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무용가 육완순… 내 이름 앞 딱 다섯글자면 충분”

김기윤 기자 입력 2021-06-10 03:00수정 2021-06-10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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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무용의 대모 육완순
올해 88세… 현역 안무가로 활동
‘무용계 신화’ 마사 그레이엄 사사
지난달 20일 서울 마포구 육완순무용원에서 만난 안무가 육완순(큰 사진). 그는 “현대무용계에서 한국 안무가들의 실력은 엄청나다. 세계무대에서 관객이 뽑는 상은 늘 국내 안무가들의 몫”이라고 말했다. 작은 사진은 1990년 마사 그레이엄의 첫 내한공연 당시 기자회견 모습.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동아일보DB
1963년 9월 25일 서울 국립중앙극장에서 열린 ‘제1회 현대무용 육완순 발표회’. 서른 살의 앳된 육완순과 무용수들은 맨발에 쫙 달라붙는 타이츠를 입고 무대 위를 구르고 뛰었다. 무용이라면 으레 전통무용을 떠올리던 당시 그는 미국 유학 시절 배운 현대무용을 열정적으로 선보였다. 그야말로 낯선 광경. 평은 둘로 나뉘었다. 누군가는 이 무대를 ‘미친 짓’으로, 다른 이들은 ‘혁신’으로 평가했다. 육완순은 “신세대가 출연했다는 말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회상했다. 세계 무용계의 신화 마사 그레이엄과 호세 리몽을 사사한 육완순은 올해 88세. 지금도 무대를 떠나지 않았다. 무용계는 그를 한국의 1세대 현대무용가이자 현대무용의 대모라고 부른다.

12일 열리는 ‘제3회 육완순 무용콩쿠르’를 앞두고 여전히 현역 안무가로 활동 중인 그를 서울 마포구 육완순무용원에서 만났다. 그는 “상금을 많이 주거나 큰 지원을 해줄 수 있는 콩쿠르는 아니다. 하지만 무대에서 춤을 선보일 기회가 많지 않은 무용수들의 능력을 뽐낼 장을 마련하고 싶었다”고 했다. 이 콩쿠르를 프랑스 바뇰레 콩쿠르처럼 세계적인 대회로 키우는 게 그의 꿈이다.

육완순에게 올해는 각별하다. 그가 만든 국제현대무용제(MODAFE·모다페)는 올해로 40주년을 맞았다. 이를 기념해 그는 자신의 대표작 ‘수퍼스타 예수 그리스도’를 지난달 28일 ‘모다페 뮤지엄-레전드 스테이지’ 무대에 올렸다. 이날 최청자 이숙재 박명숙 등의 공연까지 모두 끝나자 객석에서는 존경을 담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그는 “프로그램 구성상 90분짜리 무대를 12분으로 압축하느라 아쉬웠다”면서도 “다섯 살 때 처음 춤을 추던 때나 지금 내 무대를 만들 때나 똑같이 설렌다”고 했다. 무대에 대한 열망을 말하는 그의 눈에는 눈물까지 그렁그렁 맺혔다.

올 초 그는 스승과 제자, 동료들과 주고받은 편지글을 묶은 ‘내가 사랑하지 않은 적이 있던가’(디자인필)를 펴냈다. 책에는 제자들로부터 받은 편지에 그가 보낸 답신이 나온다. “매 페이지마다 눈물을 흘리며 썼다”는 신간에는 문훈숙 안애순 최태지 국수호 등 춤꾼 117명에게 보내는 진심 어린 고백이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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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완순을 말할 때 빠지지 않는 인물 중 한 명은 미국 무용가 마사 그레이엄(1894∼1991)이다. 마사 그레이엄의 무용은 지금도 ‘신화의 창조’라고 불릴 만큼 전설이다. 육완순은 미국에서 2년간 그를 스승으로 모신 데 이어 1990년 내한공연을 성사시켰다. 육완순은 “무용에서 좋은 신체 못지않게 좋은 영혼과 정신을 강조하셨던 분”이라며 “이화여대 무용과 교수 시절 고수했던 엄격한 교습 방식은 그레이엄 선생님으로부터 배운 것”이라고 말했다.

2000년 자신의 사위이자 가수인 이문세와 만든 합동공연은 무용에 대한 그의 자부심과 애정을 보여준 것으로 유명하다. 육완순은 사위에게 “무용수는 백댄서처럼 왜 가수 뒤에만 서야 하느냐”고 물었고, 결국 무용수들이 무대의 전면에 섰다. 이문세는 무대 뒤편으로 물러나는 대신 단을 높인 곳에서 노래했다.

마음속에 춤을 품기 시작한 다섯 살 때부터 그가 춤과 함께한 세월은 80년이 넘는다. 그가 걸어온 길이 곧 한국 현대무용의 역사이기도 하다. 그를 표현하는 수많은 수식어가 있지만 육완순은 딱 다섯 글자면 충분하다고 했다. “‘현대무용가’ 육완순. 그거면 족해요.”

김기윤 기자 pep@donga.com기자페이지 바로가기>
#현대무용#육완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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