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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세요! 그리고 다른 사람도 행복하게 하세요”[전승훈 기자의 아트로드]

입력 2022-03-26 16:01업데이트 2022-03-26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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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지난 2년간 ‘코로나19’의 어두운 터널을 지나고 맞은 새 봄. 해외여행의 빗장이 하나둘씩 풀리면서 산티아고 순례길에도 다시 배낭에 조개껍데기를 매달고 걷는 발걸음이 생겨나고 있다. 하루에 8유로(약 1만원)면 잘 수 있는 공공 순례객 숙소(알베르게)도 본격적으로 문을 열기 시작했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한국인들에게 인기가 높은 여행지다. 코로나 전인 2018년 산티아고 순례길을 찾은 한국인은 5665명으로 전세계 9위, 아시아 1위다. 일본(25위), 중국(28위)에 비해 월등히 많다. 종교적인 이유로 순례하는 사람도 있지만, 현실의 삶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돌아보고, 길에서 만난 낯선 이들과 대화하며, 새로운 삶을 모색하는 계기로 삼는 여행자가 많다.



들꽃이 피어나는 산티아고 순례길



‘땡~땡~땡~’

스페인 북서부 산 속 고갯길. 하얀 눈이 수북히 쌓인 ‘산타마리아레알 오 세브레이로’ 성당의 종소리가 고즈넉하게 울렸다. 담벼락 근처에 심어진 호랑가시나무의 뾰족뾰족한 이파리와 빨간 ‘사랑의 열매’ 위에도 흰눈이 쌓여 크리스마스 엽서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이 곳은 중세시대 사제가 미사를 드리던 도중 성배에 담긴 포도주가 실제 피로 변했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곳이다. 기적의 성배 앞에 한국어로도 비치돼 있는 ‘순례자를 위한 축복 기도’를 읽어본다. 마지막 구절이 특히 마음에 다가온다.

‘행복하세요. 그리도 다른 사람도 행복하게 하세요.’

성 야고보 성인의 무덤이 있는 산티아고 대성당으로 향하는 순례길(Camino)은 전 유럽에서 출발한다. 프랑스, 포르투갈, 영국, 독일 등 다양한 지점에서 출발한 순례자들이 스페인 북서부 갈리시아 지방의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를 향해 걸어오는 지도는 조개 무늬를 닮았다. 조개처럼 한쪽 끝을 중심으로 부채꼴모양으로 길이 퍼져 있기 때문이다.

총 연장 800km나 되는 프랑스길(Camino Frances)은 가장 인기가 높은 순례길이다. 프랑스 생장드포르에서 시작해 피레네 산맥을 넘어 스페인으로 들어오는 길이다. 2018년 산티아고순례길을 걷는 연간 30만여 명의 순례객 중 60%가량이 프랑스길을 걸었다.

그러나 순례길은 100km 이상만 도보로 걷거나, 200km 이상을 자전거로 걸으면 순례 인정증을 주기 때문에, 시간이 없는 사람들은 1주일~열흘 정도 코스를 걷기도 한다. 프랑스길의 경우 산티아고에서 약 100km 남짓 떨어진 사리아 또는 세브레이로에서 출발하는 사람들이 많다.

해발 1300m 고지대인 세브레이로 마을에는 아직도 눈이 내렸다. 산티아고순례길은 워낙 다양한 지역을 지나가기 때문에 요즘엔 사계절의 날씨를 한꺼번에 맛볼 수 있다. 산을 내려오는 길에는 봄꽃이 한창이다.

카미노(순례길) 주변에는 우리나라 개나리꽃처럼 노란 ‘또쇼(Toxo)’가 가득 피어 있다. 병아리의 솜털처럼 동글동글한 ‘미모사’가 숲을 이루고 있고, 땅 위로 솟아오른 수선화는 산들바람에 흔들리며 꾸벅 절을 한다. 자목련, 백합, 철쭉까지 봄꽃이 한꺼번에 피어난다. 그 중에서 가장 놀라운 것은 동백이었다.

대서양 해변을 걷는 산티아고순례길 포르투갈 루트는 요즘 그야말로 ‘동백꽃필 무렵’이다. 동백꽃은 18세기 말 일본과 중국에서 포르투갈 선원에 의해 이베리아 반도로 들여왔다고 한다. 갈리시아 지방의 리아스식 해안지역은 습기가 높고, 온화한 날씨, 비옥한 토질로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동백나무 밀집 지역이 됐다.

