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미국판 자연인’이다” 시골에서 산다는건…

신동아 입력 2021-06-15 10:33수정 2021-06-15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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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미국 시골 생활, 현실이 되다
● 우물물 길어 먹고 정화조 쓰는 단층 조립식 주택
● 봄에는 쐐기풀과 고사리, 여름에는 야생 블랙베리 수확
● 인터넷 해지하고 찾아온 평화로운 삶
● 농부, 라이프가드, 전업주부 그리고 작가
● 밀 갈아 빵 굽고, 파스타 국수까지 직접 반죽해서 뽑아내
● 변화가 두려운 이유는 기존의 내 것을 잃을 거라는 불안 때문
집 근처 한 농장 앞에 선 김선우 씨. 김선우·박혜윤 제공
필자 김선우와 박혜윤은 2001년 동아일보에 기자로 입사한 후 부부의 연을 맺은 특별한 사이다. 아내 박혜윤은 첫아이를 낳은 뒤 2005년 퇴사했고, 남편 김선우는 아내 박혜윤이 첫아이와 함께 미국 유학을 떠나자 5년여 기러기 아빠 생활을 하다가 2013년 퇴사한 후 미국으로 건너가 완전체 가족으로 결합해 현재까지 미국 시애틀 인근에서 살고 있다. 우물물을 길어다 먹고, 하수도가 아닌 정화조를 쓰는 미국 시골 오지에서 미국판 자연인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김선우·박혜윤 부부가 그들만의 남다른 삶의 이야기를 전해왔다. 박혜윤은 6월 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숲속의 자본주의자>를 책으로 펴냈다. [편집자 주]

“우리 시골 가서 살자.”

2005년, 결혼한 지 2년쯤 됐을 때였다. 아내가 폭탄 제의를 했다. 스콧 니어링과 헬렌 니어링 부부의 ‘조화로운 삶’을 읽고 나서였다.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말이 되는 소리를 하라며 넘겼다. 나는 괜찮은 직장에 다니고 있었고 첫딸은 돌이 다 돼가고 있었다. 아내는 첫째를 키우겠다며 회사를 막 그만둔 상황이었다. 일이야 나 혼자 해도 상관없지만 다 그만두고 시골 가서 살자는 얘기는 하루하루 정신없이 바쁘게 사는 직장인에게는 그저 낭만적인 얘기일 뿐이었다. 현실감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2015년 우리는 미국 시애틀에서 북쪽으로 차로 1시간 정도 걸리는 시골로 이사를 왔다. 아내 박혜윤에게는 ‘꿈은 이루어진다’였을 테고, 나 김선우에게는 ‘절대 아니라고 말하지 말라(Never say never)’는 교훈이 됐다. 시골에서 사는 게 현실이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거짓말같이 뚱딴지(돼지감자)도 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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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러기 남편의 ‘번아웃’

“우리 시골 가서 살자”는,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던 제안을 실행에 옮기게 된 이유부터 설명해야 할 것 같다.

얘기를 꺼내자마자 남편에게 면박을 당한 아내는 사실 다른 꿍꿍이셈이 있었다.

“나 미국 가서 공부할 거야.”

‘나 XX할 거야!’식의 선언을 워낙 잘하는 사람인지라 별로 귀담아듣지 않았다. 저러다 말겠지 싶었다. 그런데 아내는 애를 업고 미국 대학원 입학에 필요한 GRE 공부를 했다. 영어 단어를 독하게 외우고 원서를 쓰는 걸 보니 살짝 겁이 났다. 애가 잠든 어느 날 밤 물어봤다.

“진짜 가려고?”

“응.”

“애는?”

“데리고 가야지.”

“애 데리고 혼자 무슨 공부야?”

“어차피 얼굴도 잘 못 보고 사는데 뭘.”

빨리 퇴근해 봐야 밤 10시, 11시였던 시절이다. 일요일에도 격주로 출근했다. 얼굴을 잘 못 보고 산다는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러면 나는 어떻게 살라고? 아내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딸을 데리고 도망가는 것만 같았다.

