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릴감 극대화시킨 환상성이라는 장치[정보라의 이 책 환상적이야]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9월 23일 01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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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황당할 수 있는 ‘환생’ 설정
탁월한 솜씨로 녹여내니 설득돼
◇듀얼/전건우 지음/280쪽·1만5000원·래빗홀

연쇄살인범이 있다. 연쇄살인마를 뒤쫓는 형사가 있다. 형사는 수집한 모든 증거와 단서를 추적하여 살인마의 꼬리를 잡고야 만다. 드디어 살인마를 눈앞에 마주하여 체포하려는 순간 형사는 살인마가 자신의 아내와 딸을 납치했음을 알게 된다. 분노한 형사는 살인마에게 달려들어 목을 조르기 시작한다. 절체절명의 순간에 번개가 하늘을 가르고 . 정신을 잃었던 형사는 영안실에서 깨어난다. 다른 사람의 몸에서.

장르문학의 승패는 대부분 여기서 갈린다. “환생? 재밌겠다!” 하고 파고드는 독자가 있는 반면에 “환생? 유치하게!” 하고 책을 덮고 다시는 돌아보지 않는 독자가 있다. 중간은 없다. 현대 사회에서 이미 대부분의 독자는 장르문학 특유의 소재나 전개 방식을 한 번쯤은 접해 봐서 대충 알고 있다. 그러니까 ‘환생’이 뭔지 모르지만 궁금해서 계속 읽는 새로운 독자를 ‘발굴’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독자를 얻거나 잃거나, 둘 중 하나다.

정보라 소설가
정보라 소설가
작가는 독자에게 매달리지 않는다. 화자 ‘나’는 번개를 맞고 사망하면서 형사였던 자신의 몸과 신분과 과거를 잊고 다른 사건의 피의자 몸에서 되살아난다. 영안실에 누워 있던 시체가 되살아나는 장면에서는 20년째 스스로 ‘호러 작가’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작가의 원래 전공을 볼 수 있다. 되살아난 ‘나’는 계속 달린다. 형사의 몸을 잃었더라도 그의 정신은 여전히 경찰이다. 연쇄살인마를 잡아야 하고, 납치당한 아내와 딸을 찾아야 한다.

미국 대중문화연구가 제리 파머의 이론에 따르면 스릴러의 핵심은 ‘음모’다. 추리소설의 특징은 탐정이 이성과 논리를 바탕으로 추리를 전개하여 사건의 수수께끼를 차근차근 풀어나가다가 마지막에 진실을 드러내고 범인을 밝히는 구조다. 스릴러에서는 첫 문장에서 범인이 드러나도 상관없다. 그 범인, 혹은 범인들이 꾸미는 음모를 주인공이 분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주인공의 탁월한 체력과 훈련된 실력이 강조되고, 적들을 뒤쫓아 세계를 뛰어다니는 주인공을 위해 최신 기술의 차량과 장비 등이 동원되고, 무엇보다도 주인공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그때그때 임기응변을 발휘하여 적의 함정에서 빠져나오는 장면들이 독자들에게 아슬아슬한 ‘스릴’을 느끼게 한다.

핵심이 되는 음모는 연쇄살인마 ‘리퍼’가 또 살인하리라는 사실이다. 주인공은 연쇄살인을 막아야 한다. 그런데 환생하면서 주인공이 본래 가지고 있던 경찰의 신분, 직무 수행을 위해 공식적으로 제공되는 여러 가지 장비, 인력 등의 자원은 모두 사라졌다. 남은 것은 임기응변뿐이다. 게다가 살인마도 주인공과 같은 순간에 죽었다가 다른 사람으로 환생했을 것이라는 정황이 점차 드러나기 시작한다.

환생은 추적의 과정을 좀 더 복잡하게 만들기 위한 장치일 뿐이다. 작가는 그 장치를 아주 능숙하게 활용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독자에게 숨 돌릴 틈을 주지 않는다. ‘듀얼’은 한국 장르 작가의 상상력과 역량을 증명할 정통 범죄스릴러다.


정보라 소설가
#환생#연쇄살인범#장르문학#듀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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