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만 평 천년숲정원을 앞뜰로 누리는 서라벌 여인의 사부곡[김선미의 시크릿가든]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8월 17일 1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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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4월 문을 연 경북천년숲정원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장소는 외나무다리다. 실개천을 따라 심어진 메타세쿼이아가 수면 위에 거울처럼 비친다. 경주=김선미 기자
불국토(佛國土)로 불리는 경주 남산 자락, 선덕여왕릉을 마주 보는 곳에 10만 평 숲이 있다. 여왕이 살던 시절, 서라벌엔 18만 호 기와집에 100만 명이 살았다고 하니 그땐 숲도 큰 마을이었을 게다. 신라인의 마을에 천년의 세월이 흘렀다. 왜가리가 날던 논은 대한제국 시절 묘목장이 됐다가 임업시험장으로, 다시 산림환경연구원으로 변신했다. 40년 전 묘목들은 이제 아름드리 숲을 이뤘다.

올해 4월 경상북도 첫 지방 정원으로 문을 연 ‘경북천년숲정원’ 이야기다. 1990년대 후반부터 일반에게 개방한 이곳은 2002년 태풍 루사로 쓰러진 나무를 외나무다리로 활용하면서 ‘인생 사진 맛집’으로 입소문이 났다. 실개천을 따라 쭉 심어진 메타세쿼이아가 수면에 거울처럼 비친다. 하지만 변변한 이름이 없어 산림환경연구원 수목원으로 불리다가 이번에 비로소 ‘천년숲정원’이란 이름을 얻었다. 신생 정원인데도 천년 고도를 찾는 관광객들에게 ‘핫플’로 떠올랐다.

2016년부터 7년 동안 137억 원의 사업비로 조성된 경북천년숲정원. 경주=김선미 기자
경주 아지매(아주머니의 경상도 방언) 서석태 씨(69)에게 천년숲정원은 앞뜰이다. 이 정원 안에 있는 경북산림환경연구원 쪽문 옆이 그녀의 집이기 때문이다. 아침저녁으로 이 정원을 산책하는 그녀에게 이곳은 그저 집 앞 정원이 아니다. 하늘나라로 간 남편의 땀과 추억이 서린 곳이다.

경북천년숲정원으로 통하는 쪽문 앞에 선 서석태 씨. 경주=김선미 기자
그녀를 만나게 된 건 우연일까, 필연일까. 천년숲정원의 오랜 역사를 알고 싶어 경북산림환경연구원에 문의했을 때 연구원 측은 “오래된 직원분들은 다 퇴직하셔서…”라며 난감해했다. 울창한 숲도 태초엔 누군가 나무를 심었지 않았겠나. 무작정 인근 갯마을의 경로당을 찾아갔더니 한 어르신이 말했다. “2년 전 저세상으로 간 최병문 씨가 쭉 임업시험장(경북산림환경연구원)에 다녔어요. 쪽문 바로 옆집에 살았지. 지금도 부인은 그 집에 살아요.”

백구(白狗)가 마당을 지키는 그 집 앞에서 30분쯤 기다리자, 외출했다가 돌아오는 한 여성을 만날 수 있었다. “혹시 최병문 씨의 부인이신가요”라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했다. 서석태 씨였다. 서 씨는 “잘 찾아오셨네. 하긴 이 동네에 나만큼 이 정원을 아는 사람도 없어요. 남편(최병문 씨)과 함께 근무했던 사람들은 이제 다 퇴직하고 없으니까요.” 서 씨가 맞아 준 집 안 곳곳에는 그들의 가족사진이 걸려 있었다.

서석태 씨(왼쪽)와 남편인 고 최병문 씨의 부부 사진.  경주=김선미 기자
서석태 씨(왼쪽)와 남편인 고 최병문 씨의 부부 사진. 경주=김선미 기자
“우리는 1974년 결혼해 쭉 이 집에 살았어요. 여기 경주 갯마을에 30호쯤 사는데, 마을 사람들이 우리 집 옆 쪽문을 통해 수목원의 풀도 베고 나무도 심으러 다녔어요. 남편도 연구원 기능직으로 일하는 동안 많은 나무를 심었답니다.”

이 집에도 작은 텃밭 정원이 있었다. 족두리꽃, 참나리, 애기범부채, 탐스럽게 열린 가지…. 서 씨는 “이거 냄새 좀 맡아보소”라며 보라색 꽃을 피운 사파이어 세이지 잎을 건넸다. 기분이 우울할 때 이 허브 향을 맡으면 행복해진다고 했다.

서석태 씨 집 텃밭정원에 심어진 참나리. 경주=김선미 기자
함께 천년숲정원을 돌아보기로 했다. “남편 살아있을 때 쪽문을 통해 임업시험장 수목원(현재의 천년숲정원)을 매일 산책했어요. 지금도 우리 손주들은 여길 거닐 때마다 ‘이 나무는 할아버지가 심은 나무’라고 말해요. 아이들도 마을 주민들도 저마다 이 숲에 주인의식이 있어요. 저는 사람들에게 10만 평 정원을 앞뜰로 갖고 산다고 자랑한답니다(웃음). 평생 나무랑 가까이 살았으니까요.”


메타세쿼이아 숲에 이르렀다. 나무들이 우거져 녹색의 색감이 깊었다. 메타세쿼이아가 어찌나 우람한지 서 씨가 두 팔을 벌려도 절반밖에 못 껴안았다. “지금이야 숲이지, 40년 전에는 허허벌판에 가느다란 어린 메타세쿼이아만 있었어요. 연구원 앞의 40m 높이 메타세쿼이아 두 그루도 1970년대에 남편이 심은 묘목이 자란 것이거든요.”