이후 나는 5년 동안 기러기 생활을 했다. 중간에 휴직하고 아내가 다니는 대학에 가서 공부한 기간을 제외하고 만으로 5년이다. 아내와 딸은 여름방학과 겨울방학 때는 무조건 한국에 와서 지냈고, 나는 휴가 때는 미국행 비행기를 탔다. 쌓이는 건 항공 마일리지뿐이었다. 만나면 반갑다고 뽀뽀뽀라고 했던가. 그 와중에 둘째 딸도 태어났다. 첫째와 아내는 미국에서, 나는 둘째와 서울의 부모님 댁에서 사는 21세기 이상한 가족의 표본이 됐다.

사실 옆에서 잔소리하거나 바가지 긁는 사람도 없고, 둘째는 부모님이 키워주고, 기러기 생활은 커리어에 전념하기엔 그리 나쁘지 않은 옵션이긴 했다. 회사는 나의 전부가 됐다. 나 나름대로 열심히 일했다. 대학원 박사과정에도 등록해 공부도 했다. 하지만 결코 지속 가능한 삶의 방식은 아니었다. 기러기 생활이 오래되자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렇게 사는지 모르겠다는 자괴감이 들기 시작했다. 일종의 번아웃이었던 셈이다. 기러기 생활 5년 만에 그렇게 약간은 충동적으로 사표를 냈다. 아무런 계획 없이 둘째를 데리고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2013년의 일이다.

시골에서 산다는 건…

고사리를 삶은 뒤 말리는 건 매년 봄 연례행사다. 김선우·박혜윤 제공
미국에서 살다 보면 무슨 일이라도 하게 되겠지 싶었다.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되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우리말로 기사를 쓰던 신문기자가 미국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경력이 애매해서 그런지 스타벅스 매장 직원으로도 뽑아주지 않았다. 창업이나 자영업은 두려웠다. 12년 동안의 직장 생활은 안 그래도 부족한 기업가 정신을 바닥내 버렸다.

그때 시골 가서 살자는 아내의 말이 생각났다. 첫째가 학교를 가면 어린 둘째를 차에 태우고 땅을 보러 다녔다. 얼마나 돌아다녔는지 둘째는 차 뒷좌석에서 멀미를 하곤 했다. 그러기를 6개월여. 작은 내가 흐르고 울창한 숲이 있는 땅을 발견했다. 땅은 좋았지만 집은 그저 그랬다. 전기는 연결돼 있지만 물은 우물물을 쓰고 하수도가 아닌 정화조를 쓰는 작은 단층 조립식 주택이었다.

시골 땅과 집을 사기 전에 해야 하는 건 원하는 삶의 방식이 어떠한지 시시콜콜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는 거다. 사고팔기 쉬우며 시세차익을 얻기 쉬운 곳을 찾는다면 돈이 많아야 한다. 돈이 그렇게 많지도 않았지만, 더 중요한 건 미국에서는 비싼 부동산을 사면 보유세, 유지비 등이 너무 높았다. 하지만 내가 지금 당장 원하고, 내가 누리고자 하는 것을 명확하게 알면, 딱 그 가치에 합당한 시장가격의 물건을 찾는 일은 비교적 쉬워진다.

이 과정을 통해 우리는 써본 적이 없는 뇌의 한 부분이 깨어나는 경험을 했다. 바로 사용가치. 물론 이 말의 뜻은 알았다. 하지만 그게 ‘나’에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는 몰랐다. 내가 도대체 무엇을 원하는지를 세밀하게 알면 알수록 돈이든 시간이든 집이든 뭐든 더 많은 가치가 생긴다는 것 말이다. 우리는 땅이 집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땅에서 뭔가 할 수 있기를 바랐다. 집은 살 수 있을 정도로만 손을 봤다. 페인트도 직접 사서 칠했다. 그렇게 2015년 여름 우리는 넓은 땅에 조립식 주택이 있는 시골로 이사를 왔다.

원하는 것을 알아가는 건 한 번에 끝나는 일은 아니다. 과정일 뿐이다. 원래 계획은 농사를 짓는 것이었다. 이사하기 전에 농장에서 인턴으로 일하면서 농사를 배웠다. 농사의 기술만 배운 건 아니었다. 농사는 머리가 아닌 몸으로 한다는 사실도 배웠다. 평생을 도시의 아스팔트 바닥에서 살던 사람이 40세가 넘어서 몸으로 농사를 배우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허리를 펴기가 어려웠다. 손목은 걸핏하면 아팠다. 그래도 이사한 후 맞은 첫봄에 블루베리 묘목과 사과나무를 비롯한 과일나무를 싶었다.

