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복동 할머니 영정에 일본 왕실 꽃을 헌화하니…” [이진구 기자의 대화]

이진구 기자 입력 2021-03-23 14:00수정 2021-03-23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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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문화 개선 운동하는 송길원 목사
송길원 목사가 19일 정인이 묘소를 찾은 조문객들에게 안장 이후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지난달 12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중 한 명인 정복수 할머니(99)가 세상을 떠났다. 장례는 할머니가 머물던 경기 광주 ‘나눔의 집’ 인근 장례식장에서 치러졌고, 늘 그렇듯 조문객들은 국화로 장식된 영정 앞에 국화꽃을 헌화했다. 잘못된 우리 장례문화 개선운동을 펼치고 있는 송길원 목사(63·청란교회)는 “돌아가신 위안부 피해자에게 일본 왕실을 상징하는 국화꽃으로 헌화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이렇게 의미도 모르고 아무 생각 없이 치르는 장례 문화가 한 둘이 아니다”고 말했다.


―장례식에서 늘 보는 국화가 일본 왕실 상징이란 건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무조건 일본을 배척하자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일본군의 만행을 겪은 할머니들의 마지막 길을 국화로 장식하고 헌화하는 건 정말 아니지 않나. 2019년 1월 세상을 떠난 김복동 할머니 빈소에는 문재인 대통령도 찾아 국화로 헌화를 했다. 문 대통령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 몰라서 그런 거지만 할머니들이 하늘에서 어떤 기분이실지…. 독립군 빈소도 국화로 치장하고 헌화하고 있으니….” (독립군 빈소도?) “2019년 돌아가신 마지막 광복군으로 불린 김우전 전 광복회장 장례도 마찬가지였다. 무궁화로 헌화했다면 훨씬 좋지 않았을까. 고인에 대한 모독은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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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전 광복회장은 일제에 징집됐다가 탈출해 광복군에 입대했다. 백범 김구 선생의 비서를 지냈고, 광복회장 재직 시 받은 월급 전액과 본인의 독립운동 연금을 모아 독립유공자 손·자녀 장학금으로 기부했다.

2019년 1월 문재인 대통령이 위안부 피해자인 고 김복동 할머니 영정 앞에 국화꽃을 헌화하고 있다. /동아일보DB


―생각할수록 부끄러운데… 관계 기관에 개선을 요구하지는 않았나.

“장례문화라는 게 국가가 강제해서 바꿀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지금 인터뷰처럼 자꾸 알려서 국민들 생각이 바뀌는 수밖에는 없지 않을까. (장례식의 국화 헌화 관습은 어떻게 생긴 건가.) ”해방 이후 부산에서 시작된 걸로 알려졌는데 아무래도 일본과 가깝다보니 그런 것 같다. 일본의 국화 사랑이 유별난데 신사는 물론이고 군함에도 장식할 정도다. 그걸 우리 장례업자들이 돈벌이 수단으로 들여와 자꾸 확대시킨 것 같다. 우리 전통 제사에는 꽃으로 치장하고 헌화하는 문화가 없다. 정작 일본은 작은 장례식으로 변하고 있는데 일제 잔재를 청산하자는 우리는 조선총독부가 만든 의례준칙을 왜 지금까지 버리지 못하고 있는지….“

―조선총독부 의례준칙이라니?

”1934년 조선총독부가 식민지 지배를 위해 만든 조선 의례 간소화 정책이다. 우리 전통 상복인 굴건 대신 두루마기에 두건을 입게 하고, 양복을 입을 때는 왼팔에 완장을 차게 했다. 완장의 검은 줄은 상주, 가족, 문상객을 구분하기 위해 수를 달리 했는데 탄압을 위한 감시수단으로 작동했다. 당시 장례는 온 마을의 행사였고, 각지의 친인척과 지인들이 참석하다보니 정보 교환 장소로도 이용됐기 때문이다. 잘못된 장례문화가 이 뿐만이 아니다. 고인을 죄인으로 만드는 건 코미디 중의 코미디다.“

※조선총독부 의례준칙은 표면적으로는 의례개선을 내세웠지만 실제는 조선의 전통 의례를 해체함으로써 민족의 정체성과 긍지를 파괴하는 민족말살정책이었다. 이 총독부 의례준칙이 광복 후 ‘가정의례준칙’으로 이어지면서 현재의 장례문화로 자리 잡게 됐다.

―고인을 죄인으로 만든다는 게 무슨 말인가.

