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에 물들고 기암절벽에 빠져드는 원주의 가을[안영배의 도시와 풍수]

안영배 기자·풍수학 박사 입력 2021-11-05 14:15수정 2021-11-05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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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18개 시·군 중 유일하게 두자릿수 인구 증가율을 보이는 원주시는 성장하는 도시다. 춘천, 강릉과 함께 강원 3대 도시로 꼽히는 원주는 인구수도 35만6000여 명(2021년 9월 현재)으로 도내에서 제일 많다. 사람이 늘어난다는 건 삶터의 환경이 그만큼 좋아짐을 뜻한다. 풍수설로는 땅의 기운(지기·地氣)이 살아남을 말한다.

원주시는 풍수의 지기쇠왕설(地氣衰旺說)을 잘 보여주는 도시다. 지기쇠왕설은 지기가 왕성할 때는 삶의 환경이 흥성해지지만, 지기가 쇠퇴할 때는 삶터가 침체에 빠진다는 논리다. 원주는 조선시대에 강원도 행정의 중심인 강원감영이 들어설 정도로 번성을 누렸지만, 6·25전쟁 후 제1군사령부와 미군기지 등이 들어서면서 군사도시로 한동안 침체됐었다. 그러다 2000년대 이후 원주혁신도시와 기업도시가 들어서고, 대규모 관광시설들을 선보이면서 문화관광도시로 급부상중이다. 치악산 단풍으로 유명한 원주에서 가을의 푸근함과 함께 지기의 생동감을 체험해보자.

○ 반계리 은행나무에 웬 종유석?


수도권에서 영동고속도로를 이용해 원주로 여행하는 이들이라면 문막읍의 ‘원주 반계리 은행나무’와 먼저 인사를 나누기를 권한다. 천연기념물 제167호로 지정된 이 은행나무는 수령 800년으로 추정된다. 높이 32m, 둘레 16.27m에 달하는 웅장한 규모로 양평의 용문사 은행나무와 어깨를 견준다. 샛노란 단풍이 뫼 산(山)자 형태를 물든 모습은 마치 거대한 등불을 밝힌 듯 찬란한 자태를 뽐내고 있는데, 경북 예천의 반송 석송령을 연상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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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반계리 은행나무(수령 800년). 노거수가 피워내는 나뭇잎치고는 앙증맞은 크기인데, 여전히 나무가 성장하고 있는 증거라고 한다.
한 뿌리에서 난 여섯갈래의 줄기가 마치 경쟁을 하듯 자라고 있는 모습.
은행나무 줄기에 달린 진귀한 모양의 유주(乳柱).



나무는 원 줄기가 고사한 뒤 새로 생긴 여섯갈래 줄기가 마치 한 몸처럼 자라고 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6·25전쟁 등 온갖 역사의 풍상을 거친 노거수가 피워내는 은행잎치고는 앙증맞은 크기다. 지금도 젊은 나무임을 의미한다.

가지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석회암 동굴의 종유석처럼 땅을 향해 자라는 ‘유주(乳柱)’들이 곳곳에 나 있다. 은행나무 유주에 대해선 낙타의 혹처럼 생성된 ‘비상 식량 주머니’, 뿌리 호흡만으로 모자란 숨을 보충하기 위해 허공에 드러낸 기근(氣根), 상처난 곳을 자가 치유한 흔적 등 여러 견해들이 제기된다.

그런데 반계리 은행나무 유주는 이름 그대로 여인의 젖가슴을 닮았거나 남성의 생식기처럼 기이하게 생겼다. 이 때문에 젖이 잘 나오지 않는 산모가 이 나무에 정성을 들이면 젖이 잘 나온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생식기처럼 생긴 모습을 보고 자식을 낳기는 원하는 이들이 기도하러 찾아온다고 한다.

이 은행나무는 보는 방향에 따라 색다른 모습이 펼쳐지는데, 주위를 찬찬히 한바퀴 돌다보면 마음이 평안해지고 충만해지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바로 이 터의 풍요로운 지기 때문이다.

