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란 속에서 중심을 잡는 법-세잔의 산② [영감 한 스푼]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1월 12일 11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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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세잔의 생트빅투아르산과
혼돈 속에서 열린 20세기②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김민 기자입니다.

지난주에는 세잔이 어떤 방식으로 ‘마음의 산’을 표현했는지 알아보았는데요, 오늘은 이런 세잔의 예술이 어떤 시대적 맥락에서 탄생하게 되었는지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살면서 믿었던 무언가가 무너졌을 때, 내가 알던 세상이 전부가 아님을 깨달을 때. 사람은 엄청난 혼란과 불안에 빠져들게 됩니다. 그 다음은 좌절, 분노, 허탈함, 고통과 같은 감정이 밀려오죠. 이 감정을 이겨내지 못하면 혼란은 덫처럼 나를 옭아매고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합니다. 이럴 때 현명한 해결책은 무엇일까요?

어떤 사람은 행운이 찾아와 모든 것이 마법처럼 해결되기를 바랍니다. 마음으로 간절히 바라거나 무언가에 열심히 몰두하면 해결이 이뤄진다고 믿기도 합니다. 과거 사람들은 신에게 무언가를 바쳐서 노여움을 달래면 혼란이 사라질 거라고 생각도 했죠.

그러나 가장 정확한 길은 나 자신을 돌아보고 거기서 해결책을 찾는 일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요즘에는 심리 상담이나 명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람도 많아지고 있습니다.

오늘 세잔의 산이 탄생한 이유를 살펴보기로 했는데, 왜 혼란에 대해 이야기를 하느냐구요? 세잔이 ‘마음의 산’을 그린 이유도 그가 살던 19세기 말 프랑스와 유럽이 그러한 혼란기였기 때문입니다.
신(神)도 왕(王)도 무너진 세계
폴 세잔은 1839년 프랑스 액상프로방스에서 태어나 1906년까지 살았습니다. 자수성가한 은행가의 아들이었던 세잔은 성인이 되고 난 뒤 파리에 잠시 머물다 말년엔 줄곧 액상프로방스에 머물렀죠. 두문불출하며 그림만 그린 괴짜 캐릭터로 알려져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가 살았던 시대의 유럽은 모든 것이 송두리째 뒤집히는 격동기였습니다.

이 격동기를 설명하는 사건을 크게 세 가지로 꼽아볼 수 있습니다. 1️⃣ 고대 문명의 발견, 2️⃣ ‘종의 기원’ 출간, 3️⃣ ‘1848년 혁명’입니다.

먼저 고대 문명의 발견은 유럽의 제국들이 식민지를 개척하며 가능해졌죠. 이. 때 많은 문화재들이 유럽으로 약탈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유럽 밖 아프리카 등 다른 대륙의 아주 오래 전 화려한 문화는 유럽인의 자존심을 구기는 일이었습니다.

장 레옹 제롬, ‘스핑크스 앞 보나파르트(나폴레옹)’, 1868년. 위키피디아


프랑스 화가 제롬의 그림 ‘스핑크스 앞의 보나파르트’를 보면 그 의미를 풀이할 수 있습니다. 이집트의 스핑크스상 앞에 말을 탄 나폴레옹이 서있습니다. 그런데 스핑크스의 코가 뭉개져있죠. 이렇게 코를 뭉개서라도 나폴레옹을 돋보이게 했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열등감을 느꼈음을 보여줍니다. 한마디로 ‘우리 제국이 최고인 줄 알았는데, 아프리카 대륙에 이런 훌륭한 문화가 있었네…’라는 것을 마음 속으로는 느꼈던 것이죠.

고대 문명의 발견이 제국 문화가 전부가 아님을 깨닫게 했다면, 둘째 ‘종의 기원’ 출간은 신을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영국의 생물학자 찰스 다윈이 ‘진화론’을 최초로 설명한 이 책은 인류가 영장류에서 기원했을 가능성을 제시합니다. 예전까지 조물주가 인간을 만들어냈다고 믿었던 사람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준 내용입니다.

