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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문화

뜨거운 가슴이 있어 외롭지 않은 서해의 독도

입력 2021-07-03 03:00업데이트 2021-07-03 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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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야기]태안 격렬비열도
약 7000만 년 전 화산 분출로 생성된 충남 최서단의 격렬비열도. 사진은 해식애와 해식굴 등이 절경을 이루는 북결렬비도로 2015년부터 유인 등대(왼쪽 위)가 운영되고 있다.
일본이 호시탐탐 노리는 독도만큼이나 중국이 군침을 흘린 서해의 외딴섬. 충남 태안군 신진도항(안흥외항)에서 직선거리로 55km, 중국 산둥반도와는 268km 떨어진 충남 최서단의 섬 격렬비열도다. 사람이 살지 않다 보니 행정선이나 낚싯배를 이용해야만 가볼 수 있는 섬이다. 그것도 하늘과 바다가 날씨를 ‘허락할’ 경우에만 출입이 가능하다. 깎아지른 해안 절벽과 바위 동굴, 기암괴석들마저 독도를 연상시키는 격렬비열도! 이 섬으로 ‘수토(搜討·신성한 땅을 지키기 위한 국토 순례) 여행’을 하는 이유가 있다. 지금도 서해를 자국의 내해(內海)로 만들려는 중국의 야욕에 맞선 ‘서해의 독도’이기 때문이다.

○ 중국 서해공정 침략의 현장

여름 못지않은 열기를 품은 6월의 태양이 떠오르는 새벽, 뱃멀미 약으로 단단히 무장한 뒤 신진도항에서 태안군 어업지도선(태안격비호)에 몸을 실었다. ‘격렬비열도 지킴이’를 자처하는 ‘사단법인 대한사랑’ 회원들과 함께였다. 제법 거친 풍랑을 뚫어가며 2시간 남짓 망망대해를 달리자 멀리서 3개 섬이 시야에 들어왔다. 바다 안개 속에서 희미한 자태를 드러낸 격렬비열도는 마치 구름 위에 두둥실 떠 있는 섬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격렬비열도는 암초 9개가 달린 큰 섬 3개가 나란히 늘어선 모습이 마치 새가 열을 지어 날아가는 것 같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섬이다. 3개 섬을 따로 떼서 부를 때는 ‘격렬비도(혹은 격비도)’라고 하는데, 북격렬비도가 좌우로 동·서격렬비도를 거느리고 있는 모습이다.

23개 영해기점(오른쪽에 표시물) 중 하나인 서격렬비도.
2015년부터 유인 등대가 운영되고 있는 북격렬비도는 국유지, 무인도인 동·서격렬비도는 사유지다. 이 중 가장 서쪽에 있는 서격렬비도가 우리나라 해양 국경선을 결정짓는 섬이다. 선상에서 섬을 한 바퀴 돌아보는데 태극기가 새겨진 영해기점 표시 시설물이 눈에 들어왔다. 바위 절벽에 등대 모양으로 조성한 이 시설물은 이곳이 대한민국 관할 해역의 획정 기점이며, 여기서부터 더 서쪽으로 12해리(약 22km)까지가 우리 해역이라는 뜻이다.

이런 시설물이 들어선 데는 섬 이름처럼 ‘격렬’했던 사연이 숨어 있다. 서격렬비도는 2014년 조선족을 앞세운 중국 자본에 의해 20억 원에 팔려나갈 뻔했다. 국토교통부가 그해 말 부랴부랴 이 섬에 대한 외국인토지거래제한조치를 내려 거래를 막았지만 여전히 말썽의 소지는 있다. 한국인을 내세운 중국 자본이 섬을 사들인 뒤 어장권 등 어업 권리를 주장하거나, 위장 매입한 섬을 중국인들이 사는 유인도로 만들어 점유권을 주장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중국은 서해를 자국 안바다로 설정한 ‘서해공정(西海工程)’ 정책을 고집하고 있다. 중국은 이미 2013년에 우리 군에 동경 124도 서쪽은 자신들의 작전구역이므로 넘어오지 말라고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동경 124도선을 한중 해양 경계선으로 설정할 경우 서해의 70% 이상이 중국 관할에 들어가고 만다. 서해공정을 멈추지 않는 중국이 우리나라 23개 영해 기점 중 하나인 이 섬을 소유했을 경우 남중국해 못지않은 영토 분쟁의 불씨가 될 수 있다는 게 해양 군사 전문가들의 경고다.


이처럼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서격렬비도는 뛰어난 절경을 자랑하는 섬이기도 하다. 파도의 침식으로 생성된 해식 동굴과 절벽이 안개와 어우러져 신비한 자태를 뽐낸다. 촛대처럼 생긴 바위섬도 눈길을 끄는데, 해안가 암석이 파도의 영향으로 기둥 모습으로 변형된 시스택(sea stack) 현상이다.

