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류기업이 ESG 경영에 앞장서는 이유, 사람을 키우는 리더십”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2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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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계수미 기자가 만난 리더
오비맥주 구자범 수석 부사장

‘우리는 더 크게 환호할 미래를 위해 큰 꿈을 꿉니다’. 구자범 수석 부사장이 오비맥주와 모기업인 AB인베브의 슬로건이 쓰여 있는 서울 강남구 삼성동 오비맥주 본사 복도 벽 앞에 섰다.
‘우리는 더 크게 환호할 미래를 위해 큰 꿈을 꿉니다’. 구자범 수석 부사장이 오비맥주와 모기업인 AB인베브의 슬로건이 쓰여 있는 서울 강남구 삼성동 오비맥주 본사 복도 벽 앞에 섰다.
최근 기업 경영에서 ESG(환경·사회·지배구조)가 화두로 떠오른 가운데, 대표적인 주류기업인 오비맥주의 흥미로운 활동이 눈길을 끌고 있다. 맥주공장을 잠시 멈추고 재해구호용 워터 캔을 제작해 기부하는가 하면, 버려지는 맥주박 등 각종 부산물을 새로운 제품으로 재탄생시킨 친환경 업사이클링 행사도 연다. ‘스마트 드링킹(Smart Drinking)’이라 이름붙인 적극적인 건전음주 캠페인도 화제다.

이 밖에 지역아동센터를 개선해 쾌적하게 공부할 수 있는 ‘해피 라이브러리(Happy Library)’를 마련해주고, 결식우려아동 도시락 지원, 연탄 나르기 봉사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적인 사회공헌, 나눔 활동을 펴고 있다.

미국 뉴욕에서 변호사로 커리어를 시작,
오비맥주에서 법무를 넘어 경영인으로 변신
지난해 10월, 오비맥주는 맥주공장의 생산라인을 잠시 멈추고 재해구호용 ‘OB워터’를 직접 제작해 약 15만 캔(355mL)을 전국재해구호협회에 기부했다.
지난해 10월, 오비맥주는 맥주공장의 생산라인을 잠시 멈추고 재해구호용 ‘OB워터’를 직접 제작해 약 15만 캔(355mL)을 전국재해구호협회에 기부했다.
이런 활동의 중심에는 오비맥주의 ESG를 총괄하는 구자범(51) 수석 부사장이 있다. 그는 남다른 이력을 지녔다. 11살 때 부모를 따라 미국에 간 이른바 이민 1.5세대로 뉴욕에서 변호사로 커리어를 시작했다. 1999년 귀국해 법무법인 광장, 삼성탈레스에서 변호사로 일했고, 2007년 오비맥주에 법무담당 이사로 입사했다. 15년 넘게 임원으로 재직하면서 법무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영역을 이끌어왔다. 2016년부터는 오비맥주 등기이사로 선임돼 경영을 책임지고 있다.

현재 구 부사장은 법무와 준법감시 및 정책홍보를 총괄하고 있다. 오비맥주의 모기업인 글로벌 주류기업 AB인베브의 동아시아 지역의 법무를 이끌고 있기도 하다. 서울 강남구 삼성동 오비맥주 본사에서 구 부사장을 만났을 때 그는 그야말로 ‘쿨’한 인상이었다. 무엇을 질문하든 시원스럽게 답하는 모습에서 소탈함, 솔직함이 묻어났다.

법무에서 영역을 넓혀 경영인이 됐는데요.

“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해서인지 법무에 한정된 일만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36세 때 ‘경영도 배워보겠느냐’는 당시 오비맥주 대표의 말씀에 끌려 입사를 결심했죠. 기업의 모든 영역은 하나의 서클처럼 연결돼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새로운 영역을 맡으면 주저하기보다 도전의욕이 생겼죠. 오비맥주는 성과를 인정하면 기회를 많이 줍니다. ‘여기서 잘해? 그럼 이것도 한번 해봐’ 하는 식으로요. 저와 잘 맞았죠.”