1848년 6월 혁명으로 바리케이드가 생긴 파리 거리의 모습. 위키피디아


이런 가운데 1848년 유럽 여러 도시에서는 제국에 반기를 드는 혁명이 일어납니다. 신과 왕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벗어나, 나의 방식으로 세계를 살겠다는 움직임이 더욱 거세진 것이죠.

지금은 2-3년 만에도 많은 것들이 변하지만, 이 때 유럽은 종교와 제국이 몇 백년의 체제를 유지해왔던 상황입니다. 혼란의 정도가 지금의 시각으로 감안하기 어려울 정도로 컸겠죠. 이런 가운데 세잔은 파리를 벗어나 고향의 산으로 향합니다.
산에 비친 것은 나 자신이었다
세잔은 후배 화가에게 쓴 편지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공식 살롱이 열등한 이유는 그들이 널리 인정받은 방법만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사적인 감정, 관찰, 특징을 더 드러내야 한다. 루브르는 배우기 위해 읽는 책이지, 과거의 일러스트적인 작가들이 따랐던 방법을 흉내내는 데 만족해서는 안 된다. 아름다운 자연을 공부하고, 과거로부터 마음을 해방시키며, 각자의 성격에 맞는 표현 방식을 추구해야 한다. 시간과 생각을 들이고, 점차 시각을 다져 나가면 마지막에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여기서 인상깊은 대목은 ‘과거로부터 해방’된다는 것과, ‘개인적인 특징’을 더 드러내야 한다는 발언입니다. 여기서 해방되어야 할 과거란 어떤 것이었을까요?

과거의 인간은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어떤 영지에 소속돼 평생 주어진 노동만을 하거나, 신의 뜻을 지키며 살아가야만 하는 존재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신도 왕도 없어진 세계에서는 ‘자아’와 ‘주체’가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그림에서도 마찬가지죠. 과거 화가들은 종교나 역사만을 그려야 했는데, 이 때 비로소 중산층의 일상을 그리거나 나의 눈으로 본 풍경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즉 세잔이 매일 산을 마주하며 그리려고 했던 것은, 과거로부터 해방된 온전한 자신, ‘세잔만의 산’이었던 것이죠.

폴 세잔, 자화상, 1875년. 오르세미술관 소장. 위키피디아


그리고 이 시점에서 미술은 철학보다 더 앞서서 시대를 증언하며, ‘현대미술’의 서막이 오르게 됩니다. 세잔이 과거로부터 벗어나 ‘나의 눈’으로 직관하려고 했던 것은 곧 20세기 등장한 철학 ‘현상학’과 맥을 같이 하기 때문입니다.

현상학은 어떤 사물을 바라볼 때, 그 사물을 바라보는 사람의 주관적인 견해를 통해 사람의 의식을 탐구하는 학문입니다. 즉 ‘사과’라는 개념이 있을 때 과거에는 이것을 ‘사과나무의 열매’라고 일괄적으로 규정했다면, 현상학에서는 사람마다 다양하게 느끼는 바가 있음을 인정하고 이를 통해 인간의 의식을 연구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면서 유명한 ‘판단중지’ 개념이 나옵니다. 철학자 에드문드 후설은 사물을 볼 때 우리가 그간 주입 받았던 모든 선입견을 배제하기 위해 우선 모든 판단을 중지하라고 말합니다. 즉 과거에 규정했던 사과의 의미를 덜어내고, 내 눈 앞에 사과가 어떻게 보이는지 집중해서 나 자신을 돌아보자는 것이죠. 세잔이 과거에서 해방되어 ‘개인의 산’을 보라고 후배 화가에게 조언한 것과 놀랍도록 비슷합니다.

모든 것이 무너지는 혼란한 시대, 세잔이 산을 찾은 이유는 결국 모든 관념을 벗겨낸 ‘나 자신’을 만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고 산을 보다 죽겠다는 결심까지 하면서 평생 산에 비친 자신을 갈고 닦은 세잔의 예술은 현대 미술의 문을 열어주었습니다. 세잔을 모르면 현대미술을 이해할 수 없다는 말, 이제는 공감이 되시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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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 기자 kim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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