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아버지가 말한 ‘그 형’의 정체는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9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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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나에 대해 말할 때/김경욱 지음/302쪽·1만4000원/문학과지성사

두 시간 전 급성폐렴으로 입원한 아버지의 병실에서 나온 나. 간병인에게서 아버지가 임종 직전이란 다급한 연락을 받았다. 다시 병원으로 되돌아간 나에게 아버지는 대뜸 “형은?”이라고 물어온다. 장남인 나는 잠시 혼란스러웠지만, 40년 전 잠시 집에 머물렀던 한 형을 떠올린다.

결국 세상을 떠난 아버지. 장례식장에 나타난 한 사내를 보며 ‘그 형’일 거라 짐작한다. 나는 남은 가족에게 형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물어보지만, 알게 되는 건 이전까지 몰랐던 아버지의 새로운 면모들. 진실은 여전히 오리무중이지만, 나는 타인의 인생을 판단하는 걸 그만 멈추기로 한다.

올해 데뷔 29년을 맞은 저자의 아홉 번째 소설집. ‘소년은 늙지 않는다’(문학과지성사) 이후 8년 만이다. ‘바그다드 카페에는 커피가 없다’(1996년) ‘누가 커트 코베인을 죽였는가’(2003년) ‘장국영이 죽었다고?’(2005년) 등으로 탄탄한 팬층을 구축해 온 그의 문장은 여전히 위력적이다. 위에서 소개한 단편 ‘타인의 삶’은 지난해 이효석문학상 우수상을 받았다.

단편소설 9편에는 다양한 인물들이 나온다. 은둔형 외톨이인 주인공의 3인칭 시점이 독특하게 전개되는 ‘누군가 나에 대해 말할 때’를 비롯해 성경학교의 성추행 사건을 배경으로 여러 인물의 진술을 다룬 ‘가브리엘의 속삭임’, 바다에서 아들을 잃은 뒤 아들의 죽음을 망각하기에 이른 아버지를 다룬 ‘튜브’도 인상적이다.

각기 다른 이야기지만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다. 소설들은 읽는 내내 타인을 상대로, 더 나아가면 자기 스스로를 상대로 ‘가면’을 쓰고 있는 누군가를 직면하게 된다. 그건 내면에 상존한 또 다른 나일지도 모른다. 순간 동떨어져 바라보게 되는 나란 존재를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각자의 몫이다.


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누군가 나에 대해 말할 때#김경욱#이효석 문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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