리더로서 가장 중시하는 건 파트너십,
코워킹(coworking)하는 자세가 필요
오비맥주 본사에서 진행한 ‘업사이클링 패션쇼’. 임직원들이 모델로 등장해 오비맥주 행사에서 사용했던 폐현수막을 활용한 모던한복을 선보였다.
오비맥주 본사에서 진행한 ‘업사이클링 패션쇼’. 임직원들이 모델로 등장해 오비맥주 행사에서 사용했던 폐현수막을 활용한 모던한복을 선보였다.
직원들의 리더로서 중시하는 건 뭔가요.

“파트너십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같이 가는 동반자라고 할까요. 일방적으로 지시하기보다는 파트너로 코워킹(coworking)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보죠. 개인적으로는 세세하게 관여하는 마이크로 매니지먼트를 아주 싫어합니다. 일을 직접 진행해봐야 경험이 쌓이고 배우는 것도 많죠. 일일이 간섭하면 사람도 못 크고 서로 피곤합니다. 기회를 주면서 스스로 성과를 낼 수 있도록 하죠. 비록 성과를 못 냈더라도 충분히 노력했으면 인정해주려 하고요.”

구 부사장은 오비맥주에서 매년 실시하는 직원 만족도 조사에서 자신이 이끄는 팀원들의 만족도가 높게 나왔다고 자랑했다. 그는 법무팀, 준법감시팀, 사회공헌팀, 대관정책팀, 홍보팀, 사내소통팀 등을 총괄하고 있다. 이 중에서 그가 요즘 가장 오래 시간을 함께 보내는 팀은 ESG를 맡고 있는 사회공헌팀이라고 말했다.

맥주박을 활용한 식품 등
친환경 스타트업들과 ‘업사이클링’ 협업
올해 1월 국제아동인권센터와 협약을 맺었다. 오비맥주가 마련한 ‘해피 라이브러리’를 이용하는 아이들에게 아동권리 교육을 제공한다.
올해 1월 국제아동인권센터와 협약을 맺었다. 오비맥주가 마련한 ‘해피 라이브러리’를 이용하는 아이들에게 아동권리 교육을 제공한다.
오비맥주 ESG 경영의 큰 그림은 무엇인가요.

“오비맥주와 모기업인 AB인베브는 ‘소비자와 미래 100년 이상 동행’이라는 기업 비전을 가지고 있습니다. 맥주 생산부터 포장, 운반, 소비 전 과정에 걸쳐 환경 경영와 사회적 책임 이행, 준법경영 등의 가치를 실현하고자 하죠. 2017년 지속가능한 경영 정책을 수립하면서 ESG 실행을 위한 단계를 꾸준히 밟아왔어요. 기후변화 대응, 재활용 포장재, 스마트농업, 수자원관리 등 4개 과제를 설정했습니다. 2025년까지 탄소 배출량을 25% 감축하는 것이 목표죠. 최근에는 2040년까지 탄소중립(Net Zero) 달성을 선언했어요.”

구 부사장은 무엇보다 탄소중립에 가장 힘쓰는 이유로 “우리 비즈니스가 자연환경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농작물과 물은 우리의 핵심 원료죠. 맥주 양조, 제품 운송 및 냉장보관을 위해 에너지와 연료가 필수고요. 장기적인 기후위기 대응 전략을 세워 이행해나가는 것이 최우선 과제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친환경 경영의 실례를 소개한다면.

“먼저, 맥주공장 3곳에 태양광 발전설비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맥주 생산에 필요한 전력을 태양광에너지로 대체해 탄소 배출을 줄이려는 것이죠. 전남 광주공장이 올해 9월 완공 예정이고, 경기도 이천과 충북 청주공장도 내년 안에 끝낼 계획입니다. 세 곳 다 재생에너지를 사용하게 되면 매년 소나무 112만 그루를 심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내게 됩니다.

