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누르면 왜곡된 행동으로 표출… 통제 대신 공존하는 법 배워야
질투심은 사랑받고 싶은 욕구… 시기는 나은 존재 되려는 열망
다양한 철학적 관점 소개하며, ‘나쁜 감정 사용하는 법’ 제시
◇악마와 함께 춤을/크리스타 K 토마슨 지음·한재호 옮김/300쪽·1만9000원·흐름출판
2014년 5월 미국 샌타바버라 캘리포니아대에서 무차별 총기 난사 사건이 벌어졌다. 이 사건으로 6명이 숨지고 13명이 다쳤다. 범인은 당시 22세 남성 엘리엇 로저. 그는 성인이 되도록 여성과의 성 경험이 없는 것에 ‘분노’를 품고 있었다. 로저는 범행 전 작성한 ‘선언문’에서 “여성들이 내게 행복한 삶을 허락하지 않았고, 그 대가로 그들의 삶을 모두 빼앗아 가겠다. 이것은 공정한 일”이라고 썼다. 엉뚱한 대상에 대한 분노가 참극으로 이어진 것이다. 그러나 정말 분노라는 감정 자체가 범죄의 원인일까.
신간은 분노와 시기, 질투, 앙심, 경멸 등 부정적 감정들에 대한 일종의 ‘변론서’다. 미 스와스모어대 철학과 교수인 저자는 동·서양 철학자 12명이 여러 부정적 감정에 대해 내리는 정의를 살펴본다.
목적은 편견을 걷어내는 것이다. 그동안 부정적 감정은 정원에서 제거돼야 할 ‘잡초’처럼, 좋은 삶을 방해하는 일종의 장애물로 여겨졌다. 그래서 우리는 감정을 통제하거나 수양하려 한다. 그러나 저자는 “감정은 마음대로 통제할 수 없기에 부정적 감정과도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의 관점에서 로저의 참극은 분노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나쁜 감정을 견디고 상처받는 법을 배우는 대신 여성을 악마화하는 태도에서 문제가 비롯됐다. 저자는 “분노의 책임을 물을 상대를 찾는 대신 감정을 끌어안고 왜 그런 감정을 느끼는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고 일갈한다. 감정을 직면해야 엉뚱한 악마를 만들지 않을 수 있다.
사실 대다수의 분노는 자신이 부당한 대우를 받을 때 나오는 건강한 반작용인 경우가 많다. 누군가 나를 조롱하거나 차별할 때 이를 무조건 눌러 삼키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책의 묘미는 철학자들이 펼치는 부정적 감정에 대한 상반된 입장이다. 로마 폭군 네로의 스승으로 유명한 철학자 루키우스 안나에우스 세네카는 “분노의 문제는 상대방을 해칠 수만 있다면 어떤 것도 신경 쓰지 않는다”며 분노는 백해무익한 감정이라고 말했다. 반면 공자는 “오직 어진 사람(인자·仁者)만이 다른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도, 경멸할 수도 있다”고 했다. 적절한 때 부정적 감정을 느끼고 상황에 맞게 표현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 밖에도 저자는 간디와 괴테, 몽테뉴 등의 의견을 빌려 독창적인 ‘나쁜 감정 사용설명서’를 펼친다.
그동안 파괴적이고 퇴행적인 감정으로만 여겨져 왔던 ‘질투’는 사랑하는 이에게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은 욕구로 재해석된다. 이기적이거나 병적인 감정이 아니다. 타인이 가진 것을 탐내는 ‘시기’는 스스로를 발전시킬 때 쓰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 저자는 “시기심을 느끼지 않는 건 무감각하거나 야망이 없거나 오만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며 시기를 변호한다.
앙심을 품다가 느끼는 ‘쌤통’은 대부분이 악의적이지 않은 해학에 가깝다고도 주장한다. “쌤통은 자신을 향한 비웃음이 표출되는 한 방식이다. 나는 우리가 (쌤통이라며) 웃는 까닭은 자신도 같은 실수를 저지를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책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부정적 감정을 안고 사는 ‘악인(惡人)’이 돼라”는 게 아니다. 그저 “변명도, 옹호도 없이 직면하라”고 권한다. 부정적 감정을 인정하지 못할 때 비틀린 행동을 하게 된다는 점을 차분하게 설득하는 책이다. 저자 특유의 유머러스함이 가벼운 에세이를 읽는 느낌도 준다. 새해 부정적 감정으로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이 책을 읽으며 생각의 전환을 시도해 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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