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이여, 욕망하라… 체면 따위 잊고

전채은 기자 입력 2021-11-20 03:00수정 2021-11-20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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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위하여/파스칼 브뤼크네르 지음·이세진 옮김/320쪽·1만6000원·인플루엔셜
60대 여성들의 사랑을 다룬 영화 ‘북클럽’(2018년)에서 다이앤(왼쪽)이 남성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 책의 저자는 “노년층에게도 사랑은 젊은이만큼 중요하다”며 “하루 종일 딱히 한 일이 없는 시니어라도 사랑하는 사람을 곁에 두고 하루를 마무리하는 소감을 늘어놓느냐, 혼자 곱씹느냐는 완전히 다르다”고 강조한다. 영화사 진진 제공
‘과학 기술의 발달로 인간 수명이 늘어났다’는 문장은 반쯤은 거짓이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실제로 늘어난 것은 ‘노년’이며, 이 때문에 전체 수명이 덩달아 늘어난 것뿐이기 때문이다. 생애주기의 특정 시절만 비약적으로 늘고 있는 상황은 새로운 세대의 탄생을 요구했다. 이 책은 그리하여 등장한, 전에 없던 세대에 관한 이야기다. 신체적으로 건강하면서 나머지 인구보다 가진 것이 많은 ‘시니어’.

인생에도 클리셰가 있다. 청년은 도전적이야 하고 중년은 묵직해야 하며 노년은 지혜로워야 한다는 인식은 우리에게 몹시 익숙하다. 지상의 즐거움을 탐하는 자세에서 벗어나 명상에 몰두하고 지혜에서 우러나온 잠언을 생산하며 저승길을 준비하는 것. 이것이 노년에게 흔히 요구되는 ‘바람직하고 올바른’ 모습이다.

그러나 저자는 “행복한 노년의 비결은 정확히 이와 반대되는 태도에 있다”고 말한다. 길어진 노년을 버티기 위해서는 나이는 먹되 마음이 늙지 않도록 지켜야 한다는 것. 그리고 영혼과 마음을 젊게 하는 것은 다름 아닌 ‘욕망’이라는 것. 지금껏 노년의 욕망을 부정해 온 세상에 시니어들이 반기를 들기를 저자는 바란다. 낭만과 주름살의 화해가 여기에서 시작된다.

한국 사회에서도 ‘액티브 시니어’라는 개념이 더 이상 낯설지 않아서 저자의 이 같은 의견은 일견 진부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자유롭고 개방적인 프랑스인답게 그가 그리는 청사진은 우리의 상상력을 가뿐히 넘어선다. 그가 꿈꾸는 세상에서는 손주 볼 나이인 75세의 남성이 아이를 하나 더 갖고, 형제라 해도 첫째와 막내의 나이 차가 쉰 살이 날 수도 있다. 고모나 삼촌이 조카보다 마흔 살 어리고, 어머니가 자기 딸과 사위의 대리모가 되어 주는 것도 가능하다. 노인이면서 운동선수일 수 있고, 에베레스트에 도전할 수도 있다. 책의 첫 번째 챕터 제목은 전체 내용을 잘 요약하고 있다. “포기를 포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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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수의 철학자와 소설가들이 인생에 관해 남긴 말들이 현대적으로 잘 번역돼 녹아 있다는 점도 이 책의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이다. 프랑스 사상가 미셸 몽테뉴(1533∼1592)는 “철학은 죽음을 배우는 것”이라고 했다. 저자는 이 생각을 “철학은 삶을 배우는 것, 특히 유한의 지평에서 다시 사는 법을 배우는 것”이라는 말로 변주한다. 과거에 비해 죽음이 훨씬 더 미뤄진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죽음을 염두에 둔 채 삶을 배우는, 보다 고차원적인 고뇌가 필요해졌다.

영국의 소설가 새뮤얼 버틀러(1835∼1902)가 남긴 “인생은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하면서 바이올린이라는 악기를 배우는 것”이라는 말은 그대로 되새겨도 무리가 없다. 인간은 끝끝내 완전히 숙련되거나 지혜로워지지 않으며, 그럼에도 인생이라는 협주곡은 무사히 완성된다. 늙은이가 어리석다고 해서 무슨 끔찍한 일이 벌어지지는 않는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부모나 조부모의 얼굴에 문득 아이의 표정이 스치는 순간을 누구나 목격한 적이 있을 테다. 그래서 우리는 ‘50, 60, 70세가 넘어도 겉보기에나 진중할 뿐 알맹이는 그렇지 않다’는 저자의 고백이 허위가 아니라는 점을 안다. 나이에서 불필요한 부담이나 장식을 벗겨 내자. 유머와 멋으로 무장한 시니어들이 가득한 세상은 분명 훨씬 더 유쾌할 것 같다.

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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