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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문화

행복은 누룽지 [고양이 눈썹 No.38]

입력 2022-10-01 16:00업데이트 2022-10-01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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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8월


▽초4 막내와 대화입니다.


“아빠, 사람이 왜 사는 줄 알아?”
(우리 때는 ‘행복하기 위해’가 답이었는데… 설마 지금 애들도 그런가?)
“에이 그거도 몰라, 살아지니까 사는 거야~”
(????)
“살아지니까 사는 거래, ‘어린이과학동아’에 나왔어.”


한 때 ‘행복’을 주제로 하는 책들이 많았습니다. ‘00행복연구소’ 같은 단체도 많았죠. 삶의 목적이 행복이기 때문이라나요. ‘행복해 지기 위해 산다’는 논리였죠. 행복을 위해 자유가 필요하고, 자유를 위해 경제적 해방이 중요하다는 스토리로 이어지는 책과, 마음의 자유가 중요하다는 에세이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어떨까요? 행복론은 넘치는데 정작 행복은 없었는지, ‘행복’을 제목으로 하는 책들이 거의 사라졌습니다. 행복론도 유행을 타나 봅니다. 그래서일까요? ‘사니까 사는 거다’로 답을 냅니다.

왜 이런 주장이 유행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N포 세대’나 ‘일본의 사토리(깨달음ㆍ득도) 세대’에 영합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불교나 도교의 흔적 같기도 하고요. ‘행복’이란 도대체 무엇일까요?

2018년 7월


▽“(은퇴 후) 연금도 나왔으니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었어요. (웃음) 근데 이건 정말 끔찍한 일이었습니다. 비극이었죠.

바로 이러한 이유로 저는 생산적인 활동에 매진하기 시작한 겁니다. 스스로 어려움을 만들어서 자신에게 부과한 것이죠. 이제껏 잘 이해하지 못했던 것들을 공부하기 시작했고, 읽지 못하고 쌓아두었던 문학 작품들도 읽기 시작했습니다. (중략) 이전보다 더 많이 읽고, 더 많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이러한 노력들은 엄밀히 말해 행복을 위한 것이었다기보다는 ‘삶의 공허함과 의미 없음’을 피하기 위한 방안이었습니다. (중략) 행복의 반대말은 불행이 아니라, 의미 없음(meaningnessless)입니다. 당신의 삶이 의미를 갖고 있지 않다면, 살아갈 이유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삶의 의미를 찾아야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유일하게 우리에게 진정한 행복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

-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1925~2017년) 인터뷰를 정리한 책, ‘희망, 살아있는 자의 의무’ (2014년) 중에서

2021년 1월


▽'행복'은 도대체 알 수 없는 무언가입니다. 뭐가 뭔지 도저히 보이지 않을 때는 거울을 대서 대칭을 만들거나 빛을 비춰 그림자를 관찰하면 본색이 보일 수 있습니다. 아니면 뒤집어 보던가요. ‘행복’도 너무 어려우니 뒤집어서 반대편, 즉 대칭점을 쳐다보시죠. 바우만에 따르면 행복의 대칭점에 있는 것은 불행이 아니라 ‘의미 없음’이라는군요.

바우만은 폴란드 출신으로, 1970년 경 영국에 이민을 와 교수로 정착했습니다. 학사 일정과 강의에 쫓긴 그는 교수 시절에는 이렇다할 학술 업적을 남기지 못 했습니다. 오히려 은퇴 뒤에 60세가 훌쩍 넘어서 학문적 성취를 보여줍니다. 퇴임 이후에 일반 대중을 상대로 직접 강의도 하고 소통하면서 왕성한 저술활동을 한 것이지요.

2021년 3월


바우만이 인터뷰에서 주장하는 행복은 아래와 같습니다.
1) 자발적, 적극적인 생산 활동
2) 생산을 통한 공허함과 ‘의미 없음’ 회피
3) 삶의 의미를 찾다보면 따라 오는 것

사람들은 일과 생산, 즉 일상을 통해 불안감을 극복하고 성취감을 느낍니다. 그것이 쌓이면 자존감 즉 자신감과 존재감을 동시에 얻게 되죠. 존재의 이유가 생산에 반영돼 드러나는 것이죠.
(고양이눈썹 7월16일자 ‘나는 생산한다 고로 존재한다’ 참고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220716/114481851/1)

2021년 7월


▽인간은 그냥 사니까 살아지지 않습니다. 끊임없이 뭔가를 만들고 생산하며 삽니다. 생산 자체가 삶의 목적이 아닌가 싶은 의심이 들 정도로요. 인간은 행복을 목표로 살지 않습니다. ‘의미 있는’ 생산을 하며 삽니다. 이게 우리가 흔히 말하는 ‘버티기’ 또는 ‘그냥 사는 것’ 인지도 모르지요.

▽군사용어에 ‘부수적 피해(collateral damage)’라는 말이 있습니다. 베트남 전쟁 당시 민간인 피해에 대한 미군의 완곡한 표현입니다. 반대 용어도 있습니다. ‘부가적 이익(collateral benefits)’ 인데요, 원래 목적은 아니었지만 부수적으로 얻어지는 이득입니다.

행복도 그런 것 아닐까요. 행복은 그 자체로 목적이 아닙니다. 열심히 살다보면 그냥 따라오고 얻어질 가능성이 커지는 ‘부가적 이익’ 이거나, 아니면 어쩌다 우연히 만들어진 파생상품 아닐까요? 행복은 밥보다 누룽지에 가깝습니다. 밥을 짓다보면 솥 바닥에 눌러 붙지요. 살살 잘 긁어내 오도독 씹어 먹어도 맛있고 잘 말려 오래 보관하다 한참 지나 물을 붓고 끓여도 좋지요.

누룽지가 맛있다고 처음부터 모두 누룽지만 만들려고 하면? 자칫 밥이 홀라당 다 타버릴 수 있습니다.

2010년 10월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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