명당 터에 자리잡은 데다 생명 창조와 양육의 이미지가 짙은 이 나무에는 전설도 따른다. 고승이 이곳을 지나다가 물을 마신 후 지팡이를 꽃아 놓은 것이 나무가 됐다고도 하고, 나무에 거대한 백사(白蛇)가 수호신처럼 지키고 있어서 이곳 마을 사람들이 신성시했다고도 한다. 가을에 이 나무에 단풍이 일시에 들면 다음해는 반드시 풍년이 든다는 속설도 전해진다.

○ 소금산 그랜드밸리로 관광도시로 탈바꿈



반계리 은행나무에서 섬강 물줄기를 따라 북상해 ‘소금산 그랜드밸리’로 향한다. 1985년 국민관광지로 지정된 원주 간현관광지가 새롭게 변신하고 있는 곳이다. 소금산 아래 섬강과 삼산천의 합수(合水) 지점인 명당 터에 자리한 이곳은 2018년 개장 당시 국내 최장의 출렁다리(200m)로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고, 이어서 12월이면 잔도(棧道)와 전망대, 울렁다리, 케이블카와 에스컬레이터, 글램핑장 등을 갖춘 대규모 레저단지로 또다시 탈바꿈하게 된다. 예나 지금이나 물길이 합쳐지는 합수 지점은 사람들이 모여들게 마련이다. 물은 재물을 불러들인다는 풍수 논리도 이런 환경을 가리키는 것이다.

잔도에서 바라본 소금산 그랜드밸리. 삼산천을 가운데 두고 왼쪽의 두 절벽 사이를 잇는 다리가 출렁다리이고 그 밑으로 자연암벽을 스크린으로 삼아 공연을 하는 미디어파사드 공연장이 있다. 삼산천 오른쪽으로는 글램핑장이 보인다.
100m 높이에서 길이 200m, 폭 1.5m로 설치된 출렁다리. 2018년 당시 국내 최장의 출렁다리로 관광객들의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는데, 이후 전국 각 지자체에서 출렁다리 건설 붐이 일어나게 됐다.
12월 완공 예정인 전망대(가운데)와 바위 벼랑에 위태위태하게 매달린 듯한 잔도. 드론촬영.


소금산 그랜드밸리 코스는 출렁다리부터 시작된다. 모두 578개의 나무 계단을 밝고 올라서면 두 개의 절벽 사이에 놓인 높이 100m의 출렁다리가 아찔하게 펼쳐진다. 격자형으로 꾸민 바닥으로 발 아래가 훤히 내려다보이고 다리가 흔들거려 간담이 서늘해지지만, 기암 준봉이 병풍처럼 드리우고 맑디맑은 심상천을 먼거리로 감상하면 두려움은 어느새 사라지고 환상적인 느낌을 갖게 된다.

출렁다리를 건너면 소금산 정상쪽으로 이어지는 ‘하늘정원’ 덱이 있고, 이어서 곧 개장되는 소금잔도와 전망대, 울렁다리가 차례로 나타난다. 소금산 정상부 바로 아래 200m 높이의 벼랑을 끼고 도는 소금잔도(363m)는 중국 장자제(張家界)의 유리잔도 못지않게 아슬아슬한 길이다. 현재 막바지 공정이 진행되고 있는 소금잔도를 건너면 전망대가 기다리고 있다. 암벽에 위태위태하게 매달린 듯한 전망대 자체가 공포감을 불러일으키는데, 360도로 주변 풍경을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다리를 건너는 게 아찔해 가슴이 울렁거린다는 울렁다리는 출렁다리보다 2배 더 긴 404m로 국내 최장 보행 현수교로 기록된다. 울렁다리를 건너면 에스컬레이터로 내려올 수 있다. 입구의 관광안내센터에서 출렁다리까지 이어지는 케이블카까지 마저 설치되면 간현관광지는 소금산 그랜드밸리로 완전히 변신하게 된다. 원주시청 관계자는 “소금산 그랜드밸리 건설로 원주가 군사도시라는 옛 이미지를 탈색하고 완벽한 관광도시로 태어날 것”이라고 기대했다.

한편 소금산 그랜드밸리에서는 특별한 밤을 보낼 수 있다. 출렁다리 아래 바위를 배경 삼아 조성된 미디어파사드 공연장에서는 밤마다 ‘나오라쇼(Night of Light Show)’가 펼쳐진다.

