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당신은 ‘나의 실존’을 확신할 수 있습니까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3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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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이미 죽었다고 생각하거나, 신체 일부 자각하지 못하는 사람들
각종 자아 인지 장애 사례 소개… 철학-뇌과학 오가며 ‘정체성’ 탐구
◇나를 잃어버린 사람들/아닐 아난타스와미 지음·변지영 옮김/396쪽·1만9800원·더퀘스트

‘자아’란 실체가 있는 것일까, 아니면 진화 과정에서 생긴 뇌의 기능에 불과한 것일까? ‘나를 잃어버린 사람들’은 자아 인지에 문제가 생기는 질병과 정신적 장애들을 일별하며 자아란 무엇인지 질문을 던진다. 게티이미지코리아
‘자아’란 실체가 있는 것일까, 아니면 진화 과정에서 생긴 뇌의 기능에 불과한 것일까? ‘나를 잃어버린 사람들’은 자아 인지에 문제가 생기는 질병과 정신적 장애들을 일별하며 자아란 무엇인지 질문을 던진다. 게티이미지코리아
미국 킹스턴에 사는 니컬러스는 어린 시절 방치와 학대를 겪었다. 열한 살 무렵 갑자기 몸 전체가 완전히 분리되는 느낌을 받았고, 열두 살에는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하고 갑자기 “꿈속을 헤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이후 수년 동안 주변은 물론이고 자기 자신과 몸까지 모든 것을 비현실적으로 느끼는 날들이 이어졌다. 스스로를 낯설게 느끼는 이인증(離人症)이 발병한 것.

니컬러스는 늘 불안에 사로잡혔고, 깨어 있는 동안에는 두려움에 혼자 있지도 못했다. 주먹을 쥐었다 펴는 작은 일마저도 자신이 행동하는 게 아니라고 느꼈다. 신경정신의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이인증 환자들은 실제로 불쾌한 자극에 대한 자율 반응을 측정했을 때 마치 ‘스위치가 꺼진 것처럼’ 나타난다고 한다. 이는 ‘자아’를 만드는 데 신체적 감각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말해 준다.

과학기술 주간지 뉴사이언티스트의 부편집장 출신 과학저널리스트가 자아 인지에 문제가 생기는 질병과 정신적 장애들을 일별하며 ‘자아란 무엇인가’를 탐구한 책이다.

‘코타르 증후군’은 자신이 죽었다고 생각하는 망상이다. 환자들은 엄연히 존재하는 신체 일부가 사라졌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의사가 “(나와 대화를 나누는) 당신의 정신은 분명히 살아 있다”고 설득하면 “내 정신은 살아 있지만 뇌는 죽었다”고 답하는 환자도 있다. 심하면 극단적 선택으로 이어질 수도 있지만 반드시 그런 건 아니다. 저자가 만난 프랑스의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는 말한다. “이미 죽었는데(죽었다고 생각하는데) 더 이상 어떻게 죽겠어요.”

신체통합정체성장애(BIID)는 팔다리 등 자신의 몸 일부가 자기 것이 아니라고 느끼는 장애다. 자기 몸이 아니라고 느끼는 부위를 절단하는 끔찍한 행동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 장애는 뇌가 발달하는 도중 팔다리 등이 뇌에 적절하게 인지되지 않아 생기는 것으로 추정된다. 사고로 절단된 신체 부위가 여전히 존재한다고 뇌가 오해하는 환각지(幻覺肢)와는 반대인 셈이다. 저자는 철학자 토마스 메칭거의 글을 인용해 “내 몸과 감각들, 그리고 다양한 부위를 갖는다는 것은 누군가가 된다는 느낌의 핵심”이라고 했다.

책은 이 밖에도 ‘서사적 자아’를 망가뜨리는 알츠하이머병, 자아를 조각조각 해체해 버리는 조현병, 또 하나의 몸이 있다는 느낌과 관련된 환각 ‘도플갱어 효과’, 무아지경을 겪는다는 ‘황홀경 간질(ecstatic epilepsy)’ 등을 차례로 조명하면서 ‘나’를 찾아 나간다. 저자는 “자아는 놀라우리만치 탄탄하면서도 무서울 정도로 연약하다”고 했다.

소개되는 신경심리학적 질병이 흥미롭지만 질병과 자아의 실체 및 유무에 대한 시사점을 연결하려는 저자의 시도가 매번 성공하는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생생한 여러 사례를 바탕으로 철학과 뇌과학을 오가는 스토리텔링 솜씨가 대단하다. 오늘날에도 여전한 난제인 ‘자아’의 실체에 대한 질문으로 독자를 이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자아#이인증#자아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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