스페인 프로축구팀 ‘셀타 비고’로 유명한 항구도시 비고의 한 식당에서 만난 한 독일 여행객은 “갈리시아 북부 코루냐에서 남부 폰테베드라까지 관통하는 12개의 동백꽃 정원을 찾아가는 ‘카멜리아 루트(Camelia Route)’ 여행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폰테베드라의 동백나무 정원 ‘파소 데 루비아네스(Paso de Rubianes)’는 중세시대 귀족의 대저택이다. 유칼립투스 나무가 우거진 정원에는 800여 그루의 다양한 동백나무가 심어져 있다 분홍색, 붉은색, 흰색 등 다양한 동백꽃이 꽃잎채 뚝뚝 떨어져 있는 모습은 우리나라 여수, 제주 등 남해안 풍경만큼 멋지다. 갈리시아의 도심 곳곳에는 동백나무가 가로수처럼 심어져 있어 밤에도 활짝 피어난다.



다시 문여는 알베르게

산티아고 순례길은 예수님의 제자인 사도 야고보의 무덤을 찾아가는 길이다. 팔레스타인에서 참수당했던 순교자 야고보의 주검은 제자들에 의해 배에 실려 스페인 북부 갈리시아의 해안에 도착했다고 한다. 서기 813년 경 별빛이 비추는 곳에 가보니 그의 무덤이 발견됐다고 한다. 콤포스텔라는 ‘별빛(Stella)이 비추는 들판(Campos)’이라는 뜻이다.

“누군가 자신의 길을 발견했을 때, 잘못된 시도를 할 수 있는 충분한 용기가 필요하다. 실망, 실패, 의기소침은 신이 길을 보여주기 위해 사용하는 도구들이다.” (파울로 코엘료 ‘순례자’)

파울로 코엘료의 책 ‘순례자’에서도 밤하늘에 선명하게 흐르는 은하수는 주인공이 콤포스텔라까지 이르는 길을 안내해준다. 코엘료의 책 외에도 수많은 국내외 저자들의 답사기는 21세기에도 종교와 관계없이 현대적인 사색과 명상의 길로 손꼽히게 했다. 스페인 관광청 통계에 따르면 순례객 중 1위는 회사원(25.85%), 2위 학생 (17.92%), 3위는 퇴직자(13.06%)였고, 연령대로도 30대 이상이 73%나 차지한다. 삶에 지친 사람들이 많아서일까. 멀리 동쪽 끝에서 온 한국인들이 특히 이 길을 많이 걷는 것에 대해 스페인 사람들도 놀라워한다.

그러나 코로나가 휩쓴 지난 2년. 산티아고순례길을 찾는 사람은 2018년 총 32만여 명에서, 지난해에는 17만 명으로 절반 가까이 줄어들었다. 2020년 3월부터 지난해 7월까지는 산티아고순례길의 모든 공립 순례객 숙소(알베르게)가 폐쇄됐었다.

지난 10일 포르투갈 루트의 레돈델라에 있는 알베르게를 찾았다. 지난해 7월부터 알베르게는 3분의1 수준으로만 제한적으로 문을 열었지만 순례객은 스페인 국내인들로만 한정돼 있었다. 그러나 올해 1월부터 스페인의 모든 ‘거리제한’이 풀려 42명 정원인 침대를 제한없이 받고 있다. 아직까지는 순례객이 10명이 채 안된다. 이 숙소의 호스피탈레라(관리인)인 소니아 씨는 “각국에서 자가격리 여행규제가 풀리면서 4월 부활절부터 예전처럼 정상화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갈리시아의 독특한 풍경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는 갈리시아의 수도다. 모든 순례길이 모여드는 갈리시아를 걷다보면 끊임없이 만나는 상징물들이 있다.

먼저 교차로에 서 있는 돌로 만든 십자가 ‘크루세이로(Cruseiro)’다. 갈리시아 전역에만 1만2000여 개나 서 있는 돌십자가는 여행자들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십자가의 앞뒤에는 예수, 성모마리아, 아담과 이브, 성 야고보, 아시시의 프란시스코 성인 등의 얼굴이 새겨져 있다. 마을 앞에 마치 석등이나 장승처럼 서 있는 돌십자가는 지금 걷고 있는 길이 순례길 임을 문득문득 일깨워준다.

시골 마을 집 앞마다 세워져 있는 직사각형의 자그마한 창고도 갈리시아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옥수수나 감자 등을 저장하는 창고인 ‘호레오(Horreo)’다. 지붕 위 양쪽에 십자가 장식 때문에 언뜻 보면 무덤 같아 보이기도 한다. 신에게 드리는 추수감사와 보호를 기원하는 창고다. 호레오 밑이 돌기둥 받침으로 바닥에서 떠 있는 이유는 습기와 곡식을 훔쳐먹는 야생동물을 막기위한 장치다. 호레오는 집집마다 크기와 색깔이 다른 데, 교회나 수도원, 부유한 집 앞에는 커다란 호레오가 있어 굴뚝 크기와 함께 집의 살림살이 규모를 파악하게 해준다고 한다.

