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오늘도 당신 참 열심히 살았네요”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2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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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지나간 세계/아사다 지로 지음·이선희 옮김/432쪽·1만6000원·부키

대기업 계열사 임원까지 지낸 65세의 다케와키 마사카즈. 정년퇴직 송별회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던 그가 지하철에서 뇌출혈로 쓰러지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의식을 잃은 채 집중치료실에 사흘간 누워 있던 그는 별안간 포근함을 느끼며 깨어난다. 다케와키를 찾아온 사람은 ‘마담 네즈’라는 정체불명의 여인. 그녀의 손에 이끌려 병원을 나온 다케와키는 기이하고도 아름다운 세계로 여행을 떠난다.

다케와키는 어느새 일본 도쿄(東京) 신주쿠 고층빌딩 안 고급 레스토랑에 와 있다. 취향에 꼭 맞는 음식을 먹으며 그는 자신의 월급쟁이 인생을 반추한다. 1951년 태어나 고도 경제성장기에 자랐고 입사 후에는 꿈이나 취미를 생각할 여유도 없이 일만 했다. 밤에는 녹초가 돼 지쳐 기절한 듯 잠들고, 아침에는 벌떡 일어나 직장으로 향한 지 44년. 그런데 직장에서의 정년퇴직이 ‘인생 정년퇴직’이라니. 아직은 죽을 수 없다고 생각한 순간, 마담 네즈는 “당신은 참 열심히 살았어요”라며 위로한다.

이후로도 여행은 끊임없이 이어진다. 그는 죽마고우를 만나거나, 젊어진 육체를 얻어 한여름 바닷가에 가기도 한다. 그러면서 부모에게 버려져 아동보호시설에서 자란 어린 시절을 떠올린다. 아들의 죽음을 놓고 아내와 서로를 탓하며 타인보다 못한 타인으로 지낸 때를 기억하고는 자신을 꾸짖는다.

주인공은 우리 곁의 누군가, 혹은 나 자신이다. 직장에서, 출퇴근길 지하철에서, 집으로 가는 골목 어귀에서 부대끼는 사람들 모두가 저마다의 고통과 상처를 감내하고 있다. 저자는 인터뷰에서 “주인공은 위대한 사람이다. 자기반성을 할 줄 아는 사람이야말로 위대한 사람 아닌가”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타인을 좀 더 관대한 시선으로 바라볼 것을 제안한다. 관대함이야말로 다케와키가 불행의 터널을 지나 ‘평범한 사람’이 되는 꿈을 이룬 것처럼, 우리에게 닥친 이 겨울을 버텨낼 수 있다는 용기를 불어넣는다.

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중년#정년퇴직#책의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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