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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인터뷰]“상처없는 매끈한 인생 있나요… 행복한 순간들로 꿰매며 견디는 거죠”

입력 2022-01-05 03:00업데이트 2022-01-20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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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서울 강남구 선릉로 ‘오은영 아카데미’ 강남센터 상담실에서 만난 오은영 박사는 “어려운 때일수록 상대에게 따뜻한 인사를 건네면 내 기분도 좋아진다”고 했다. “주위에서 공감과 위로의 말을 듣기 힘들 땐 ‘은영아, 오늘 수고 많았어. 정말 대단해’ 같은 스스로를 칭찬하는 말을 직접 녹음해 듣는 것도 효과가 있답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이진영 논설위원
《방송가엔 3대 해결사가 있다. ‘요식업계 대부’ 백종원, ‘개통령’ 강형욱, 그리고 ‘육아의 신’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57)다. 오 박사는 채널A 육아예능 ‘금쪽같은 내 새끼’에서 아이들의 이상 행동을 감쪽같이 바로잡는 ‘금쪽 처방’으로 떼쟁이 아이를 둔 부모들에겐 ‘영접’ 희망 1순위 인물이다.

요즘엔 성인용 프로그램 ‘금쪽 상담소’에서 다양한 연령대의 유명 인사들이 털어놓는 고민을 들어주며 국민 멘토로 부상하고 있다. 진지한 연애를 못 하는 남자, 사춘기 딸과 티격태격하는 싱글맘, 서로 사랑하지만 대화가 겉도는 난임 부부 등 출연자들은 수심 가득한 얼굴로 나와 한결 밝아진 표정으로 돌아간다. 좀 더 단단한 마음으로 새해를 살아낼 순 없을까. 이런 고민을 안고 오은영 아카데미 강남센터 사무실을 찾은 3일, 마침 대학생 30%가 ‘코로나 블루’를 경험했다는 통계자료가 공개됐다.》

소통에 서툰 부모, 아이 탓만 해


―코로나로 다들 힘겨워하고 있습니다. 비대면의 장기화가 사회적 동물인 인간에겐 엄청난 스트레스를 주나 봅니다.

“사람은 서로 마주치면서 힘을 얻어요. 복작대는 강남역에서 사람들과 어깨를 부딪칠 때도 정신적 에너지를 교환합니다. 이런 접촉이 줄어드니 힘든 거죠. 특히 아이들은 사람뿐만 아니라 환경과도 상호작용 해야 대뇌가 발달해요. 계절의 변화를 온몸으로 느끼고 모래에서 뛸 때와 아스팔트에서 뛸 때가 다르다는 걸 체험하며 커야 하는데 그런 기회가 많이 줄어 걱정입니다.”

―코로나 사태가 시작된 2020년 우울증 같은 기분장애로 병원을 찾은 20대 환자가 전년 대비 21%나 증가했다고 합니다. 우울증은 나이가 들수록 환자가 증가하는 노년의 병이었는데 이젠 청춘의 질병이 돼버린 걸까요.

“억울한 마음이 큰 것 같습니다. 젊은 사람은 코로나에 감염돼도 가볍게 앓고 지나가는 경우가 많은데 왜 고령층 보호를 위해 우리까지 희생해야 하느냐는 억울함이죠. 자영업자들도 마찬가지예요. 성실함과 책임감에서 정부가 시키는 대로 방역수칙을 지켰는데 왜 우리만 피해를 보느냐는 억울함입니다. 코로나 이전부터도 억울함이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정서가 된 것 같습니다. 청년들은 부모 세대가 요구한 대로 열심히 공부했는데 취업할 곳이 없습니다. 그래서 억울한 세대입니다. 부모 세대는 ‘우리 땐 더 힘들었는데 요즘 젊은이들 고생이 고생이냐’며 억울해하죠.”

―집단적 억울함을 해소하는 건 결국 정치의 영역인데요.

“전 소통의 문제라고 봅니다. 상대가 억울하다는 걸 인정해야 풀어갈 수 있는데, ‘너보다 내가 더 억울하다’는 생각에 소통이 이뤄지지 않죠. 우린 보이는 것에만 가치를 두는 경향이 있어요. 보이지 않는 마음을 이해하려 하지 않고 ‘요즘 젊은이들은 건방지다’ ‘노인네들은 꼰대스럽다’ 하면서 태도를 문제 삼죠. 수능을 망친 아이들은 신경질을 내거나 밥도 안 먹고 하루 종일 컴퓨터 게임을 합니다. 견디기 힘든 마음을 분노로 표현하거나, 불안감을 잊기 위해 게임에라도 몰두하는 거죠. 그런데 부모는 그런 마음을 헤아리기보다는 ‘너 엄마한테 무슨 말버릇이야’ ‘뭘 잘했다고 밥도 안 먹고 게임이야’ 그래요.”

―그럴 때 모범 답안은 무엇인가요.

“‘속상해도 밥은 먹어라. 네가 안 먹으면 엄마도 너무 속상하단다’ 해야죠. 그래도 ‘내버려둬’ 하면 ‘좀 생각해 보고 앞으로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얘기해 보자’ 하는 거죠. 그런 언행을 하는 이유는 외면한 채 남 탓만 하면 대화는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제자리에 머물러 있거나 뒤로 가게 돼요. 소통에 서툰 부모들을 위해 포털에 ‘오늘 육아 회화’라는 코너도 연재한 적이 있어요.”

―입학과 졸업의 계절입니다. 많은 청년들이 대학 입시와 취업 경쟁에서 좌절을 경험하는 때이죠. 입시에 실패한 아이들은 어떻게 위로해 줘야 하나요.