”고인이 입는 옷은 수의(壽衣)다. 전통적으로 비단이나 벼슬을 한 사람은 관복을 입히기도 했는데 고인에 대한 존중, 최고의 예우의 의미를 담았다. 유족이 입는 옷이 상복(喪服)인데 죄인들이 입던 삼베로 만들었다. 부모를 제대로 섬기지 못한 죄인이란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런데 지금은 고인에게 삼베옷을 입히고 자식들은 양복을 입는다. 완전히 거꾸로 된 것 아닌가? 더욱이 ‘마지막 며칠, 효도해야하지 않겠습니까’란 장의업자들 마케팅에 놀아나 수백만 원짜리 삼베옷을 입히는데 실제 원가는 몇 만원 밖에 안하는데다 대부분 중국산이다. 화장률이 90%가 넘기 때문에 거의 대부분 2, 3일 후에 태워질 옷이다. 이런 게 코미디가 아니면 뭐가 코미디일까.“



―장례문화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나.

”내 분야가 가정 사역인데 가정 문제 중 장례 때문에 가장 많이 싸우더라. 안 싸우는 가정이 없다. 조의금 갈등, 재산 분배 등 돈 문제로…. 돈이 많은 집은 더 하다. 형제자매끼리 원수가 되고 신앙도 잃는다. 그런걸 보다보니 자연스럽게 죽음의 문제가 나한테는 중요한 사안이 됐다. 그러던 중 어머니가 많이 아프신 적이 있었는데… 그때 아무리 돌아가신 후라도 모르는 외간 남자가 어머니 몸을 구석구석 닦으면 아주 불쾌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손으로 하는 게 맞는 것 같은데 솔직히 자신이 없더라. 몸에서 분명히 뭐도 나올 것이고, 그 비위를 견딜 수 있을까 싶기도 하고…. 하… 내가 목사가 맞나 싶었다. 그때 어머니 시신을 비위 상하지 않고 씻기고 염습하고 마무리 할 수 있을 때에야 비로소 내가 나를 목사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어떻게 염습을 해야 하는 지 이리저리 묻고 배우고 있었는데 코로나19 때문에 안 해도 되게 됐다.“

―안 해도 되다니?

”방역법상 코로나19 확진자가 사망하면 염습하지 않고 바로 화장해야 한다. 감염 우려가 있으니까. 그걸 보고 ‘아차’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시신을 간단하게 씻기는 것은 필요하지만 흔히 하는 것처럼 많은 비용을 들여서 과하게 할 필요는 없겠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어머니께 물었다. 옛날에는 왜 했냐고.“ (어머니가 어떻게 아시나?) ”우리 어머니가 속된 말로 ‘염습쟁이’였으니까. 어머니가 옛날 동네 교회 권사였는데 우연치 않은 계기로 교인 염습을 대신 했다가 잘한다고 소문이나 굉장히 오랫동안 염습을 했다.“ (뭐라고 하시던가.) ”웃으시면서 ‘아야, 옛날에는 냉장고도 없고 시신이 썩고 물 흘러나오니까 염습을 했는데 요즘은 뭐 땜에 하노’ 이러시더라. 옛날에 시신이 썩는데 방부처리를 할 수 없으니까 코, 입 등 구멍을 다 틀어막았던 거지. 관도 두껍게 하고…. 지금은 그럴 걱정이 없으니까 간단하게 씻기는 정도면 충분하다.“

―설명을 들으면 다 이해가 가는데 왜 잘 안 바뀌는 건가.

”이런 교육을 받은 적도 없고, 문상은 늘 가지만 실제로 상주 경험은 많아야 4번, 아니면 한 두 번이니까 학습이 안 되는 것 같다. 바가지를 써도 문상객들 있는데서 싸우기도 그렇고…. 고인은 뒷전이고 잘못된 문화로 비용만 부풀리는 지금의 장례문화는 정말 바뀌어야 한다.“

송길원 목사는=청란교회 담임목사. 잘못된 우리 장례문화 개선운동을 펼치고 있고, 경기 양평에 소아암으로 세상을 떠난 아이들을 위한 무료 장지인 ‘안데르센 공원묘원’을 운영하고 있다. 소아암 때문은 아니지만 지난해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정인이도 이곳에 잠들고 있다.

지난해 10월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정인이 묘소. 정인이는 송길원 목사가 무료로 운영하는 ‘안데르센 공원묘원’에 잠들고 있다. 안치식은 화초장으로 치러졌고 지금도 정인이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조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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