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한 꽃과 나무 가득한 울릉도…중생대 고사리 아직도 활짝[전승훈 기자의 아트로드]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9월 18일 16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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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의 밤 해변에는 ‘어화(漁火)’ 꽃이 핀다. 오징어잡이 어선이 집어등을 밝힌 불이 밤바다에 두둥실 떠 있는 어화는 울릉팔경 중 하나다. 울릉도의 원시림 속에는 각종 약초가 있고, 해안 절벽에는 수령 2000년이 넘는 향나무 군락지가 있다. 특히 울릉도의 무성한 대나무 숲은 특산품인 오징어를 건조하는 데 꼭 필요한 재료를 제공한다. 대나무 한 그루 없는 독도를 ‘죽도(竹島)’라고 부르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한반도 본토에서는 볼 수 없는 신기한 꽃과 나무로 가득한 울릉도 숲으로 떠나자.

● 쥐라기 공원으로의 여행

울릉도는 섬이라기보다는 산이다. 바다도 깊지만 산도 깊다. ‘살아 있는 화석’ 같은 식물들이 많아 ‘한국의 갈라파고스’로 불린다. 인류보다 훨씬 먼저 생겨난 고사리가 대표적이다. 고사리는 고생대에 출현해 중생대 쥐라기에 공룡과 함께 번성했는데, 지금까지도 살아남았다. 울릉도 성인봉에서 KBS중계소 방향으로 내려오는 길에 고사리가 바다처럼 펼쳐져 있는 원시림을 만났다. 영화 ‘쥬라기 공원’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풍경에 넋을 잃었다. 나무 위를 올라탄 덩굴 속에서 거대한 초식 공룡이 나뭇잎을 뜯고, 날쌘돌이 벨로시랩터가 눈빛을 반짝이며 숲속에서 튀어나올 것만 같다.




울릉도 최고봉인 성인봉(984m)에는 식물 300여 종이 살고 있다. 그중 울릉도에서만 발견되는 특산종이 40여 종이다. 섬초롱꽃, 섬백리향, 섬시호, 섬나무딸기, 섬단풍, 섬노루귀…. 울릉도 특산종에는 늘 ‘섬-’이라는 단어가 붙는다.


대낮인데도 어두울 정도로 울창한 등산로. 밤하늘의 별처럼 점점이 빛나는 하얀빛을 따라 만나게 되는 꽃은 ‘섬바디’다. 그룹 퀸의 ‘Somebody to Love’가 연상되는 로맨틱한 이름이다. ‘섬말나리’는 주황색 꽃잎에 점박이 무늬가 패셔너블한 꽃이다. 조선말기 울릉도의 유일한 평지인 나리분지에 처음 정착했던 개척민들이 섬말나리의 뿌리를 캐 먹었다. 섬말나리가 많은 곳이라고 해서 ‘나리분지’라는 이름이 생겨났다고 한다.


개척민들의 명(命·목숨)을 이어준 나물 중에는 ‘명이나물’도 있다. 나리분지의 식당에서 명이나물, 삼나물, 부지깽이나물 등 약초를 넣은 산채비빔밥에 호박 막걸리 한 잔을 걸치면 세상 부러울 것이 없다.


울릉도 나리분지에는 참나무 널빤지로 지붕을 만든 너와집이 있다. 울릉도 전통 민가의 특징은 ‘우데기’다. 겨울에 폭설이 3m까지 내리기 때문에 눈과 바람을 막기 위해 집 바깥쪽에 기둥을 세워 설치한 바깥벽이다. 부엌 화장실 장독대 등이 모두 우데기로 둘러싸여 있어 밖에 나가지 않아도 내부에서 장기간 활동할 수 있다. ‘자가 격리’에 특화된 가옥 형태다. 요즘 도동이나 저동 항구, 통구미 마을에 지어진 현대식 집들도 콘크리트로 지어진 우데기(바깥벽)를 갖고 있다.

● 울릉도 대나무와 오징어

성인봉 정상에서 살짝 뒷부분으로 내려가면 나리분지를 둘러싼 봉우리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광경을 볼 수 있는 포인트가 있다. 말잔등(967m), 미륵산(900m), 나리봉(813m)에 이어 바다 근처에서 송곳처럼 뾰족하게 솟은 ‘추산(錐山)’은 무척 인상적이다.


성인봉 정상 부근에서 대나무 숲을 만났다. 대나무의 일종인 섬조릿대였다. 산비탈에 모노레일을 깔고 부지깽이 나물을 재배하는 ‘윗통구미 마을’에도 곳곳에 대나무 숲이 있었다. 한 가구(4명)가 살고 있는 죽도에도 섬조릿대 군락지가 이어진다. 20년째 매년 울릉도를 답사해 온 조성호 씨(서울 중동고 지리교사)는 “울릉도의 대나무는 특산품인 오징어를 말릴 때 요긴하게 쓰이는 도구”라고 설명했다.


