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 주장만으로 ‘기사 삭제’ 가능… 국민 알권리 막힐 위험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8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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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위의 언론중재법]〈3〉기사 열람차단 청구권 악용 우려

언론계 원로들 “언론법 중단하라” 언론시민단체 자유언론실천재단의 원로 언론인들이 23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이들은 “더불어민주당은 언론중재법 강행 처리를 중단하고 시민사회와 학계, 언론
 협업단체 등이 공동으로 참여해 사회적 합의를 이뤄내야 한다”고 밝혔다. 뉴스1
언론계 원로들 “언론법 중단하라” 언론시민단체 자유언론실천재단의 원로 언론인들이 23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이들은 “더불어민주당은 언론중재법 강행 처리를 중단하고 시민사회와 학계, 언론 협업단체 등이 공동으로 참여해 사회적 합의를 이뤄내야 한다”고 밝혔다. 뉴스1
더불어민주당이 처리를 강행하고 있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에는 ‘기사 열람차단 청구권’이 신설됐다. 열람차단이란 기사가 온라인에서 노출되지 않도록 막는 조치를 말한다. 이 규정을 만든 취지는 언론 보도 피해를 빨리 구제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기사의 열람을 차단할 수 있는 요건이 명확하지 않아 남용 위험이 크고, 이로 인해 보도는 물론 국민의 알 권리까지 위축될 거라는 비판이 나온다.

○ 모호한 기사 열람차단 기준

언론중재법 개정안 17조의 2는 ‘기사 열람차단 청구권’을 규정하면서 3가지 요건을 들고 있다. 언론 보도가 △제목 또는 전체적인 맥락상 본문의 주요한 내용이 진실하지 않은 경우 △개인의 신체, 신념, 성적 영역 등과 같은 사생활의 핵심 영역을 침해하는 경우 △그 밖에 언론 보도 등의 내용이 인격권을 계속적으로 침해하는 경우다. 이 중 하나라도 해당하면 언론사(인터넷신문)와 포털 등 인터넷뉴스서비스사업자는 언론중재위원회 결정에 따라 기사를 삭제해야 한다.

개정안의 대표적인 독소조항으로 꼽히는 언론 보도의 징벌적 손해배상과 고의·중과실 추정 요건과 마찬가지로 기사 열람차단 청구권의 요건 또한 기준이 구체적이지 않다. ‘진실하지 않은 경우’ ‘사생활의 핵심영역’ ‘인격권을 계속적으로 침해’ 등의 표현이 전부다. 이경환 법무법인 가우 변호사는 “진실하지 않다는 것은 어느 정도의 비진실성을 말하는지, 사생활의 핵심 영역과 인격권의 계속적인 침해는 어느 정도의 침해를 말하는지 분명하지 않아 헌법상 명확성의 원칙에 반할 소지가 크다”고 지적했다. 이 변호사는 “권력형 비리 등 공익 보도의 경우 법원의 심리를 통해 진위가 사후적으로 밝혀지는데, 이같이 보도를 먼저 막는 것은 과도한 입법 규제”라고 말했다. 반론 및 정정보도 등을 통해 해당 기사가 전과 어떤 차이가 생겼는지 독자들이 온라인 등을 통해 알 수 있는 기회를 차단해 과잉 규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정보·통신 분야 비영리 사단법인 오픈넷은 기사 열람차단 청구권에 대해 “요건이 지나치게 포괄적이고 추상적이어서 모든 개인에 대한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내용의 기사가 대상이 될 수 있다”며 “공인이나 기업들은 자신에 대한 의혹 제기나 비판적 내용의 보도에 대해 열람차단 청구를 남발해 조정 절차에 대응할 의무가 있는 언론사 등에 부담을 가중시키고 보도활동을 심대하게 저해, 위축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 포털의 열람차단 인용 남발 우려도

기사 열람차단 청구권 대상에 포털 등 인터넷뉴스서비스사업자까지 포함하면서 온라인에서 기사 열람차단 청구권이 더 남용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소장을 지낸 양홍석 변호사는 “현재 정보통신망법에 따르면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이는 포털 등 인터넷뉴스서비스사업자에 대해 온라인 게시글에 대한 차단 임시조치를 해달라고 할 수 있는데 포털은 이를 수용하는 경우가 많다. 가급적 논쟁을 만들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이라며 “언론사 기사에 대해서도 열람차단 청구권을 만들면 논쟁적인 기사에 개입하고 싶지 않은 인터넷뉴스서비스사업자로서는 손쉽게 열람차단 청구를 받아들일 위험이 있고, 이는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하는 결과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당초 기사 열람차단 청구권과 함께 해당 청구가 있었다는 점을 기사에 의무적으로 표시하도록 하는 조항도 넣었다가 비판이 일자 삭제했다. 민주당은 기사 열람차단 청구의 표시를 놓고 ‘시민들이 사안을 중립적으로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언론학자들은 이 같은 표시는 중립적인 판단이 아니라 오히려 선입견을 준다는 비판을 제기했다.



정성택 기자 neone@donga.com
#기사 삭제#국민 알권리#기사 열람차단 청구권#악용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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