하지만 바로 큰 난관이 닥쳤으니, 바로 사슴!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라고만 알고 있었는데, 이 아름다운 생명체에 대해,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의도적인 살의를 느꼈다. 사슴들이 블루베리 묘목이나 사과나무들, 채소 작물을 초토화했다. 정확하게 새순만 먹어치운다. 100그루도 넘게 심었는데 어림도 없었다. 주변에서는 어떻게 할까. 약을 치고, 울타리를 두르고, 극단적으로는 사냥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에게 낯설었던 건 그토록 극명한 증오와 적의였다. 도시 출신의 우리는 시골 생활의 노동보다 소유 관념이 더 컸다. 내 땅, 내가 심은 걸 침해당하는 것을 정말이지 참을 수가 없었다. 도시 깍쟁이가 이런 거구나. 자연과 어울려 산다는 것은 불쌍한 동물에게 먹이를 주고 자연의 아름다움에 경탄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치열하게 내 먹을 것을 지켜내는 열정이었다. 우리에게는 그런 열정이 없었다. 인간이 농사를 지어서 번성한 그 본능을 이렇게 만났다. 그래서 본격적인 농사는 안 짓기로 했다.

대신 우리도 사슴을 본받기로 했다. 농사는 텃밭 수준으로만 짓고 대신 야생으로 자라는 작물들을 채집하기로 했다. 봄에는 쐐기풀과 고사리를 따고 여름에는 야생 블랙베리를 수확한다. 삶아서 말리거나 냉동시켜 1년 내내 먹는다. 그리고 야생 식물에 대해 공부한다.

그러다가 내 먹을 것을 빼앗아 먹는 사슴에게 느꼈던 불타는 적의만큼 강렬한 또 다른 본능을 만났다. 자연에서 야생으로 자란 식물과 과일을 따고 있으면 그야말로 없던 힘도 마구 솟아난다. 이 비슷한 욕망을 어디서 느껴봤는데… 세일 품목을 잘 찾을 때 느꼈던 쇼핑의 긴장과 쾌감! 바로 그거였다. 잘 익은 과일, 순한 맛을 보장하는 식물의 색깔을 찾는다. 그것을 찾으려면 가시를 피하기도 해야 하고, 잘 살펴봐야 한다. 이런저런 장애를 피해 수확을 하면 말 그대로 시간을 잊는다. 농장에 가서 과일 따기 체험도 해봤지만 이 쾌감은 차원이 다르다. 원시 조상들이 우리에게 물려준 깊은 본능을 또 이렇게 만났다. 게다가 우리가 심지도 않고 관리도 안 했는데, 공짜로 자란 잡초들 아닌가. 사슴이 먹고 우리가 먹어도 넘쳐났다.

인터넷 없이 살기

시골에 이사 와서 가장 놀랐던 건 인터넷 서비스업체가 위성 인터넷 말고는 없다는 점이었다. 울며 겨자 먹기로 느려터진 위성 인터넷을 월 10만 원씩 주고 사용했다. 말이 위성 인터넷이지 속도는 체감상 전화 모뎀 수준이었다. 화면이 로드되는 데만 몇 분이 걸렸다. 위성 인터넷을 1년 정도 사용한 뒤 인터넷을 없애보기로 했다. 차 타고 15분 정도 가면 있는 동네 도서관에서 인터넷을 사용하면 되니까.

실험적으로 인터넷 모뎀 전원을 끄고 산 지 약 한 달 만에 인터넷을 해지했다. 약간 슬프긴 했지만 사실 시원섭섭했다는 게 더 맞을 것 같다. 허비하는 시간이 너무 많았다. 인터넷을 끄고 하루 동안 이용하지 않다가 동네 도서관에 가서 실컷 이용해 보니, 한 시간이면 충분했다. 이후엔 그냥 습관적으로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집에서는 느린 인터넷이라도 틈만 나면 쳐다보는 게 일상이었다. 따지고 보면 하지 않아도 사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는 일들이다.

