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치하에도 일본인에게 존경받은 퇴계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4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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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년 초등 교과서에 추모곡 실려
총독부 용역으로 일본어 악보 제작

일제강점기 우리나라 소학교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 일본이 펴낸 음악교과서에 실려 있는 ‘이퇴계’ 노래 악보. 경북유교문화원 제공
일제강점기 우리나라 소학교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 일본이 펴낸 음악교과서에 실려 있는 ‘이퇴계’ 노래 악보. 경북유교문화원 제공
일제강점기의 음악교과서에 퇴계 이황 선생(1501∼1570)의 학덕을 존경하고 추모하는 내용의 일본어 악보가 발견됐다. 지금의 초등학교인 소학교에 다니는 우리나라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 일본이 펴낸 것이다.

26일 경북유교문화원과 한국국학진흥원에 따르면 1931년 발행된 소학교 음악교과서(초등찬가·初等唱歌)에는 ‘이퇴계(李退溪)’라는 제목의 노래가 실려 있다.

교과서를 맨 처음 발견한 사람은 안동 고성 이씨(퇴계 이황 선생이 시조) 며느리인 류기남 여사(65)다. 교과서는 조선총독부가 경성사범학교(서울대 사범대의 전신) 음악교육연구회에 용역을 줬고 일본창가출판소와 오사카 보문관이 발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작곡은 경성여고 음악교사인 오바 유노스케, 작사는 나가네 젠소쿠가 했다. 두 사람 모두 음악교육연구회 회원이다.

노래는 모두 4절로 구성됐다. 가사에는 ‘어린 시절 항상심은 주위 사람보다 뛰어났네. 아버지 일찍 여의고 어머니의 자애를 한 몸에 받았네’ ‘학업을 갈고 닦은 보람이 있어 이윽고 급제해 학업을 이루었네. 빛나는 그분의 인덕과 명예는 널리 알려졌네’ 등 퇴계 선생에 대한 존경과 추모 내용이 대부분이다.

노래가 나올 당시만 해도 민족말살정책이 본격화되던 시기였고, 사전검열 등 조선총독부의 통제가 엄격했을 때라 의미가 크다. 김미영 한국국학진흥원 박사(민속학)는 “일본인이 작사·작곡한 퇴계 선생의 노래가 우리나라 소학교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과서에 실렸다는 것은 일본인들조차 퇴계 선생의 학덕과 인품을 존경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안동=명민준 기자 mmj86@donga.com
#퇴계#이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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