가로 250m, 세로 70m 크기의 자연 암벽에다 빔 프로젝트를 활용해 입체 영상을 투사하는 방식이다. 현재 원주의 대표적인 보은 설화인 ‘은혜 갚은 꿩’을 소재로 한 영상물과 최대 60m까지 쏘아 올리는 형형색색의 음악분수 쇼가 펼쳐지고 있다.


○ 절정으로 치닫는 치악산 단풍


원주에서 가을의 진미인 단풍 구경을 빼놓을 수 없다. 원주를 동서로 갈라놓은 섬강을 기준으로 동쪽의 구룡사(소초면 학곡리) 단풍과 서쪽의 뮤지엄산(지정면 월송리) 단풍은 각기 색다른 특징이 있다.

먼저 치악산자락의 구룡사 단풍은 한창 물들어가고 있는 중이다. 구룡사 사천왕문 옆에 들어선 수령 200년인 은행나무가 노란 잎으로 가을 방문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보호수로 지정된 이 은행나무 역시 좋은 터에 자리하고 있다. 이곳에 마련된 벤치에 앉아서 지기를 느끼면서 구룡사와 주변 풍경을 즐길 수 있다.

구룡사의 은행나무. 벤치에 앉아서 소나무에 둘러싸인 구룡사와 단풍을 즐길 수 있다.
절정으로 치닫고 있는 구룡사지구의 단풍.
구룡사 창건 설화인 아홉 마리 용(九龍)과 얽혀 있는 구룡소.


본격적인 단풍은 구룡사를 지나 비로봉까지 이어지는 등산로에서 즐길 수 있다. 특히 아홉 마리 용의 전설이 얽혀 있는 구룡소에서 2단 폭포로 유명한 세렴폭포까지는 경사가 거의 없어 산책을 하듯 단풍을 즐기기에 좋은 코스다. 구룡사지구의 단풍은 산 정상과 아래에서 동시에 단풍이 들기 시작해 산의 중턱에서 마지막을 치장하는 게 특징이라고 한다. 한편 1400년의 역사를 지닌 구룡사는 사시사철 푸른 소나무 숲으로 둘러싸여 있다는 점도 단풍과 대조돼 돋보인다. 사찰 건물 내 대부분이 강원도 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구룡사 단풍이 인공의 손길을 타지 않은 자연미가 있다면, 뮤지엄산의 단풍은 인공과 자연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 예술성을 갖추고 있다. 원주 오크밸리의 골프 빌리지 안쪽에 위치한 이곳은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디자인한 미술관이다. 야외에 설치된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들의 조각품이 주변의 곱디고운 단풍나무와 어울리고, 그 뒤로 이어지는 산의 풍경과 도 자연스럽게 조화돼 환상적인 아름다움을 자아낸다. 전혀 부자연스럽다는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다.

뮤지엄산 야외공원에 설치된 조각품과 단풍, 그리고 주변의 산세가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고 있다.
하늘과 나무와 물이 한폭의 수채화처럼 펼쳐지는 뮤지엄산의 카페테라스.
뮤지엄산에서 단풍을 사진에 담고 있는 관람객들.


뮤지엄산은 휴식과 명상을 원하는 이들을 배려한 ‘명상관’과 ‘제임스터렐관’을 따로 갖추고 있다. 특히 빛과 공간을 이용하는 설치미술가이자 심리분석가인 제임스 터렐의 작품은 오감을 뛰어넘어 육감을 자극하는 듯하다. 영성(靈性)을 중시하는 퀘이커교도인 그의 작품 공간에 빨려 들어가다보면 인체의 백회(정수리 부분)와 인당(양 눈썹 사이), 그리고 내면의 자아가 깨어나는 듯한 자극을 받게 된다. 예술을 통한 명상 활동이 자연스럽게 이뤄지도록 한 것이다. 동양에서는 머리 부분인 상단전(上丹田; 백회·인당 부위)이나 중단전(中丹田; 가슴 부위)이 활성화되면 숨어 있던 초월적 감각들이 각성된다고 본다.

그러고보니 제임스터렐관에서 작품 체험을 하고 나서보니 감각들이 더 활성화됐다는 느낌이 들었다. 뮤지엄산이 들어선 터가 보기 드문 명당 터임이 분명하게 각인됐다.


안영배 기자· 풍수학 박사 oj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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