시골로 이사 온 뒤 카페인도 끊고 술도 끊어보니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다. 없으면 죽을 것 같았던 것들이 진짜로 없어져도 절대로 죽지 않았다. 없으면 죽을 것 같다는 건 그냥 방어기제일 뿐이었다. 한국에 있을 때는 잠자는 시간을 제외한 깨어 있는 모든 시간에 정보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스마트폰부터 확인했고 자기 전엔 쓸데없는 유튜브 동영상 같은 걸 봤더랬다. 심지어 밥을 먹을 때도 혼자서 먹으면 누군가와 카카오톡을 하거나 페이스북을 하면서 먹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런 정보의 흐름이 갑자기 끊기자 일상이 매우 한가롭고 여유로워 졌다. 하루에 한 시간 정도 집중적으로 인터넷을 하며 정보를 받아들이고 나머지 시간에는 농사를 짓든, 멍을 때리든, 잠을 자든, 책을 읽으니 무척 평화로운 삶이 찾아왔다. 어쩌면 스트레스가 없어서 자극이 필요 없어진 건지도 모르겠다.

4가지 직업

이렇게 살면 4인 가족의 생활은 어떻게 유지할까. 나는 직업이 4개다. 하나씩 살펴보자.

1) 농부 : 제대로 농사를 짓지는 않지만 봄에는 고사리와 쐐기풀을 따서 나물을 만든다. 여름에는 블랙베리를 수확하고 라벤더를 말린다. 이 밖에 케일, 토마토, 호박, 깻잎, 마늘, 파 등 닥치는 대로 심어서 먹는다. 그러니 어쩌면 농부라기보다는 야생 식용 먹을거리 채집자라고 하는 게 더 정확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엄연한 일이다. 적지 않은 시간을 투자해야 하니까. 수확한 뒤에 말리고 정리하는 것도 큰 일이다. 들어오는 돈은 없지만 대신 식료품비를 대폭 아낄 수 있다. 인간관계 품위 유지비도 충당된다. 야생 먹을거리를 손질해서 선물하면 비싼 물건보다 더 좋아하는 사람이 많다.

2) 라이프가드 : 동네 수영장에서 수영하고 싶었지만 여기에 내는 돈이 아까워 아예 일하면서 공짜로 수영하는 방법을 택했다. 4일 수업을 듣고, 수영 시험을 통과하고, 심폐소생술과 구조 실습을 한 뒤 자격증을 땄다. 딱 재미있을 정도만 일한다. 일주일에 서너 번, 한 번에 네다섯 시간만 일한다. 평균 일주일에 15시간 정도다. 일한 다음에는 꼭 수영을 40분 정도 하고 퇴근한다. 미국의 최저임금 수준이라 별 거 아닌 것 같지만 이 일이 은근히 생활에 규칙성을 부여하고 삶에 활력을 준다.

3) 전업주부 : 아내가 먹는 것과 관련된 일을 도맡아 하긴 하지만 이외의 집안 일 대부분은 내가 한다. 아이들도 많이 도와준다. 화장실 청소는 애들이 주로 한다. 물론 이로 인한 수입은 없다. 하지만 배관이나 전기 등 전문적인 부분을 제외하고는 집 관리를 외주 주는 일은 거의 없다. 요즘엔 유튜브가 워낙 좋아서 배우기도 쉽다. 인건비가 비싼 미국에선 돈을 비교적 많이 아낄 수 있다.

4) 작가 : 2, 3개 인터넷 매체에 글을 쓰고 번역을 한다. 아내와 e메일 구독 서비스도 운영한다. 많은 돈을 벌지는 못하지만 가장 많은 시간을 들이는 일이다. 글을 쓰려면 많이 읽어야 하고 또 글을 쓰는 시간도 필요하니까. 하지만 아마도 가장 즐겁게 하는 일이 아닐까 싶다. 전직 기자라 아직도 취재를 해서 글을 쓰는 게 더 편하긴 하다. 다른 사람의 얘기를 들으면서 취재할 때는 궁금한 걸 직접 물어볼 수 있지만 지금은 주로 글을 읽고 2차 가공하는 일을 하기 때문에 궁금한 걸 물어볼 수 없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글을 읽고 글을 쓰는 지금의 방식에 고마움을 느낀다. 궁금한 걸 물어볼 수 없기 때문에 더 열심히 읽고 더 열심히 생각하게 됐기 때문이다. 생각을 치열하게 하다 보면 전체 그림이 그려질 때가 있다. 그땐 정말 글 쓰는 게 재미있어진다.