또한 카스 병맥주(500mL)의 포장 상자는 100% 재생용지로 교체했고, 카스 캔맥주를 포장하는 플라스틱 필름의 두께도 최소로 줄여서 연간 플라스틱 사용량을 96톤 줄였죠. 2025년까지 100% 회수 가능하거나, 50% 이상 재활용품으로 만든 포장재만 사용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구 부사장은 친환경 스타트업들과의 다양한 ‘업사이클링’ 협업도 소개했다. 이들은 오비맥주가 유망 스타트업의 발굴을 위해 매년 개최하는 ‘스타트업 밋업(Meet-Up)’ 행사를 통해 인연을 맺은 곳들이다. 특히, 맥주 양조 과정에서 생기는 부산물인 맥주박을 활용한 식품이 눈길을 끈다. ‘카스 맥주박 업사이클링 푸드 페스티벌’에서는 카스 맥주박으로 만든 피자, 에그타르트, 약과, 아이스크림, 비어라떼 등 다양한 메뉴를 선보였다. 맥주박을 활용한 리너지 가루를 넣은 고단백 에너지바인 ‘리너지바’와 ‘한맥 리너지 크래커’는 시판 제품으로 내놓아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리너지 가루는 일반 밀가루 대비 단백질이 2.4배, 식이섬유는 20배가 높고 칼로리는 30% 낮다.

지난해 ‘세계 환경의 날(6월 5일)’을 앞두고 오비맥주 본사에서 개최한 ‘업사이클링 페스티벌’은 ‘가치를 더해 먹고 쓰고 입다’라는 슬로건 아래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오비맥주 행사에서 사용했던 폐현수막으로 만든 모던한복 패션쇼에서는 임직원들이 직접 모델로 등장해 재미를 더했다. 업사이클링 클래스에는 오비맥주와 협업하고 있는 친환경 스타트업 대표들이 연사로 나섰다. 업사이클링 마켓에서는 맥주박으로 만든 음식과 화장품, 플래너 등을 선보였고, 맥주 페트병 뚜껑을 재활용해 만든 키 링 등도 판매해 호응을 얻었다.

구 부사장은 이 밖에 2010년부터 국제 환경단체 푸른아시아와 함께 미세먼지와 황사의 발원지인 몽골에 나무를 심는 ‘카스 희망의 숲’ 캠페인에 대해서도 전했다. 지난해까지 몽골에심은 나무가 4만5000그루가 넘는다고 했다.

‘스마트 드링킹(Smart Drinking)’이라 이름붙인
적극적인 건전음주 문화 캠페인
오비맥주는 음주운전방지장치 시범사업 운영에 참여했다. 서울 강남구 삼성동 본사 앞에서 차에 장치를 단 임직원들이 기념 촬영을 한 모습.
오비맥주는 음주운전방지장치 시범사업 운영에 참여했다. 서울 강남구 삼성동 본사 앞에서 차에 장치를 단 임직원들이 기념 촬영을 한 모습.
‘스마트 드링킹(Smart Drinking)’ 캠페인은 무엇인가요.

“오비맥주와 AB인베브에서는 건전한 음주 문화를 전파하는 것이 중요한 어젠다입니다. 연간 마케팅 비용의 3%는 건전음주 마케팅에 사용한다는 내부 규정도 있죠. 폭음 등으로 사회적 손실이 커지면 결국은 주류기업에도 마이너스로 작용하니까요.

카스제로를 비롯해 버드와이저 제로, 호가든 제로 등 이미 5종류의 논 알코올 제품을 내놓은 것도 스마트 드링킹 문화를 위한 것이죠. 소비자에게 선택의 폭을 넓혀 알코올 부담 없이 맥주 한 잔이 주는 즐거움을 전달할 수 있으니까요. 카스제로는 지난해 논 알코올 음료 시장에서 1위를 차지했습니다. 카스와 같은 원료로 발효 및 숙성 과정을 거친 후 여과 단계에서 알코올만 추출하는 공정으로 카스 고유의 청량한 맛은 그대로 살려냈죠.”

구 부사장은 최근 관심을 모은 대표적인 활동으로 도로교통공단과 함께한 음주운전방지장치 시범사업 운영을 들었다.