“한 수험생이 와서 ‘12년간 열심히 공부했는데 억울하다’고 해요. 그래서 얘기해 줬어요. 사람이 공부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피하지 않고 끝까지 최선을 다해 보는, 인생을 열심히 살아 보는 경험을 하는 거다. 그 과정에서 배운 많은 것들로 넌 앞으로 뭐든 할 수 있을 거라고요. 그럼 아이가 ‘그래도 당장 이 좌절감을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고 해요. 그 좌절감마저 잘 겪어내는 게 최선의 마침표라고 얘기해 주죠.”

―대학생들은 심리·정서 안정에 위협이 되는 가장 큰 요인으로 취업 경쟁을 꼽습니다.

“그런 청년들에겐 ‘네가 기대치를 조금 낮추면 갈 수 있는 일자리가 있느냐’고 물어봅니다. 그렇다고 하면 일단 일을 시작해 보라고 해요. 제가 의사 면허를 따고 인턴으로 했던 일 중에서 의사의 전문성이 필요한 일은 10%도 안 됐어요. 나머지 90%는 허드렛일이었죠. 정말 자신과 맞지 않거나 열정페이를 강요당하는 일이 아니라면 실제로 해보면서 배우는 것도 많고 경력이 쌓이는 거라고 생각해요.”

아이에게 문제 해결할 시간 줘야

오박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오늘 하루의 최선’을 다하는 게 중요하며 에너지지를 너무 쓰면 건강도 나빠질거라고 강조했다. 김재명기자 base@donga.com

―같은 시련도 잘 극복해 내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습니다.

“외부의 자극을 막을 순 없지만 그 자극에 어떻게 반응할지는 내가 결정할 수 있어요. 외부 자극을 견디려면 내면의 힘이 필요합니다. 핵심 애착관계인 부모로부터 이해받고 공감받는다는 느낌을 경험하는 게 중요해요. 여기서부터 내면의 힘이 길러지죠. 내면의 힘은 자신의 어려움을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인데 이는 어린 시절 부모와의 관계에서 배우는 겁니다. 아이가 크고 작은 어려움에 부닥치면 부모들은 직접 해결해 주기보다 아이 자신이 스스로 해결하도록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 줘야 해요. 많은 부모들이 결과 중심적인 양육을 합니다. 이런 양육 방식으로 자란 아이는 중간 과정이 중요하고, 과정을 통해 결과가 바뀔 수 있다는 생각을 못 하게 될 수도 있어요. ‘너는 열심히 했지만 잘 안될 때도 있어. 그래도 괜찮아’ 이런 말을 많이 들으면서 자라야 해요. 그래야 자신감을 가질 수 있습니다.”

―지난 한 해 클리닉을 운영하면서 12개 TV 프로그램에 고정 출연자 혹은 게스트로 나오고 3개 신문사에 칼럼을 기고하셨죠. 그 많은 일을 어떻게 다 해내나요.


“아기 때부터 잠이 적었어요. 요즘은 4, 5시간 자고 일합니다. 14년 전 크게 아픈 뒤로 제가 아주 잘난 사람은 아니지만 다른 사람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열심히 살면 행복이 찾아와요


―암 수술을 받으셨죠.

“그날이 토요일이었어요.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담낭에 악성 종양이 있는 것 같다고 했어요. 월요일 정밀검사에선 담낭암일 가능성이 93%라고 했습니다. 대장암까지 발견됐으니 이틀 뒤 수술에서 담낭암이 확인되면 오래 못 살 수도 있다고요. 수술 전날까지 예약된 환자들 진료를 봤어요. 환자들 중엔 지방에서 월차를 내고 온 사람, 절박한 마음으로 찾은 부모들이 있는 데다 제 고민이 당장 해결될 일도 아니었고요.”

―일상을 유지하는 게 시련을 견디는 힘이 된다는 말씀인가요.

“인생엔 어쩔 수 없는 일이 있어요. 우리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오늘 하루의 최선’을 다할 뿐인 거죠. 여기서 최선이란 내 평정심을 유지하면서 일상을 살아내는 거예요. 내가 해낼 수 있는 선을 넘어 에너지를 끌어다 쓰면 건강도 나빠지고 오래 하지도 못해요. 만약 오늘 너무 힘들어서 하루 쉬었어요. 그럼 그게 오늘의 최선인 거예요. 아이가 잠들기 전 동화책을 읽어 주는 건 좋은 일이지만 내가 피곤하면 하루 건너뛰어도 됩니다. 인생은 꽤 긴 과정입니다.”

―박사님이 항상 웃으며 사는 비결은 뭡니까.

“상처 없이 매끈한 인생이 있을까요. 꿰매어 가면서 너덜너덜한 채로 견뎌 내는 거죠. 행복은 상태가 아니라 순간의 감정이에요. 우울한 사람들은 행복의 순간을 감지하지 못합니다. 허리를 숙였다가 폈는데 하늘이 파래요. ‘와, 하늘 좀 봐’ 하며 행복해지죠. 아이 키우는 건 매우 힘든 일이지만 가끔씩 귀여운 짓을 하는 걸 보면 행복하잖아요. 한번은 강연을 끝내고 나오는데 어떤 엄마가 뒤따라 나오더니 작은 사탕 하나를 건네주었어요. 그날 그 사탕 하나로 얼마나 행복했는지 몰라요. 오늘 하루 최선을 다한 끝에 드물게 찾아오는 행복감, 이런 순간의 힘으로 사는 겁니다.”

오은영 박사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이자 소아·청소년 정신과 전문의. 연세대 의대 졸업 후 같은 학교에서 석사 학위, 고려대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어린이와 성인의 심리 상담과 치료를 하는 ‘오은영 아카데미’ 원장이다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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