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을 보듬다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0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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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작가 정은영, ‘모멘타 비엔날레’서 북미 첫 개인전
여성들만 무대 서는 창극 ‘여성 국극 프로젝트’ 선보여

캐나다 몬트리올 ‘레너드 & 비나 엘런 갤러리’에 전시된 정은영 작가의 ‘먼지’는 여성 국극 배우와 작가가 대화하는 장면을 담았다. 모멘타 비엔날레 제공
캐나다 몬트리올 ‘레너드 & 비나 엘런 갤러리’에 전시된 정은영 작가의 ‘먼지’는 여성 국극 배우와 작가가 대화하는 장면을 담았다. 모멘타 비엔날레 제공
캐나다 몬트리올 콩코르디아대 ‘레너드 & 비나 엘런 갤러리’에서는 ‘모멘타 비엔날레’(9월 5일∼10월 28일)의 일환으로 한국 작가 정은영의 북미 첫 개인전 ‘여성 국극 프로젝트, 젠더를 빼앗아라!’가 열렸다.

정은영은 2019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작가로 선정됐고 2018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을 수상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가 이탈리아 베네치아 한국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선보였던 작품은 물론이고 신작 ‘먼지’, ‘깃발’도 선보였다.

전시장은 외부 윈도 갤러리를 비롯해 5개 공간으로 구성돼, 모멘타 비엔날레 내 개인전 중 비중이 큰 편이었다. 전시는 2011년 작품 ‘웨딩’에서 시작해 역사에서 지워진 여성 국극에 관한 기록물을 되살린 ‘지연된 아카이브’(2018∼2023년)로 이어졌다. 벽면에는 여성 국극의 역사 속 이미지들을 강렬한 색채와 거친 질감으로 표현한 평면 작품도 함께 전시됐다.

여성 국극은 창극의 한 갈래로 여성들만 무대에 설 수 있는 장르다. 1950년대 인기를 끌다가 1960년대 말부터 서서히 잊혀졌다. 정 작가는 제대로 조명되지 않았던 주체들을 플래시 라이트, 커다란 화면, 극단적인 클로즈업 등으로 강렬하게 드러내 왔다.

‘먼지’에선 여성 국극 배우와 정 작가가 오래된 사진과 기록을 보며 대화하는 장면을 부드럽고 감성적으로 풀어내 눈길을 끈다. 한지윤 모멘타 비엔날레 예술감독은 “소외된 커뮤니티가 생존하는 방법은 결국 그들이 서로를 인정하고 보듬는 것임을 보여주는 것 같다”고 했다.

최근 여성 국극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지연된 아카이브’ 작업에는 여성 국극을 소재로 한 웹툰, 창작 뮤지컬 등 새로운 내용이 추가됐다. 정 작가가 처음 작업을 선보일 때만 해도 여성 국극이 관객에게 생소했지만 이젠 대중문화의 소재로 사용되고 있다. 그가 여성 국극을 소재로 한 기획에 조언하는 전문가로 초청되는 경우도 많아졌다.

몬트리올에선 대부분의 공공장소에 영어와 프랑스어가 함께 기재되는데, 이 전시장에선 한국어도 볼 수 있었다. 모멘타 비엔날레에서는 정 작가를 비롯한 일부 해외 작가들의 전시장에 출신 국가의 언어를 병기했다. 한 감독은 “한국어 번역 때 프랑스 파리에서 30여 년간 큐레이터로 활동한 어머니의 도움을 받았다”며 웃었다.

윈도 갤러리에서 여성 국극 배우가 남성 인물로 분장하는 영상이 상영되는 모습. 모멘타 비엔날레 제공
윈도 갤러리에서 여성 국극 배우가 남성 인물로 분장하는 영상이 상영되는 모습. 모멘타 비엔날레 제공
윈도 갤러리에선 여성 국극 배우가 남성 인물로 분장하는 모습을 담은 영상을 학생들이 관람하고 있었다. 엘런 갤러리 관장 미셸 테리오는 “K팝이나 드라마로만 익숙한 한국 문화의 새로운 맥락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전시가 상당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고 했다.


몬트리올=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모멘타 비엔날레#정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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