즐겁게 하는 일의 에너지

수영장에서 라이프가드로 일하고 있는 김선우 씨. 김선우·박혜윤 제공
내 안의 인정욕구는 글로 해결한다. 인터넷에 쓰는 글에는 악플이 달리는 경우도 있지만 가끔은 좋은 반응도 온다. 처음엔 악플 하나 때문에 심장이 벌렁거렸는데, 지금은 마음을 갈고닦아 ‘선플’만 보고 ‘자뻑’하는 멘털을 획득했다. 주변에 비슷한 사람들에 둘려 싸여 살 때는 몰랐던 정신상태다. 비슷한 사람들끼리 있으면 확실히 마음이 편하기는 하다. 말도 잘 통하고 앞으로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방향을 잡는 것도 쉽다. 하지만 나쁜 점도 있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 그렇게 살다 보면 내가 딱히 잘났다거나 특별한 존재라고 느끼기는 쉽지 않다. 좋아하는 선후배, 이웃 친척들인데도 은연중에 비슷한 사람들이니 경쟁심이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는 외따로 떨어져 있어서 내가 잘 살고 있는지 어떤지 불확실하고, 사람들이 그립기도 하지만, 이전에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편안함이 있다. 나는 그냥 고유한 나라는 느낌이 그것이다. 발전하지 않는 나태함일까? 그런 불안함이 들기도 하지만, 만약 그렇다 하더라도 역시 인생은 장단점이 각각 따로 있는 셈 치기로 했다.

20여 년 전 누군가가 “넌 20년 뒤엔 직업을 5개 가질 거야”라고 말했다면 코웃음을 쳤을 거다. 지금 현재 내가 아는 사람 대부분은 직업이 하나다. 물론 이 5가지 직업을 영위하려면 은근히 바쁘다. 하지만 하나의 직업을 가진 사람보다는 훨씬 덜 바쁠 거다. 왜냐하면 재미있는 만큼만 하기 때문이다. 주택 임대 관리는 맘대로 안 되긴 하지만 그 같은 큰일은 1년에 몇 번 없다.

이렇게 살면서 깨달은 건 ‘즐겁게 하는 일의 엄청남’이다. 농사짓는 거나 글을 쓰는 거나 라이프가드 일이나 즐거운 만큼만 하다 보면 일 하나하나에 집중하고 기분 좋게 할 수 있다. 사실 직장을 다니다 보면 아무리 좋아하는 일을 하더라도 조직에 속해 있기 때문에 매너리즘에 빠지기도 하고, 일이 힘들어질 때도 있다. 하지만 내가 처한 상황에서는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 다른 일로 바빠서 글 마감을 못 할 것 같으면 편집자에게 이번 주는 쉬어 가겠다고 미리 알려주고 그 회차 원고료를 포기하면 끝이다.

자족하는 삶

김선우·박혜윤 부부는 스마트폰 대신 구식 폴더폰을 쓴다. 김선우·박혜윤 제공
수입이 많지 않은 우리가 즐겁게 살 수 있는 이유는 단순하다. 버는 것보다 덜 쓰기 때문이다. 우선 아이들 교육비는 쓰지 않는다. 가르칠 것이 있으면 우리 부부가 직접 가르치자고 마음먹었는데, 막상 그럴 일은 별로 없다. 애들이 천재라서가 아니라 학교 성적이 그렇게 중요한지 잘 모르겠다는 마음가짐 때문이다. 지출을 줄이기 위해 직접 된장을 담그고, 밀을 갈아 빵을 굽고, 파스타 국수까지 직접 반죽해서 뽑는다. 뭐든지 직접 만든다. 커튼도 남는 천을 잘라 붙여 만든다.

