도 세밀하게 조정되고요. 직접 출산하지 않은 부모와 돌봄에 종사하는 이들의 뇌도 변해요. 부모의 뇌를 만드는 것은 성별이나 출산 여부가 아니라 사랑과 관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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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바애’: 돌봄의 전형은 없다
모든 관계가 그렇듯 부모자식 간에도 전형은 없다. ‘애바애 부바부’. 애마다 다르고, 부모마다 다르다. 여기에 이런 애와 이런 부모, 저런 애와 저런 부모가 만나 천만 가지 빛깔을 빚어낸다. 그러니 돌봄 회로라고 다 비슷한 모양일 리가 없다. 유난히 인내심 넘치는 이웃 부모 앞에서 못난이가 된 듯한 자격지심을 한 번쯤 겪어보지 않았나.

―아기의 기질과 돌봄 회로의 발달 간 상관관계가 궁금합니다.
“현재까지의 연구에 따르면 양육과 관련된 뇌의 변화는 보편적인 패턴을 보이지만 이 과정은 매우 유동적입니다. 부모 뇌는 아기 뇌와 함께 발달하며, 부모의 건강 이력, 임신 및 출산 경험, 그리고 이 시기에 받는 사회적 지원을 비롯한 가족의 전반적인 환경 속에서 변하죠. 물론 아기의 유전적 특성이나 기질도 중요한 요인이고요.”

―책에 나오는 미숙아 클레어의 엄마 엘리자베스 이야기를 해주세요.
“클레어는 건강 문제로 약 6개월간 신생아중환자실(NICU)에 있어야 했어요. 엘리자베스는 초기엔 어려움을 겪었지만 점차 딸의 요구를 명확하게 이해하고 예측할 수 있게 됐죠. 때로는 민감한 의료 장비 경보음이 울리기 전에 의사나 간호사에게 이상 징후를 알리기도 했습니다.”

―엘리자베스가 평균보다 더 민감하게 아기의 신호에 반응한 건가요.
“한 연구에 따르면 NICU에 있는 미숙아의 어머니는 사회적 인지 및 감정 처리와 관련된 뇌 영역의 활동이 만삭아의 어머니보다 더 높다고 해요. 취약한 아기의 필요에 더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뇌가 가열차게 작동한 결과인 거죠. 많은 NICU가 이런 부모 역할을 인지하고 있고, 부모를 핵심 돌봄 인력으로 활용하는 방향으로 시스템을 바꾸고 있습니다.”

―엄마 아빠 가릴 것 없이 돌봄 능력자들이 따로 있는 것 같기도 해요.
“부모는 각기 다른 사람들입니다. 이 책에서 전하고자 하는 중요한 메시지는 ‘레고 블록처럼 딱 맞춰지는 모성 본능 회로’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양육 능력은 이미 존재하는 우리 뇌와 성격을 바탕으로 성장합니다. 당연히 개인차가 존재할 수밖에 없죠.
저마다의 유전적 특성과 자율성을 지니고 태어난 아이들도 부모의 양육 방식에 영향을 줍니다. 사회적 지원, 경제적 안정성, 아이의 기질(밤에 잘 자는 아기인지 아닌지 같은) 등도 부모의 인내심에 큰 영향을 미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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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내기 엄마의 이유 있는 집착
출산 직전과 직후 부모들은 민감해지는 경향이 있다. 아기의 먹고 자는 문제에 집착하거나 닥치지도 않은 위험 상황을 앞서 고민하는 행태가 대표적이다. 강박장애 연구 권위자 제임스 렉먼은 1999년 41쌍의 부부를 인터뷰한 결과 4분의 3 이상이 아무 문제가 없을 때조차 아기를 확인해야 한다고 느꼈다.
부모들은 아기를 떨어뜨리거나 자신이 통제력을 잃고 아기를 때리면 어쩌나 하는 걱정까지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돌봄 회로가 생성되기 전의 이런 강력한 몰두는 아기 생후 4개월 정도부터 줄어들기 시작한다.

―‘일차적성 몰두는 어떤 시기인가요.
“출산 후 첫 몇 주 동안 엄마들은 아기에게 강박적인 집착을 느끼곤 해요. 아기와 떨어지기를 꺼리거나 끊임없이 걱정하는 행태를 보이는데, 이를 20세기 중반 소아과 의사이자 정신분석가 도날드 위니콧은 일차적 모성 몰두(primary maternal preoccupation)라는 용어로 설명했죠. 다른 상황에서는 병리적 증상처럼 보일 수 있지만 새내기 부모가 경험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에요.”

―돌봄 회로가 뇌에 길을 내기 전 일종의 과도기 같은 거군요.
“이 현상을 과도기적 단계로 보는 것은 매우 적절합니다. 실제 일차적 모성 몰두는 점차 조절되는 경향이 있어요. 저 역시 출산 직후 집착과 걱정이 심했는데, 부모가 되려고 뇌가 변화하는 적응 과정의 일부였죠. 이 사실을 좀 더 일찍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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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뇌는 원래 상태로 돌아가나요?
“간단히 말하면 그렇지 않아요. 출산 직후 강렬한 변화는 시간이 지나면서 완화되지만 뇌의 구조적 변화는 상당 부분 지속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스페인과 네덜란드 연구진이 여성들을 대상으로 임신 전부터 임신 6년 후까지 추적한 결과, 뇌 변화가 거의 유지되고 있었어요. 이는 현재까지 발표된 연구 중 가장 긴 기간입니다. 설치류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도 어미 쥐의 뇌 변화가 자녀 양육 이후에도 오랜 기간 지속된다는 것이 밝혀졌고요.”

