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분도 길어”… 요즘 ‘입덕’은 ‘쇼트폼’으로 한다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1월 15일 11시 2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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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초 분량 ‘투바투’ 수빈 쇼츠 조회수 875만 회
팬덤과 소속사도 쇼트폼 제작에 사활
짧은 영상 즐기는 Z세대 영향

보이그룹 투모로우바이투게더의 리더 수빈이 한 음악방송에서 실수한 장면을 담은 유튜브 쇼츠. 이 영상의 조회수는 875만 회에 달한다. 유튜브 캡처
보이그룹 투모로우바이투게더의 리더 수빈이 한 음악방송에서 실수한 장면을 담은 유튜브 쇼츠. 이 영상의 조회수는 875만 회에 달한다. 유튜브 캡처

“투바투(투모로우바이투게더·TXT) 영상 계속 뜨네. 입덕할 것 같아ㅠㅠ”

지난해 빅히트 뮤직 소속 보이그룹 TXT의 팬튜브(팬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에 올라온 한 영상에는 TXT의 팬이 될 것 같다는 내용의 댓글이 달렸다. 영상에서는 자신이 리더임을 잊어버린 멤버 수빈이 한 음악방송에서 그룹 소개를 시작하지 않고 다른 멤버들을 쳐다보는 장면이 담겼다. 2초 후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깜짝 놀란 뒤 ‘인사하겠습니다, 하나, 둘!’이라고 운을 떼는 수빈에 ‘투바투를 이 영상으로 처음 알았는데 너무 귀엽다’는 반응이 쏟아졌다. 이 영상은 유튜브가 제공하는 쇼트폼(짧은 형식) 서비스인 ‘유튜브 쇼츠’로, 분량은 15초에 불과하다. 이 짧은 영상의 조회수는 무려 875만 회, ‘좋아요’ 개수는 29만 개에 달한다.

1분 내외의 짧은 영상을 찾아보는 Z세대가 많아지면서 아이돌 그룹의 ‘입덕’(입문과 덕후의 합성어)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쇼트폼이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대표적인 쇼트폼서비스는 유튜브 쇼츠, 인스타그램의 ‘릴스’, 그리고 틱톡. 유튜브 쇼츠는 1분, 릴스는 90초, 틱톡은 10분의 시간제한이 있다. 쇼트폼 콘텐츠의 경우 무대 위 강렬한 퍼포먼스나, 예능에서의 재밌는 장면 등 ‘하이라이트’만 1분 내외로 편집된 영상이기 때문에 아이돌 그룹 또는 개별 멤버의 매력을 단번에 인지하기 쉽다는 장점이 있다.

걸그룹 르세라핌의 멤버 사쿠라가 일본어를 잊어버리고 당황해하는 모습이 담긴 쇼츠. 유튜브 캡처
걸그룹 르세라핌의 멤버 사쿠라가 일본어를 잊어버리고 당황해하는 모습이 담긴 쇼츠. 유튜브 캡처

쇼트폼은 원본 영상의 인기를 뛰어넘는다. 쏘스뮤직 소속 걸그룹 르세라핌이 이달 유튜브 채널 ‘디글’에 출연해 유튜버 조나단과 인터뷰를 하는 17분 분량의 영상 조회수는 87만 회. 반면 인터뷰 중 일본인 멤버 사쿠라가 일본어를 잊어버리고 “겸손이 일본어로 뭐지?”라며 헷갈려 하는 유튜브 쇼츠는 조회수가 227만 회에 달한다. 20초 분량의 쇼츠가 전체 인터뷰 영상보다 두 배 이상 높은 조회수를 기록한 것이다. 보이그룹 아스트로 멤버 문빈의 ‘후’라는 곡 무대영상 ‘직캠’(팬 등이 직접 촬영한 캠동영상)도 마찬가지다. 문빈은 한 무대에서 검정색 가죽의상을 입고 절도 있는 안무를 선보여 화제가 됐는데, 3분 분량의 전체 무대 영상은 조회수가 4만8000회에 불과하지만 후렴구에 맞춰 춤을 추는 20초 분량의 유튜브 쇼츠 조회수는 238만 회에 달한다.

JYP 소속 걸그룹 엔믹스의 멤버 해원 팬이 개설한 쇼츠 전용 채널 ‘또 오해원’. 개설한 지 5개월 밖에 되지 않았지만 100만 조회수를 넘긴 영상들이 많다. 유튜브 캡처
JYP 소속 걸그룹 엔믹스의 멤버 해원 팬이 개설한 쇼츠 전용 채널 ‘또 오해원’. 개설한 지 5개월 밖에 되지 않았지만 100만 조회수를 넘긴 영상들이 많다. 유튜브 캡처

쇼트폼이 인기를 끌면서 팬튜브에서 쇼트폼이 차지하는 비중도 커지고 있다. 기존에 팬튜브는 음악방송이나 팬 사인회 직캠, 예능, 라이브 방송을 짜깁기해 편집한 5~15분 짜리 영상이 주를 이뤘다. 최근에는 아이돌 팬덤이 쇼트폼 채널을 적극적으로 개설하는 추세다. 걸그룹 (여자)아이들 전소연의 팬이 만든 ‘전소연 쇼츠’, JYP의 걸그룹 엔믹스 멤버 해원의 팬이 만든 ‘또 오해원’ 등이 대표적이다. 팬튜브의 구독자는 1만 명을 넘기는 경우가 흔치 않는데 또 오해원 채널은 개설 5개월 만에 구독자가 7만6000명을 넘었고, 가장 인기 있는 영상은 조회수가 740만 회에 달한다.

르세라핌의 공식 유튜브 채널에 올라온 멤버 카즈하의 복근 운동 장면. 해당 유튜브 쇼츠의 조회수는 652만 회에 달한다.
르세라핌의 공식 유튜브 채널에 올라온 멤버 카즈하의 복근 운동 장면. 해당 유튜브 쇼츠의 조회수는 652만 회에 달한다.

기획사의 마케팅 차원에서도 쇼트폼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쇼트폼은 짧은 시간 안에 그룹 또는 개별 멤버의 매력과 개성을 드러낼 수 있는 콘텐츠이기 때문. 신곡에서 중독성이 강한 ‘킬링 파트’나, 예능에서 화제가 될 만한 장면을 따로 쇼트폼으로 제작해 자체 SNS에 올린다. 한 소속사 관계자는 “르세라핌 멤버 카즈하는 어렸을 때부터 발레를 해서 오랜 기간 운동으로 다져진 잔근육이 매력인데 이를 아는 이는 많지 않았다. 쏘스뮤직이르세라핌의 공식 채널에 카즈하의 ‘운동루틴’, ‘복근운동’ 등을 쇼츠로 만들어 올리면서 팬덤뿐만 아니라 대중들도 카즈하의 건강미 넘치는 이미지를 각인시키고 있다“며 “그룹 전체뿐만 아니라 개별 멤버들의 매력을 담아낼 수 있다는 게 쇼트폼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쇼트폼의 인기는 짧은 시간 안에 흥미를 추구하는 Z세대의 특성을 반영한다. 정민재 대중음악평론가는 “쇼트폼이 Z세대에게 유행을 하면서 이제 유튜브에 올라오는 5분 분량의 영상도 길게 느낀다. 아주 짧게는 10초, 길어도 1분 안에는 재밌는 장면을 보여주고, 해당 영상을 통해 그룹이나 멤버에 관심이 생겼다면 원본을 찾아보는 방식으로 콘텐츠의 소비 습관이 변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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