“차에 음주측정기를 설치해 혈중 알코올 농도를 측정하는 것이죠. 알코올이 감지되면 시동이 걸리지 않아요. 해외에서 음주운전 재범률을 크게 줄이는 것으로 나타났고, 미국, 스웨덴 등에서는 상습 음주운전자의 차량에 설치를 의무화했습니다. 오비맥주는 지난해 전국으로 맥주를 배송하는 화물차와 임직원 차량 총 40대에 음주운전방지장치를 설치해 시범사업에 참여했죠. 효과적인 정책을 만들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설문조사와 데이터 등 운영 결과를 정부 기관에 연구 자료로 제출했습니다.”

맥주 생산라인을 잠시 멈추고
재해구호용 워터 캔 제작
구자범 수석 부사장은 법무팀, 준법감시팀, 사회공헌팀, 대관정책팀, 홍보팀, 사내소통팀 등을 총괄하고 있다. 그가 요즘 가장 오래 시간을 함께 보내는 팀은 ESG를 맡고 있는 사회공헌팀이라고.
구자범 수석 부사장은 법무팀, 준법감시팀, 사회공헌팀, 대관정책팀, 홍보팀, 사내소통팀 등을 총괄하고 있다. 그가 요즘 가장 오래 시간을 함께 보내는 팀은 ESG를 맡고 있는 사회공헌팀이라고.
재해구호용 워터 캔 제작도 화제를 불러일으켰는데요.

오비맥주는 2016년부터 전국재해구호협회와 구호물품 지원사업을 이어왔습니다. 지난해 10월에는 맥주 생산라인을 잠시 멈추고 재해구호용 ‘OB워터’를 직접 생산해 약 15만 캔을 전달했어요. 물을 핵심 원료로 사용하는 기업이라 첨단 정수시설을 갖고 있어서 가뭄이나 각종 재난상황일 때 이재민들에게 빠르게 물을 전달하려고 합니다. 앞으로도 매년 재해구호를 위해 OB워터를 생산해 기부한다는 계획도 세워놓고 있죠.”

이 밖에 구 부사장은 주력하는 사회공헌 활동으로 어린이 방과 후 돌봄 시설인 지역아동센터를 개선하는 ‘해피 라이브러리(Happy Library)’ 사업을 꼽았다. 지난해 경북 울진에 지역 10호점을 열었고, 올해 11호점을 준비하고 있다. 지역아동센터는 주로 한 부모 가정, 조손 가정, 저소득층 가정 등 사회적 돌봄이 필요한 아이들을 위한 복지시설이다. 오비맥주 임직원 봉사단도 직접 방문해 가구 꾸미기, 청소, 도서 정리, 벽화 그리기 등 아이들이 쾌적한 환경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돕는다고 한다.

“올해 1월 말, 국제아동인권센터와 ‘아동권리 교육’ 협약을 맺었어요. 이번 협약으로 국제아동인권센터에서는 ‘해피 라이브러리’를 이용하는 아이들에게 아동권리 교육을 제공합니다. 전문적인 교육 프로그램이 아이들의 자존감 향상과 지역 사회의 아동 인권 감수성 증진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죠.”

올해 ESG 계획이 궁금한데요.

“기존 활동 외에 코로나19로 큰 피해를 입은 소상공인을 도울 수 있는 방안을 아직 고민하고 있습니다. 주류기업이라고 호프집 등 맥주를 파는 곳만 대상으로 하는 건 아니에요. 누가 시켜서 하는 건 의미가 없고, 무엇을 정해두고 그 틀 안에서 하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사회공헌팀원들에게도 ‘그게 형식적인 거지, 무슨 사회공헌이냐’는 말을 종종 해요. 팀원들이 피곤할 겁니다(웃음). 한 때뿐인 게 아니라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보려고 합니다.”



계수미 기자 soomee@donga.com
사진/오비맥주 제공
동아일보 골든걸 goldengirl@donga.com
#goldengirl#골든걸#계수미 기자가 만난 리더#오비맥주#구자범 수석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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