오전 4~5시. 어부들이 밤새 잡은 오징어가 항구에 도착하면 어판장에서 기다리던 아낙네들은 칼을 쥐고 오징어 배를 가른다. 내장을 꺼내고 씻은 오징어는 지름 1.5cm가량 되는 대나무에 차례차례 꽂힌다. 오징어 한 축(20마리)을 꿰어 바닷가 바람에 널어놓는다. 오징어의 머리 부분에는 몸체가 잘 펴지도록 ‘탱깃대’(8cm 길이의 대나무)를 또 끼운다. 대나무에는 ‘울릉도산’(등록 제467호)이란 표식이 있어 울릉도 오징어임을 증명한다.


울릉도 오징어는 맑은 해풍에 자연건조하기 때문에 육질이 두텁고, 씹을 수록 단맛이 돈다. 항구 주변 집 옥상에는 오징어를 말리는 작업장이 있다. 3일 정도면 완전 건조되는데, 이틀만 건조시켜 판매하는 것은 ‘피데기’라고 한다. 피데기는 부드러운 식감에 더 비싸게 팔린다. 그러나 보존이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 전라도 어부가 해류를 타고 울릉도로
울릉도는 현재 경북 울릉군에 속해 있지만 지명 중에는 전라도 방언이 많다. 독도에 있는 ‘보찰 바우’가 대표적이다. ‘보찰’은 바위에 붙어 있는 갑각류인 ‘거북손’을 칭하는 전라도 방언이다. 울릉도 주민들도 거북손을 보찰이라고 부른다. ‘독도’라는 명칭도 ‘독섬’(돌섬의 전라도 방언)에서 유래했다고 학계에서는 분석한다.


울릉도 개척령이 반포(1882년)되기 이전부터 전라도 흥양지방(여수, 고흥반도)의 어부들이 매년 배를 짓기 위해 울릉도를 찾았다. 여수 거문도에서 대한해협을 지나가는 구로시오 난류와 동해안을 타고 흐르는 동한해류를 타면 울릉도까지 손쉽게 도착한다고 한다.

“여수 거문도 어부들이 추삼월 동남풍을 이용하여 돛을 달고 울릉도에 가서 나무를 벌채하여 ‘새 배’를 만들고 여름내 미역을 채집해 두었다가 가을철 하늬바람(북서풍)이 불면 목재와 해조류, 고기를 가득 싣고 하늬바람에 돛을 달고 남하하면서 지나온 포구에서 판매하거나 물물교환을 하면서 거문도로 귀향하였다.”(전경수 ‘울릉도 오딧세이’)


섬을 비워놓는 ‘공도(空島)정책’을 펼쳤던 조선시대 정부는 주기적으로 수토관(搜討官)을 파견해 주민들을 체포해서 육지로 데리고 나왔다. 1882년 울릉도 검찰사로 파견된 이규원은 울릉도에 조선인이 140명이 있었다고 보고했는데, 그중 115명이 전라도 출신이었다.

배를 짓던 어부들이 북서풍이 불기를 기다렸던 곳은 울릉도 서북쪽 ‘대풍감(待風坎·바람을 기다리는 언덕)’이다. 이곳에는 관광용 모노레일이 설치돼 있어 노을을 감상할 수 있는 명소다. 그러나 지난해 태풍으로 부서진 모노레일은 현재 운행이 금지돼 있다.


일본에서는 독도를 ‘죽도(竹島·다케시마)’라고 부르지만 원래 일본의 옛 문헌에서는 ‘울릉도엔 대나무가 많다’라며 울릉도를 죽도라고 불렀다. 일본인들은 19세기 말부터 기업형 벌목회사를 만들어 울릉도의 나무들을 벌채해 갔고, 독도 주변에 살고 있던 물개 종류인 가지(또는 강치)를 싹쓸이해 멸종시켰다. 일본은 러일전쟁 당시 울릉도 석포전망대에 군사기지를 세우기도 했다. ‘울릉도 오딧세이’ 저자 전경수 서울대 명예교수(인류학)는 “일본이 독도만 겨냥하고 있다는 생각은 어쩌면 큰 오해다”라며 “독도 다음은 울릉도일 수 있다”고 썼다.


● 울릉도의 미식=울릉도에서 맛볼 수 있는 아침 해장국은 ‘오징어 내장탕’이 으뜸이다. 오징어의 내장 중에서 흰색 창만 골라서 넣고 호박잎과 무콩나물, 풋고추와 함께 맑게 끓인 탕국이 숙취를 시원하게 풀어내 준다. 선도가 중요한 오징어 내장탕은 울릉도에서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이다. 꽁치물회는 냉동한 꽁치회에 빨간색 육수를 부어 먹는다. 비린 맛이 전혀 없고 채소와 어우러진 고소한 맛이 깔끔하다.



독도새우는 도화새우, 물렁가시붉은새우, 가시배새우 등 3총사가 있다. 독도새우는 한 접시(20마리가량)에 12만~16만 원 정도로 비싸다. 그러나 일단 시키면 손바닥 길이만 한 크기에 놀라고, 먹어 보면 쫄깃한 맛이 일품이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으면 도동항에서 ‘독도새우 튀김’을 맛보는 것도 좋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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