―부모의 뇌가 가져다주는 이점만큼 단점도 있을 것 같습니다.
“임신 중이나 출산 후 많은 사람이 건망증을 경험합니다. 약속을 잊어버리거나 단어가 잘 떠오르지 않거나, 전반적으로 정신이 산만해진 느낌을 받는 것이죠. 이는 매우 흔한 현상입니다. 일부 연구에서는 건망증이 뇌의 변화, 특히 해마와 관련이 있다고 보고 있죠. 이 시기엔 수면의 질이 낮아지고 책임이 늘어나는 등 여러 요인이 인지 기능에 영향을 미쳐요.”

―부모가 되는 건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가장 심오한 일이라고 하죠.
“심오한 만큼 이해하기 어렵고 당황스러운 경험이기도 하죠. 돌봄 회로로 인한 가장 큰 문제는 부모들이 예상치 못한 자아 정체성 변화를 겪고 당혹감에 빠지는 점이라고 생각해요. 부모의 뇌에 대해 충분히 논의하지 않았기에 생기는 문제죠.
뇌에 대지진이 나는 듯한 부모기의 신경생물학적 변화는 사춘기에 일어나는 변화만큼 극적이에요. 사춘기는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변화의 시기이지만 부모가 되는 과정은 그렇지 않죠. 이러한 정보를 모른 채 부모가 되면, 그 변화가 매우 불안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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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산모 20%가 산후 기분 장애 겪어
“산후 우울증은 안타까울 정도로 불특정한 진단이다. 한 연구자는 그것이 잘못 이해되거나 거의 이해되지 않는 산후 장애를 전부 쓸어 담는 ‘쓰레기봉투’ 범주라고 했다. ”(p. 145)

“산후에 심각한 우울증 증상을 보이는 사람들은 아기 울음소리 같은 부정적인 자극에 대한 편도체의 반응이 둔감한 편이라고 알려져 있다.”(p. 307)

―부모가 되는 것이 특히 힘든 사람들이 있나요.
“미국에서는 여성 약 5명 중 1명이 산후기분장애를 겪어요. 불안 또는 우울증 병력, 원치 않거나 계획에 없던 임신, 임신 합병증 등이 이러한 위험을 증가시킬 수 있죠. 이러한 요인이 아니더라도 산후 우울증을 앓을 수 있습니다. 부모가 되는 과정에서 겪는 극적인 뇌의 신경생물학적 변화 때문이죠. 현재 이 같은 문제가 발생하는 메커니즘을 규명하기 위한 연구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습니다.”

―부모 준비가 ‘출산’에 초점을 둔 탓에 막상 실전 육아에서 허둥대곤 하죠.
“모성은 신성불가침이란 인식이 있어서 직접적으로 분석하기보다 비스듬히 바라보곤 하죠. ‘아기가 생기면 모든 것이 변한다’는 건 알지만 구체적으로 내용을 따져보진 않아요. 미국에서는 ‘여성은 어머니가 되기 위해 태어났다’는 인식이 강해요. 양육 능력은 본능적이며 여성에게만 특화된 것처럼 여겨지기도 하죠. 그러나 이는 일종의 신화에 불과합니다. 실제 양육 능력은 누구든지 적극적으로 돌봄에 참여하면 갖출 수 있어요.”

―간혹 아이에 대한 부정적 감정을 느껴 당황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점점 나아지고는 있지만 여전히 많은 부모가 ‘모성 본능이 부족한 것 같다’는 질문조차 하지 못해요. 부모의 자격 부족에 대한 고민을 드러내는 일에 부담을 느끼는 거죠. 부모가 되는 것은 가장 흔한 경험 중 하나이지만 우리는 이제서야 이 경험이 뇌, 건강, 그리고 정체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이해하기 시작한 단계입니다.”

만삭의 첼시 코나보이를 남편이 카메라에 담았다. @Yoon S. Byun

―사춘기처럼 부모기에 대한 사회적 인식 재고와 지원도 필요할 것 같아요.
“미국에서는 새내기 부모를 위해 개선해야 할 부분이 많아요. 특히 법적으로 보장된 유급 출산휴가 정책이 없는 몇 안 되는 국가에 속해요. ‘미국적인 부끄러움’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사춘기에 대한 이해가 등교 시간 조정이나 새로운 훈육 방식 도입 같은 변화를 이끌어냈듯 부모가 되는 과정에 대한 사회적 논의도 필요합니다. 부모가 되는 과정은 누구에게나 큰 전환점이고, 당연히 여러 도움을 필요로 하죠. 임신과 출산 전후 건강 관리, 경제적 안정, 사회적 지원 등에 관련한 정책을 마련해야 해요.”

―육아를 하면서 본인의 새로운 강점을 발견한 경험이 있나요.
“부모로서 자신을 의심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에요. 부모됨에는 무거운 책임이 따르죠. 부모다운 말과 행동, 육아와 교육법에 대한 조언과 평가가 사방에서 쏟아집니다. 부모로서 중심 잡기 힘들 때 저는 제 뇌가 아이들을 명확히 바라보는 방향으로 적응했다는 사실을 떠올려요. 외부 조언에 의존하는 대신 아이들을 바라보고 그들과 연결되는 과정 속에서 해답을 찾으려 합니다. 이런 연결감을 느끼며 부모로서의 성장을 확인하는 일이 제게 큰 힘이 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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