순례길에서는 푸른색 바탕에 노란색 가리비 조개껍데기, 화살표가 가야할 방향과 남은 거리를 알려준다. 조개가 순례길의 상징이 된 이유는 산티아고의 유해가 스페인 해안에 도착했을 때 조개껍데기에 싸여 있었다는 전설 때문이다. 그런데 보티첼리의 그림 ’비너스의 탄생’처럼 조개가 새로운 탄생과 부활을 상징한다는 해석도 있다. 순례길 가이드 세르히오 씨는 “어린아이 세례식도 조개모양의 그릇 위에서 행해지는데, 조개는 새로 태어나는 삶을 의미한다”며 “조개는 진정한 자신을 발견하고 새로운 삶을 갈망하는 카미노(순례길)를 상징하는 알레고리”라고 해석했다.

프랑스길 사모스의 베네딕트 수도원 인근에는 순례자의 발을 치유해주는 높이 27m의 거대한 사이프러스 나무가 자라고 있다. 500살 가량 된 이 나무는 두 사람이 마주 안아야 손이 닿을 정도로 두껍다. 안내문에는 “순례자가 이 나무를 안고 가면, 산티아고에 도착했을 때 발이 아프지 않다”는 설명이 적혀 있다.

이곳에서 만난 패트릭 씨(32·독일)는 지난 2월11일에 출발해서 3월8일까지 약 620km를 걸어왔다고 한다. 하루에 25~30km 씩 걸어온 셈이다. 레스토랑 셰프로 일했다는 그는 “코로나로 힘들었던 지난 2년 동안 이 길을 걷는 것을 꿈꿔왔다”고 말했다.

프랑스길을 걷다가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에 가까워지면 언덕 위에 올라가면 저 멀리 산티아고 대성당의 첨탑과 종탑의 실루엣이 보이는 지점이 있다. ‘몬테 도 고조’(Monte do Gozo)’, 기쁨의 언덕이란 뜻이다. 언덕 위에는 두 명의 순례자 동상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환하게 웃고 있다.

산티아고 대성당 앞 광장에는 도착한 순례자들로 북적인다. 자전거를 타고 온 순례자, 조개껍데기 목걸이를 건 반려견과 함께 걸어온 사람도 보인다. 산티아고 대성당 지하에는 은으로 도금한 사도 야고보의 무덤을 볼 수 있다.

대성당에 들어갈 때 이용하는 ‘자비의 성문(聖門·Porta Sancta)’은 ‘성 야고보 희년(禧年)’에만 열리는 문이다. 원래 2021년에만 열려야 하는데, 코로나19의 여파로 교황청의 특별허가로 올해까지 열린다고 한다.

산티아고대성당에서는 매일 낮 12시에 ‘순례자를 위한 미사’가 열린다. 미사 때에는 사제가 순례자의 이름과 국적을 직접 불러주며 기도해준다. 제대 앞에 천장에서부터 늘어뜨려져 있는 무게 60kg, 높이 1.6m에 이르는 대향로(보타푸메이로·Botafumeiro)는 산티아고 대성당의 상징이다. 중세시대 수많은 순례자들이 24시간 성당의 회랑에서 머물렀는데, 고약한 냄새를 없애기 위해 수시로 대향로의 줄을 잡아당겨 향을 뿜어댔다고 한다.



산티아고 순례길 걷는 법
순례자는 여권인 ‘크레덴시알 데 페레그리노(Credencial de Peregrino)’를 발급받아야 한다. 순례길의 주요 지점에서 도장을 받아 방문 인증을 받아야 한다. 마지막 도장은 산티아고 대성당이 있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순례자 사무소에서 받을 수 있다.

90% 이상은 도보로 순례를 마치지만, 말을 타고 중세시대의 왕과 기사들처럼 순례길을 종주하는 사람도 있고, 요트를 타고 대서양에 있는 17곳의 항구를 통과한 후 걸어서 산티아고콤포스텔라로 들어오기도 한다. 숙소는 2층 침대에서 잘 수 있는 저렴한 공공 숙박시설(1만원대)인 알베르게에서 숙박할 수 있으며, 호텔도 많다.

그 중에서도 최고급 호텔(4~5성급)인 ‘파라도르’는 경치가 뛰어난 장소나 중세시대 고성, 왕궁, 예배당, 수도원, 현대적 건물, 자연환경 등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시설을 현대식으로 개조해 국영으로 운영하는 호텔이다. 스페인에서는 100개 이상의 파라도르가 운영되고 있는데, 일부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보호를 받기도 한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는 산티아고대성당 앞에 중세시대 순례자들을 위한 병원이었던 건물을 개조한 5성급 ‘로스 레예스 카톨리코스 호스텔’이 있다. 포르투갈 루트에 있는 바이요나 항구의 장엄한 요새를 개조해 만든 ‘파라도르 데 바이요나’는 최고의 바다전망을 즐길 수 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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