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문학사 산증인 김병익 평론가
‘100년 신춘문예’ 20여년 심사… 한강 당선작 뽑아 소설가 첫발 보탬
“노벨상으로 韓문학 위상 높아져
유신 시절에도 숨은 책들 발행돼… 어떤 강한 억압 정책도 이겨낼것”
김병익 문학평론가의 집은 거실 한가운데 돌탑처럼 쌓여 있는 책이 주인 같았다. 8일 경기 고양시 자택에 들어서자 깊은 종이 향기가 물씬했다. 김 평론가는 “문화부 기자에서 편집자, 발행인까지 책 주변에서 할 수 있는 직책은 다 해봤으니 운이 좋았다”며 “지금도 집히는 대로 ‘잡독’을 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고양=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신춘문예 모집… 일반 신진 작가의 작품을 모집하오니 많이 투고하여 금상첨화의 꽃밭을 이루게 해 주십시오.” 동아일보 1925년 1월 2일자에 실린 국내 첫 ‘신춘문예’ 공고다. “충실하고 보람 있게 해 보려고 한다”며 이 공고를 쓴 이는 몰랐을 것이다. 신춘문예가 100년 동안 이어지며 한국 문단이란 큰 산과 꽃밭을 이루는 자양분이 될 줄. 동아일보 신춘문예 100주년을 맞아 우리 현대 문학사의 ‘산증인’이라 할 수 있는 김병익 문학평론가(87·문학과지성사 상임고문)를 8일 경기 고양시 자택에서 만나 신춘문예와 문학의 힘을 되짚어 봤다.》
“식민 지배와 6·25전쟁을 겪고 우리 문학이 자생하기 어려웠던 시절, 신춘문예는 문학에 대한 열망을 수용하는 통로였습니다.”
김 평론가는 한국 역사에서 신춘문예의 역할을 한마디로 이렇게 정리했다. 동아일보 문화부 기자 시절(1965∼1975년) 직접 신춘문예 예심에 참여했던 그는 ‘신춘문예 100년’이 특히 남다르게 다가온다고 했다. “시가 수천 편이 들어오고 소설은 700∼800편씩 들어오니, 12월이 되면 (문화부가) 부산스러웠죠.”
기자 생활을 그만두고 전업 문학평론가로 활동하면서도 신춘문예 본심 심사위원을 20년 이상 지냈다. 김 평론가는 “우리 사회는 문인이 필요했고 문인이 되고자 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과거엔 객관적으로 인정해줄 만한 통로가 없었다”며 “그걸 신춘문예가 만들어준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평론가는 지난해 노벨 문학상을 받은 한강 작가와도 신춘문예로 인연이 있다. 1994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심사위원으로 한 작가의 ‘붉은 닻’을 당선작으로 뽑아 그가 소설가로 첫발을 내딛는 데 보탬이 됐다. 김 평론가는 “한강의 노벨상 수상은 한국 문학이 세계 문학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고, 위상이 높아졌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1938년생인 김 평론가는 국민학교(오늘날 초등학교) 1학년 1학기까지 학교에서 일본어를 썼다. 여름방학 중 광복을 맞았고, 6학년 때 6·25전쟁, 대학 4학년 때 4·19혁명을 겪었다. 그는 “우리 세대는 소년 시절이 역사적 단층이 이뤄진 가운데 지나갔다”면서 “해방되고 한글로 교육받기 시작할 땐 식민지 시대 쓰인 한글 소설을 통해 문화라는 걸 접했다”고 했다. “나라가 힘들면 맨 마지막에 남는 게 문자예요. 우리가 식민지 시대에 겨우 그걸 껴안고선 살아온 거죠. 독립투사들 못지않게 문화적인 투사들도 중요해요.”
그는 김현 김치수 김주연과 함께 ‘4K’로 불리며 1970년 계간지 ‘문학과지성’을 창간하고 문단을 이끌었다. “잡지 게재 여부를 아주 민주적인 방식으로 결정했거든요. 한 사람도 반대하면 안 됐고, 분위기가 아주 활달하고 자유로웠습니다.”
김 평론가는 권위주의 시절 문단의 일화도 들려줬다. “조세희의 연작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지독하게 저항적인 작품인데도 서정적인 문체로 썼기 때문에 검열 당국이 ‘깜빡’ 놓쳐버린 거지요. 나중에 보고 (알게 됐지만) 그때는 이미 너무 크게 나와버려서(‘널리 읽혀서’란 의미) 못 내게 하면 더 곤란해지겠다 싶어서 손을 못 댔어요.”
1970, 80년대 출판물 사전 검열이 이뤄질 때 출판사가 여러 책을 내기 위해서 미리 구절을 손봤던 기억도 떠올렸다. 그는 “유신 시절에 날카로운 표현들, 진짜 못 참아서 품고 싶은 표현들이 참 많았는데, 내용은 그대로 존중하면서 표현만 살짝 바꾸는 걸 내가 참 잘했다”며 웃었다.
김 평론가는 “늘 ‘적’을 만들어서 밀어내고 증오하는 시대를 살아왔다”며 “과거 ‘적’은 사회적으로 추방돼야 할 존재로 여겨졌다”고 회고했다.
“유신 시절에도 언론과 문필 억제 정책이 시행됐지만 숨은 책들이 발행되면서 출판 자유를 억압하는 정책을 무산시킨 셈이거든요. 현재는 얼마든지 복제가 가능하잖아요. 아무리 강한 억압 정책이 시행된다고 해도 잘 이겨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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