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미나리, 예일대, 그리고 조국 사태 [최영해의 폴리코노미]

최영해기자 입력 2021-03-19 12:00수정 2021-03-19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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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미나리에서 제이콥의 아들로 나오는 데이빗은 주말 교회에서 처음 만난 백인 아이로부터 놀림을 받는다. 백인 아이는 퉁명스럽게 다가와 “넌 왜 얼굴이 그렇게 납작하니?”라며 신기한 듯 데이빗을 뚫어지게 쳐다본다. 미국 중부의 시골 동네에서 아시아계 인종을 보기가 그리 흔치 않았던 1980년대를 영화의 배경으로 하고 있어서인지 모르겠지만, 그 아이 눈에는 얼굴이 평평한 데이빗이 이상해보였던 모양이다. 이 장면을 보고 나는 감독이 미국 사회의 인종 차별을 복선에 깐 것이라고 생각했다.

같이 영화를 본 아들이 나중에 이 장면을 다시 얘기했다. 10여 년 전 미국으로 해외 연수를 떠났을 때 초등학생이었다. 영화를 보면서 미국에서 학교에 다니던 때가 생각났던 모양이다. 아들은 “등교한지 며칠 되지 않았는데 한 아이가 나에게 ‘그렇게 작은 눈으로 세상이 다 보이니?’라고 물어서 당황했다”고 했다. 그런 일이 있는 줄도 몰랐던 나는 아시안 계들이 이런 차별을 어렸을 때부터 받는구나 생각했지만 아들의 답은 의외였다.

“그런데 아빠, 애들이 진짜 몰라서 물은 거야. 나를 놀리려고 그런 게 아니라 정말 궁금한 거야. 영화에서도 마찬가지였어.”
정이삭 감독의 어린 시절을 보여주는 영화 미나리에서 아들 데이빗은 그의 분신이다. 사진 제공 판씨네마
● 미나리, 복선이 깔린 영화
실제로 영화에서 데이빗과 백인 아이는 둘도 없는 친구가 된다. 그 친구 집에 놀러가 즐겁게 뛰어 놀면서 장난치는 장면이 나온다. 데이빗이 만약 자신을 놀린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그렇게 친해질 수는 없었을 것이다. 아들 또한 ‘그렇게 작은 눈으로 사물을 어떻게 잘 볼 수 있느냐’고 묻던 아이와 가까워졌다고 했다. 정이삭 감독이 자신의 어린 시절을 담은 영화의 이 장면은 어른과 아이의 눈으로 다르게 해석될 수 있는 모습이었다. 아이에게 비친 것은 차별이나 차이가 아닌 이방인에 대한 관심이었다. 영화에선 관객이 해석을 달리 할 수 있는 장면이 곳곳에 보였다.

영화를 보는 내내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아버지 제이콥이었다. 낯선 이민의 땅, 기회이자 도전이기도 한 미국 중부의 한 시골에서 가족의 생계를 오롯이 책임진 그의 어깨는 무거워보였다. 병아리감별사로 아내와 같이 밑바닥 노동을 해야 먹고 살 수 있는 두 아이를 가진 가장, 영화 초반 풀숲에 덩그러니 놓여진 바퀴 달린 조립식 주택에 부인의 당황한 모습에도 태연하게 기회와 희망을 엿보는 제이콥은 미국 사회에 뿌리를 내린 많은 한국인 이민 가정의 아버지였다. 온갖 어려움을 헤치고 재배한 야채를 납품하기 위해 거래선을 찾느라 도시에 트럭을 몰고 가면서도, 장모의 실수로 야채를 쌓아둔 창고가 불타버려 좌절한 부부의 모습에서도 아버지의 어깨를 짓누르는 부담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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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중부의 한 시골에서 제이콥은 가족의 생계를 짊어진 병아리 감별사이자 개척 농부로 가장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 동아일보 DB

● 아버지의 어깨를 짓누르는 가장의 무게
영화의 배경은 미국이 물질적인 풍요를 누리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재임 시절인 1980년대 초중반이었다. 정이삭 감독의 아버지 역할을 한 제이콥은 가난한 조국(祖國)에서 기회를 찾아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을 것이다. 남편을 따라 미국으로 건너온 아내 모니카는 억척스런 한국의 엄마였다. 허허벌판인 아칸소 풀밭에서 그는 아이의 학교 걱정을 한다. 영화에선 한 번도 스쿨버스나 학교 건물이 나오지 않는 것을 보면 딸 앤이나 데이빗이 학령(學齡) 나이는 아니었던 듯하다. 그래도 아내 모니카는 아이들 학교 걱정이 앞선다. 가족을 먹여 살릴 돈을 벌어야 하는 아빠와 애들 교육을 위해선 도시 근처에라도 가야 한다는 부부의 언쟁에 영화는 팽팽한 긴장감이 흐른다.