자질구레하게 집 고치는 일도 직접 한다. 변기 교체, 빗물 홈통 설치 방법을 배운 것은 꽤나 뿌듯하다. 세제나 비누는 직접 만들어 쓴다. 머리 손질도 직접 한다. 차는 한 대뿐이며 옷이나 물건은 거의 사지 않는다. 살 일이 있으면 중고가게에서 산다. 처음에는 남이 입던 옷을 어떻게 입고, 남이 쓰던 그릇을 어떻게 쓰냐고 생각했다. 그러면 식당 가서 밥도 먹지 말아야 한다. 잘 빨고 깨끗이 씻어서 쓰면 된다. 은행 빚은 없다.

은행 빚과 인터넷, TV 외에도 우리 집엔 없는 게 많다. 스마트폰, 전자레인지, 전기밥솥, 다리미도 없다. 전자레인지나 밥솥으로 하는 일은 우리에게 많은 시간으로 때운다. 회사를 안 나가니 다리미질이 필요한 옷은 다 없앴다.

이곳에 오래 살다 보니 친구도 생겼다. 코로나 이후에는 자주 못 보지만 한 달에 한두 번 만나면 밤늦도록 얘기꽃을 피운다. 인간관계가 많지 않다 보니 한번 만나면 열과 성을 다해 떠든다. 소중한 인연이다. 역시 모두들 우리가 살아왔던 방식과는 공통점이 거의 없는 신기한 사람들이다. 그들을 보면서 자극을 받기도 한다. 사람들은 각자 다른 방식으로 열심히 살아가는구나. 열심히 사는 방식이 이토록 다양한지 예전에는 몰랐다. 옛날에는 낯선 사람을 만나면, 마음속으로 ‘옳지 않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지금은 우리도 누군가에게 엄청나게 신기한 사람이라는 것을 경험하면서 나와 다른 사람에게도 나 자신에게도 많이 너그러워졌다.

아이들 교육비를 들이지 않는 대신, 아이들이 일상에서 발생한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방법을 찾는 과정에 함께한다. 인형을 갖고 싶으면 만들라고 한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주고, 유튜브를 보여주면서 스스로 뜨개질하는 방법을 익힌다. 재료를 구입하는 곳과 필요한 재료의 리스트도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초등학교 때부터 이런 경험을 한 고등학생 딸은 인터넷 쇼핑몰을 만들어서 소소하게 인형을 만들어 팔고 있다.

이쯤 되면 뭔 궁상이냐고 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 삶의 만족도는 매우 높다. 아무래도 그 이유는 시간에 있는 것 같다. 처음에는 남아도는 시간이 저주처럼 느껴졌다. 맨날 ‘오늘은 뭐하지?’ 그렇게 하루를 시작했다가, ‘오늘도 한 일이 하나도 없네’로 하루를 마감했다. 하지만 이제는 하루의 시간을 ‘성취와 업적’으로 채우는 대신 좀 더 좋은 ‘관계’를 만들어나가기로 마음을 바꿨다.

그러다 보니 가족관계가 제일 좋아졌다. 세상 모두가 가족이 가장 소중하다고 한다. 그걸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시골로 오기 전에는 가족과의 관계로 시간을 채우는 방법에 대해 잘 몰랐다. 가족과 함께 쌓는 일상으로 삶을 채울 수 있다는 사실도 잘 몰랐다. 시간은 돈을 벌거나 더 높은 성취를 위해 채우고, 그 돈으로 가족을 위한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딸 둘을 포함한 네 가족이 함께 밥을 해서 먹고, 수다를 떨고, 집안일을 한다. 이렇게 살면서 우리 가족 4명은 운명 공동체로 거듭났다. 외부의 인연이 많지 않으니 내부적인 결속이 다져진다고 해야 할까. 4명이 서로 눈치 보느라 바쁘다. 서로 잘 보여야 생존이 가능하니까. 가끔은 지구에 단 4명만 남은 기분이다.