서석태 씨가 경북천년숲정원 메타세쿼이아를 껴안아보고 있다. 경주=김선미 기자
메타세쿼이아는 생장 속도가 매우 빨라서 전 세계적으로 조경수로 인기다. 한국의 메타세쿼이아는 국내 대표 산림학자인 고 현신규 박사(1911~1986)가 1956년 미국에서 들여왔다(강철기, ‘조경수에 반하다’). 낙우송과 매우 비슷하게 생겼지만, 낙우송 잎이 어긋나기로 달리는 데 비해 메타세쿼이아는 마주나기로 난다. 서 씨는 함께 걸으며 낙우송에 발달해 있는 기근(숨을 쉬는 뿌리)의 여부로 두 나무를 구별했다.

경북천년숲정원 메타세쿼이아 숲. 경주=김선미 기자
칠엽수(마로니에)가 빼곡하게 들어선 나무 터널에 다다랐다. 기념사진을 찍는 방문객들이 많았다. “이 나무들은 1979~1980년 남편과 마을 사람들이 심은 거예요. 그때는 나무들이 지금처럼 이렇게 자라날지 몰랐어요. 좀 더 간격을 두고 나무를 심었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라니까요. 그러고 보니 40년 넘게 이 길을 걸어왔네요.”

천년숲정원에는 서 씨의 남편이 심었다는 오래된 나무들만 있는 게 아니다. 연구원 안에서 양묘하던 배롱나무 340주로 올해 5월 배롱숲이 새롭게 조성됐다. 배롱나무는 경상북도의 도화(道花)다. 무더위와 척박한 토양에서도 잘 자라면서 꽃과 수피(樹皮)가 우아한 배롱나무는 강건하고 생활력이 강한 경북도민의 기품과 닮았다는 설명이다. 이제 막 심은 배롱나무들은 분홍, 보라, 하얀색의 꽃을 피워내고 있었다. 줄기가 연약해 보였지만 그래서 꽃과 어울림이 한 편의 시(詩) 같기도 했다. 이 어린 나무들도 언젠가는 노목이 될 것이다.

올해 5월 조성된 경북천년숲정원 배롱숲. 경주=김선미 기자
서 씨가 남편을 애틋하게 떠올리는 장소는 버들못 정원이다. 개나리, 조팝, 좀작살, 쉬땅나무 등 꽃피는 관목들이 연못을 둘러싸고 있다. “개나리 필 때 저 연못 옆 버드나무는 물에 들어가지 않으려고 깨금발 하는 모습이 참 예뻐요. 한 번 볼래요?” 서 씨가 휴대전화 사진첩에서 봄의 버들못을 보여줬다.

경북천년숲정원의 버들못 정원. 서석태 씨가 남편과 많은 추억을 쌓은 장소다. 경주=김선미 기자
“남편이랑 이 연못가에서 두런두런 많은 얘기를 했어요. 남편이 천생 양반이라, 마누라한테 화내는 일도 없고 자상해서 주변 사람들로부터도 인격적으로 대접받고 살았어요. 요즘도 커피 끓여 보온병에 담아와 연못가에 앉아요. 남편과의 추억이 저절로 떠올려지거든요.”

천년숲정원에는 수목 355종 5만 본, 초목 55종 14만 본 등 410종 19만 본의 식물이 식재돼 있다. 특히 초본의 대부분은 이번에 정원을 만들면서 새롭게 심은 것이다. 여러 종류의 무궁화를 감상할 수 있는 무궁화동산, 신라 이미지를 형상화한 서라벌 정원, 울진 후정리 향나무 등 경북지역 천연기념물의 후계목을 키우는 천연기념물원도 조성했다. 어린 학생들이 견학 와서 숲을 배우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경북천년숲정원 안내판. 단독 홈페이지가 아직 구비돼 있지 않은 게 ‘옥의 티’로 보였다. 경주=김선미 기자
경북천년숲정원 안내판. 단독 홈페이지가 아직 구비돼 있지 않은 게 ‘옥의 티’로 보였다. 경주=김선미 기자
서 씨가 말했다. “숲정원만큼 시간을 켜켜이 쌓아 물려줄 수 있는 유산이 있을까요. 한가지 바람이 있다면 자연에 너무 많이 손대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돈 들여 불필요한 인공물을 만드는 대신 후세를 위해 자연스러운 모습을 남겨줘야 해요. 그래야 나무의 강인한 생명력과 숲이라는 선물을 느낄 수 있거든요.”

경북천년숲정원 조감도. 경북산림환경연구원 제공

p.s. 경북산림환경연구원에서 2002년부터 근무했다는 전원찬 산림환경과장은 고 최병문 씨가 연구원에서 오랫동안 일하면서 지금의 천년숲정원 나무를 심는 데 기여한 사실을 확인해 주었다. “함께 밥도 여러 번 먹었습니다. 참 열심히 하셨죠. 옛날 공무원들은 전부 현장에 나가 삽 들고 나무를 심었으니까요.”

전 과장 개인적으로는 연구원 본관 앞에 심어진 은목서가 뜻깊다고 했다. “경북대 임학과에 다니던 1988년, 연구원으로 실습을 나왔을 때 봤던 은목서가 지금도 같은 자리에 있습니다. 당시 은목서의 북방한계선은 경주 부근이었는데, 지금은 기후변화로 인해 서울에서도 심는 나무가 됐어요.” 정원은 지나간 시간을 음미하는 곳인 동시에 우리가 미래를 위해 해야 할 일을 일깨워주는 장소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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