정이삭 감독의 자전적 영화인 미나리에서 데이빗은 정 감독 자신이었다. 내가 영화에서 데이빗을 눈여겨 본 것은 그가 나중에 예일대를 입학한 이민 2세 성공 스토리의 주인공이었기 때문이다. 데이빗은 어려운 가정환경에서도 잡초처럼 꿋꿋이 성장했을 것이다. 병아리감별사 엄마 아빠를 둔 그가 미국 동부의 명문인 아이비리그인 예일대에 입학하기까지 얼마나 어려운 고비가 많았을까 상상해봤다. 정 감독의 부모는 영화에서 나오듯 많이 배우진 못했지만 지극히 성실한 사람이다. 수확한 채소를 쌓아둔 창고가 불 탄 다음엔 당장 끼니를 걱정해야 했을 것이다.

데이빗이 예일대에 입학하기까지 외할머니를 비롯한 3대의 이민 스토리가 곳곳에 스며있었다. 사진 제공 판씨네마

● 데이빗이 예일대를 들어갈 수 있는 이유
악착같이 살아남아 데이빗은 예일대를 들어갔다. 데이빗의 초중고 생활이 영화에 나오진 않지만 공부를 하는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라는 사실은 충분히 짐작된다. 아마 대입 에세이에서 이민 온 가정의 어려움과 이를 극복해 나간 가족의 스토리를 써내려갔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아이가 예일대에 합격할 수 있는 것이 미국의 힘이다. 미국 입시에선 부모가 대학을 졸업하지 않은 아이가 대학교를 지원하면 ‘퍼스트 제너레이션(First Generation)’이라고 부른다. 대학을 졸업하지 못한 부모보다 나은 삶에 도전하는 아이들을 눈여겨 본다. 부모의 학력이든 소득이든 신분이든, 자식이 부모의 역경을 이겨 낸 스토리가 있으면 ‘귀족 학교’라는 명문대 문도 열릴 수 있다. 미국이 기회의 나라로 불리는 것은 이런 교육의 사다리가 탄탄하게 받치고 있기 때문이다.

여느 가정에서처럼 데이빗 또한 공부해서 의사가 되라는 부모의 기대를 받았을 것이다. 예일대 생물학과를 졸업해서 의사가 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겠지만 데이빗은 영화에 눈이 팔려 엉뚱하게 감독의 길을 걷게 됐다.

미나리는 가족 이야기라는 정이삭 감독이 골든 글로브 수상 소감으로 “함께 한 제 딸이 제작 이유”라며 딸을 품에 안고 있다. 동아일보 DB

●교육 사다리 걷어찬 조국 사태
영화는 한국의 현실과 오버랩 된다. 데이빗이 한국에서 자랐다면 어땠을까. 부모가 고생한 미국에서의 삶과 달라진 게 무엇일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데이빗이 명문대에 들어가기는 쉽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먼저 데이빗은 서울 대치동 학원을 다니기 어려운 살림 형편이고, 머리가 좋았다 하더라도 이런 저런 스펙을 쌓아야 하는 인맥과 돈도 없었다. 한국의 치열한 입시에서 살아남기가 어려운 상황에 있다. 누군가 데이빗의 자리를 대신 차지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제이콥은 아들 데이빗이 의사가 되는 것을 꿈꾸었던 것 같다. 여느 한국 부모처럼 아메리칸 드림의 화룡점정(畵龍點睛)을 찍는 직업이다.

영화 속 데이빗을 보면서 지난 해 한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한 ‘조국 사태’가 생각났다. 딸을 의사로 만들기 위해 기울인 부부의 정성이 지나쳐 입시 경쟁에서 법의 경계선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넘나들었다. 공정과 정의가 실종된 사회에 많은 사람들이 분노하고 있지만 아직도 부부는 정치의 희생양인 양 억울하다고 한다. 예일대 합격증을 아무에게나 주지 않는 곳이 미국이다. 미국 대학 입시에선 잘난 부모 덕을 보는 레거시 전형(부모가 해당 대학 졸업자인 경우 입학 때 혜택을 주는 제도)이 있지만 총장상을 위조하거나 논문을 거짓으로 내진 않는다.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는, 결국 손해를 보게 하는 사회적 합의가 분명하게 확립돼 있기 때문이다. 예일대 입학사정관은 데이빗을 왜 뽑아야 하는지 설명할 수 있었을 것이다.

데이빗을 이렇게 키우기까지 이민 간 병아리 감별사 아버지와 어머니의 고통과 헌신이 있었기에 성공 스토리를 쓸 수 있었다. 사진 제공 판씨네마
●빼앗긴 데이빗의 자리
의사를 꿈꾸던 데이빗은 대학에서 인생의 진로를 바꿔 영화감독이 됐다. 가난한 무명 감독으로 초야에 묻힐 뻔 하다가 영화 미나리로 모습을 드러냈다. 부모가 꾸며낸 거짓 표창장과 유령저자 논문으로 대학에 부정 입학한 한 학생은 성년이 돼 병원인턴을 하면서 의사의 길을 걷고 있다. 누가 성공한 삶인지는 예단할 수 없다.

하지만 누군가는 단호하게 얘기해야 한다. 교육의 사다리를 걷어차선 안 된다고. 데이빗의 자리를 누군가 뺏는 일이 벌어져선 안 된다고.

최영해기자 yhchoi6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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