격렬비열도 중 가장 뛰어난 경치를 자랑하는 동격렬비도.
인접한 동격렬비도는 서격렬비도와는 또 다른 풍광을 보인다. 서격렬비도가 우아한 여성적 느낌을 준다면, 동격렬비도는 세 섬 중 가장 큰 데다 깎아지른 듯한 주상절리, 벌집처럼 구멍이 난 암석인 타포니(풍화혈), 빛이 들어오는 거대한 동굴 등으로 웅장한 남성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동격렬비도는 1978년 겨울 태안 주민 12명이 44일 동안 대한민국 최장기 무인도 조난사고를 기록한 곳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봉우리가 가장 높아(133m) 등대가 설치된 북격렬비도는 서해의 밤바다를 지키는 수문장 역할을 맡고 있다. 이 섬은 유일하게 배를 댈 수 있는 임시 선착장이 있었지만 아쉽게도 풍랑이 너무 거세 보트로 상륙할 수 없었다. 외로운 등대지기를 격려하기 위해 육지에서 가져온 수박 한 통도 전달하지 못한 채 선상에서 섬을 둘러봐야 했다. 유채꽃과 동백나무가 섬을 장식하고 있는 가운데 하늘에서는 무리지어 나는 바닷새들의 비행이 장관을 이루었다. 섬 정상에는 높이 107m에 이르는 흰 콘크리트 구조물인 등대가 우뚝 서 있다.

약 7000만 년 전 화산 분출로 생겨난 바위섬인 격렬비열도는 우리나라 최초의 화산섬으로 꼽힌다. 460만 년 전에 생긴 독도나 100만 년 전에 생긴 제주도보다 오랜 섬이다. 고려·조선시대에 왜구가 자주 출몰해 노략질을 하자 주민들을 철수시킨 후 지금처럼 무인도가 됐다고 한다. 그 대신 가마우지, 괭이갈매기, 박새 등이 둥지를 트는 바닷새들의 보금자리가 됐다. 멸종위기종인 매의 번식지이기도 하다.

○ 한중 바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세 섬을 찬찬히 안내해준 태안격비호 이주봉 선장은 “격렬비열도는 중국 산둥반도와 직접 연결되는 해상 교통로인 데다 주변 해역이 농어, 광어, 가리비, 옥돔 등 고급 어종이 풍부해 중국 어선들의 불법 조업으로 우리 해경과 잦은 충돌이 벌어지는 현장”이라고 말했다.

지금은 이 섬이 한중 해상 마찰의 한가운데에 있지만, 과거엔 한중 외교와 교역의 중요한 교통로였다. 백제와 중국 남북조, 고려와 송나라, 조선과 명·청나라 등 양국 사신들이 계절풍을 이용해 왕래할 때 거쳐 가던 곳이 바로 격렬비열도 앞바다였다.

선상 탐방을 마친 뒤 격렬비열도를 뒤로하면서 한중을 오가던 사신들을 생각해본다. 산둥반도에서 출발한 사신들은 목숨을 걸고 험하고도 멀디먼 대양을 건너오면서 격렬비열도를 만나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을 것이다. 이어 육지 쪽으로 안내하듯 점점이 뻗어 있는 난도와 궁시도, 석도, 병풍도, 옹도, 가의도 등을 좌표 삼아 안흥항에 닿게 된다. 당시 민가가 있던 궁시도 등 몇몇 섬들은 바다 고속도로 휴게소 역할을 하기도 했다.

또 신진도는 고려 말부터 조선 후기까지 중국과의 무역이 활발하였던 곳이다. 안흥내항에서 바로 눈앞에 바라다보이는 신진도의 후망봉은 송나라로 떠나는 고려 사신이 산제를 지내며 청명한 날씨를 기다린 곳이며, 안흥8경 중 하나인 능허대 백운정은 중국 사신들이 안흥의 가을 달을 즐기던(능허추월·凌虛秋月) 명소였다.

한편 안흥내항 뒷산에 있는 안흥진성(안흥성·태안군 근흥면 정죽리)에도 해상 교역의 흔적이 남아 있다. 중국에서 온 사신을 영접하던 곳이던 이 성은 “조선에 가거든 안흥성을 보고 오라”는 말까지 생겼다고 할 정도로 번성했던 조선의 대표적 수군진성(水軍鎭城)이다. 또 성 정상에 있는 태국사는 백제 무왕 때 지어진 사찰인데, 울돌목처럼 물살이 거세기로 유명한 안흥 앞바다(관장목)를 오가는 배들이 무사히 항해하기를 기원하는 기도도량이었다고 한다. 안흥항을 지나는 내외 사절단도 출항 전후로 절에 들러 무사 항해를 기원했다. 태국사에서는 안흥포구와 앞바다가 툭 트여 이곳이 군사적 요충지임을 실감케 한다.

격렬비열도에서 신진도와 안흥성에 이르는 바다 고속도로 역사를 이대로 묵히기는 아깝다. 격렬비열도를 국가관리연안항으로 예비 지정하는 데 앞장서온 가세로 태안군수는 “격렬비열도와 인근 섬들을 연계한 관광자원을 개발하고, 국가사적으로 지정된 안흥진성도 복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태안이 신해양도시로 다시 주목받게 될지 지켜볼 일이다.



글·사진 태안 격렬비열도=안영배 기자·풍수학 박사 oj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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