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기자의 5가지 직업병[청계천 옆 사진관]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월 31일 13시 3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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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병은 산업사회의 산물이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분업화·고도화에 따라 직업이 세분화되면서 다양한 증상이 생겼다는 겁니다. 저희 신문 사진기자들도 예외는 아닙니다. 사진기자의 직업병 증세를 5가지로 정리해 봤습니다.

① 폭식·속식증

많은 양의 밥을 빨리 먹습니다. 딱히 정해진 점심시간이 없다보니 요령껏 먹어야 하는데 시간이 빡빡하죠. 취재 도중 짬을 내 식사를 하다가 ‘물먹은’ 트라우마가 있다면 더 급합니다. 신입 사진기자들은 선배들과 같이 밥을 먹다가 체하기 일쑤. 느긋하게 먹을 수 있을 때도 이미 버릇이 된 속도는 줄지 않습니다. 소화불량과 위장 장애는 덤. 비슷한 증상을 겪는 직업군으로는 간호사, 응급구조대원, 은행원 등이 있습니다.

② 백안(白眼)증

흰자가 많이 보이는, 일명 ‘째려보는 눈’입니다. 사진기자는 취재 현장에 도착하면 본능적으로 재빨리 뉴스감을 찾아 주변을 ‘스캔’합니다. 상황을 파악한 뒤 핵심 ‘그림’을 찾기 위해서죠. 시간에 쫓기는 취재현장일수록 이 증세는 심해집니다. 허둥댑니다. 문제는 이 버릇이 사석에까지 무의식적으로 이어진다는 것이죠. 처음 보는 분에게서 “정보과 형사냐, 국정원이냐”는 소리를 듣기도 합니다.

마땅한 치료법은 없다보니, 전체를 둘러보지 않고(눈을 안 굴리고) 멍한 표정을 짓곤 합니다. 아예 눈을 안 마주치기도 하고요. 그러다 더 오해를 받는 게 문제지만.

③ 도마 증후군

예수의 12 제자 중 한명인 도마는 스승의 부활 소식에 “못 자국을 직접 보지 않고는 믿지 않겠다”고 하다가 눈으로 보자 곧바로 믿습니다(요한복음). 의심이 많지만 정작 눈으로 보게 되면 그냥 믿는 습관입니다. 거꾸로 말하면 보이지 않는 것은 의심하지도, 잘 캐묻지도 않게 됩니다. 공개된 사건을 사진 취재하고 난 며칠 뒤 타 언론매체에 그 사건 이면의 다른 진실이 보도되는 경험을 간혹 겪습니다. 언론종사자로서 부끄러운 일입니다.

④ 비주얼 난독증

가족·친지들과 여행할 때 이 증세가 두드러집니다. 명소에서 동행자들은 경탄과 환호를 연발하는데도 시큰둥하게 “이게 뭐가 멋있느냐”고 핀잔을 줘 분위기를 썰렁하게 만든다. 한마디로 재수 없는 멤버지요. 직업상 시각적으로 화려한 곳을 많이 다니다보니 어지간한 비주얼로는 만족하지 못하는 버릇입니다.

사진은 많이 찍는데 오히려 ‘시각 독해력’이 떨어지는 역설에 빠진 것이죠. 하지만 아름답지 않은 경관이 어디 있으며 사연 없는 곳이 하나라도 있나요. 소박한 볼거리라도 ‘와’ 감탄사를 반복하며 꼼꼼히 음미하는 것이 치료법입니다.

⑤ 공감 저하증

고통을 겪는 피해자를 배려하지 않고 무리하게 카메라를 들이대 비난을 받곤 합니다. 냉담해 보일 때가 많은 것이 사실이죠. 변명이지만, 사진기자들은 결코 냉혈한이 아닙니다. 카메라 뒤에서 울컥해 취재가 끝난 뒤 먹먹한 마음에 한동안 손에 아무 것도 못 잡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라도 도울 방법을 찾는 사진기자들도 많습니다. 문제는 사진기자들은 일반인들에 비해 고통 받는 사람들을 직접 만나는 경우가 훨씬 잦다는 것이죠. 피해자가 중심이 되는 뉴스를 취재하는 일이 사진기자의 일상입니다. 아파하는 이들을 자주 접하다보니 고통의 공감이 두려워 스스로를 취재원과 일시적으로라도 분리하려는, 일종의 자기 방어 기제가 작동하는 듯합니다.

이 외에도 아직 모르는 다른 증세가 더 있겠지요. 특히 현장에서 늘 당황하고 허둥대는 난치병은 고치기 힘들 것 같습니다. 여러분들의 직업병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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