운명 공동체로 거듭난 가족

김선우·박혜윤 부부 집에서 바라다보이는 창밖 풍경. 김선우·박혜윤 제공
정확하게 말하면, 우리 가족이 화기애애하게 지내는 게 아니다. 오히려 우리 가족은 대단히 느슨해졌다. 4인 핵가족에서 상정하는 돈 벌어오는 부모, 공부해서 앞으로 사회에서 돈 벌 준비를 하는 그런 가족의 역할을 버렸다는 뜻이다. 가족이 서로에게 행복을 구하지 않고, 의무도 없고, 더 나아지고, 더 채우고, 더 좋은 무엇이 돼야 한다는 기대 없이 우리의 관계는 저절로 오래 지속될 거라는 이해만으로 가족이 지탱할 수 있는지 그걸 알아보고 싶었다.

가족이라는 구조와 형태를 유지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그냥 현재의 나로서 충분한 관계들이 가능할까 그게 궁금했다. 그래서 기념일이나 생일, 각종 축하 행사는 처음부터 하지 않았다. 아이라고 해서 학교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할 의무도 없고, 어른이라고 해서 돈을 벌어 가족을 부양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도 아니다. 공부를 하고 돈을 버는 것은 가족을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의 이유가 있으면 족하다.

우리 가족이 함께하는 시간 중 가장 행복에 가까운 시간이라면, 거실에 모두 모여 서로 자기 일에 몰두해 있을 때다. 때로 사춘기 큰아이는 혼잣말로 숙제나 학교에 대한 불평을 중얼거리기도 한다. 둘째도 마음에 드는 책이 없다며 갑자기 혼자서 성질을 부리기도 한다. 부모인 우리도 각자 돈 받고 의무적으로 글을 써야 하기도 하고, 스스로 내켜서 잡글을 쓰기도 한다. 뭘 쓰는지는 서로 모른다. 힘들게 돈 버는 아빠를 우대하는 분위기는 없다. 아이들도 공부를 핑계로 가사노동에서 면제되지 않는다. 공부는 각자 자기 선택일 뿐이기에. 따라서 함께 사는 사람으로서 해야 할 의무가 항상 우선한다. 우리 가족은 착한 행동과 나쁜 행동, 의무를 구분하지 않는다. 남을 해치는 일이 아닌 이상, 그 사람 자체인 것으로, 그리고 각자 자기가 하고 싶다고 스스로 정한 일을 해내는 것으로 충분하다.

우리의 가족관계는 따지고 보면 냉정한 편에 가깝다. 우리는 그게 좋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외롭고 불안한 존재다. 이 근원적인 인간의 조건을 잊거나 극복하기 위해 여러 사회 제도와 조직이 존재한다. 우리는 서로의 외로움을 달래주거나 행복을 줄 수 없지만, 대신 각자의 외로움·불안·부족함을 서로 인정해 준다. 지금까지는 가족의 목적이 더 많은 재산을 모으고, 더 경쟁력 있는 능력을 키우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앞으로는 “더 발전하지 않고 지금 그대로여도 괜찮다”고 서로에게 말해 주는, 이런 ‘관계’를 기반으로 한 가족도 괜찮을 것 같다.

우리가 미국 시골에 살면서 발견한 사실은 새로운 나라, 새로운 환경이 얼마나 더 좋은지, 혹은 더 나쁜지가 아니었다.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우리가 깨달은 점은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 하지만 동시에 사람은 아주 쉽게 바뀔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이곳에서 우리가 얼마나 한국적이며, 얼마나 도시적인 사람들인지 발견했다. 이전에는 의식하지도 못하던 것들이다. 의식도 못 하던 사실에 대한 새로운 인식, 바로 그것이 변화의 출발이었다. 변화라고 해서 우리의 타고난 본성, 지나온 과거의 습관이나 취향을 버리는 게 아니었다. 변화가 두려운 이유는 내가 가진 기존의 것들이 사라질 거라는 불안함에 있다. 다행히도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적응하고야 만다. 그것도 내가 지금까지 의식도 하지 못하고 지나온 ‘나의 것’들을 통해서 말이다.

우리는 이제 다시 도시에 살면 더 기쁘게 도시를 즐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혹은 더 깊은 시골이나 더욱 낯선 나라에 가도 거기만의 즐거움을 찾아낼 것이다. 내가 원하는 것, 내가 즐기고 누리는 것들을 정직하게 발견하면서.

미국 시애틀=김선우·박혜윤 wildwildthing@naver.com

〈이 기사는 신동아 2021년 6월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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