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고모’의 푸근한 집밥 이야기… “언젠가 ‘동네 밥집’ 차리고 싶어”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5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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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그냥 밥 먹자는 말이… ’ 펴낸 배우 양희경
“고등학교 1학년때 집안 풍비박산… 언니는 기타, 난 밥상 차리며 버텨
지긋지긋했지만 50년 하니 좋아져… 된장 등 손쉬운 재료 음식 소개
혼자 살아도 집밥 해먹었으면… ”

배우 양희경 씨가 음식 만드는 모습을 그린 그림. 양 씨의 지인인 화가 대니 임이 그렸다. 최근 에세이 ‘그냥 밥 먹자는 말이 
아니었을지도 몰라’를 펴낸 양 씨는 “내고 싶은 만큼만 돈을 내면 집밥을 먹을 수 있는 따뜻한 ‘동네 밥집’을 언젠가 차리고 
싶다”고 했다. 달 제공
배우 양희경 씨가 음식 만드는 모습을 그린 그림. 양 씨의 지인인 화가 대니 임이 그렸다. 최근 에세이 ‘그냥 밥 먹자는 말이 아니었을지도 몰라’를 펴낸 양 씨는 “내고 싶은 만큼만 돈을 내면 집밥을 먹을 수 있는 따뜻한 ‘동네 밥집’을 언젠가 차리고 싶다”고 했다. 달 제공
고등학교 1학년, 엄마가 보증을 잘못 선 바람에 집안이 풍비박산났다. 엄마와 이혼했던 아빠는 이미 세상을 떠난 상황. 언니는 밖으로 나가서 통기타를 치며 돈을 벌었고, 동생은 엄마와 언니 대신 아침저녁 밥상을 차리며 이를 악물고 버텼다.


시간이 흘렀다. 배우가 된 동생은 TV 드라마로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부엌을 벗어나진 못했다. 잠을 줄여가며 일하고, 집에 돌아와 밥을 차리면서 서러울 때가 많았다. 그렇지만 나이가 들면서 생각을 바꿨다. “우리 집에 와 밥 좀 먹어”라며 친구들을 초대해 함께 밥을 해 먹고 놀았다. 부엌에서 지내는 시간을 긍정하니 요리가 일이 아닌 ‘놀이’가 됐다. 최근 에세이 ‘그냥 밥 먹자는 말이 아니었을지도 몰라’(달·사진)를 펴낸 배우 양희경 씨(69) 이야기다.

1일 전화로 만난 그는 “사실 요리는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해야 해서 시작한 일”이라며 유쾌하게 웃었다.

“집안이 무너진 뒤 언니(가수 양희은·71)와 제가 아빠 엄마 역할을 해야 했어요. 과거엔 밥하는 일이 지긋지긋했는데 50년을 하고 나니 좋아지더라고요. 연기가 아니라 요리가 천직인가 의심될 정도라니까요. 하하.”

1981년 연극 ‘자 1122년’으로 데뷔한 그는 드라마에서 주로 말썽을 일으키는 고모나 이모 역할을 맡아 ‘국민 고모’로 불린다. 연극 ‘늙은 창녀의 노래’(1995년) ‘자기 앞의 생’(2019년), 드라마 ‘딸 부잣집’(1994년) ‘넝쿨째 굴러온 당신’(2012년) 등 현장을 종횡무진 누비며 연기자로 인정받았지만 집으로 돌아오면 두 아들의 밥을 챙겨야 하는 주부였다.

“아이들에게 시간을 내줄 수 없으니 밥이라도 잘해 주자 싶었거든요. 일과 가정일을 병행하는 건 투쟁이었어요.”

그는 신간에서 화려한 음식이 아닌 된장, 콩나물처럼 냉장고만 열면 손쉽게 찾을 수 있는 재료로 만들 수 있는 음식을 소개한다. 콩나물 무 생채, 시금치 카레 같은 집밥 레시피를 보고 있으면 마음이 푸근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때 젊은이들이 배달 음식만 시켜 먹지 않았나요. 혼자 사는 이들이 스스로 집밥을 해 먹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담았어요.”

그가 집밥을 하는 건 자신을 위한 일이기도 하다. 그는 조미료가 많이 들어간 식당 음식을 먹으면 자주 탈이 나는 체질 탓에 촬영장에도 항상 도시락을 싸 들고 다녔다. 나이가 들수록 출연 섭외가 줄어들어 시간을 보낼 일도 필요했다. 3년 전부터 집밥 레시피를 소개하는 유튜브 ‘양희경의 딴집밥’을 시작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가 ‘고추지름장’ 레시피를 소개한 영상은 조회 수가 60만 회에 이른다.

“아들의 권유로 시작한 유튜브인데 요즘 집밥 그리운 사람이 많은가 봐요. 저는 언젠가 ‘동네 밥집’을 차리고 싶어요. 내고 싶은 만큼만 돈을 내면 집밥을 먹을 수 있는 따뜻한 공간요.”

양 씨는 2013년 영화 ‘고령화 가족’ 이후 영화에 출연한 적이 없다. 그러나 1일 통화 때 그는 “촬영차 전남 여수시에 머물고 있다. 10년 만에 영화에 출연하게 됐다”고 귀띔했다. 무슨 역할인지, 일흔이 코앞인 만큼 역할에 제약이 생기지 않았느냐고 묻자 그는 너털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고모 역을 맡을 때도 골라서 한 게 아니듯, 전 제게 오는 역할을 하는 겁니다. 세상이 내 연기가 필요 없다고 할 때까지는 최선을 다하는 거예요. 그러다 정말 섭외가 안 들어오면 집밥 해 먹으며 행복하게 살면 됩니다. 어떤 영화인지는 아직 비밀!”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푸근한 집밥 이야기#동네 밥집#에세이#배우 양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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