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진한 지방질의 행복감… 잘 손질된 곱창의 맛 [석창인 박사의 오늘 뭐 먹지?]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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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소곱창구이’의 양, 곱창 모둠구이. 석창인 씨 제공
‘황소곱창구이’의 양, 곱창 모둠구이. 석창인 씨 제공
석창인 석치과 원장·일명 밥집헌터
석창인 석치과 원장·일명 밥집헌터
‘곱창전골’이라는 록밴드가 있습니다. 20여 년 전 여행을 왔다가 우리의 곱창전골 맛에 놀라고, 신중현과 산울림 음악에 홀딱 빠져 그대로 눌러앉은 일본 친구들이죠.

곱창요리는 세계 어디에서나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일본 후쿠오카에서는 ‘모쓰나베’라는 곱창전골 음식이 명물이라고 합니다. 오사카와 도쿄 등지에는 ‘호루몬야키’, 즉 소의 내장인 양, 곱창구이가 인기라는군요. ‘호루몬’이라는 말은 오사카 쪽 사투리로 ‘버리는 것’이라는데 소나 돼지를 도축한 뒤 나오는 허드레 부위 혹은 부속물이란 말이겠지요. 일본은 7세기 무렵 덴무(天武) 일왕이 도축금지령을 내린 이래 약 1200년 동안 공개적으로 고기를 먹지 못했습니다. 이를 감안하면 일본의 곱창요리는 일제강점기 전후에 건너간 우리의 식문화가 아닐까 추론해봅니다.

2년 전쯤 한 여성 그룹 멤버로 인해 곱창이 화제가 됐던 일이 떠오릅니다. 개꼬리가 개를 흔들 수 없듯 고기보다 부속물을 얻기 위해 소와 돼지를 도축할 수는 없는 법인데 인기 연예인의 ‘곱창 먹방’은 파장이 대단했습니다.

곱창 수요가 급증해 공급이 부족해지자 1인당 1인분만 주문이 가능하다거나 다른 부위를 끼워 파는 경우도 생겼지요. 곱창 가격 역시 폭등했습니다. 비싼 한우 곱창이 귀해지자 자연스럽게 수입이 대폭 늘었겠지요. 하지만 전력도 여름과 겨울이 피크이듯이 육류도 계절에 따라 소비량이 다릅니다. 소의 부속물이 부족한 시기를 조금만 참으면 곧 넉넉히 도축하는 때가 오는데 이를 참지 못하고 대량 수입을 하는 바람에 육류 냉동고에 곱창이 쌓이기 시작한 것이지요. 결과는 폭등 이전 가격의 반 토막으로 나타났습니다.

곱창은 대체 무슨 맛으로 먹을까요? 저는 씹는 맛에 더하여 녹진한 지방질이 주는 행복감 때문에 좋아합니다만 각종 성인병을 인민군 훈장처럼 주렁주렁 달고 살기에 자주 즐기지는 못합니다. 최근 어느 기사를 보니 잘 불안해하고 예민한 성격일수록 콜레스테롤 함량이 높은 곱창 같은 음식을 좋아한다고 하더군요. 스트레스를 받을수록 지방 함량이 높거나 매운 음식을 찾는 것을 감정적 섭식이라고 하네요. 일부 전문가는 곱창 대신 건강에 좋은 통곡물이나 견과류를 먹는 이성적 섭식을 권합니다. 하지만 고단한 하루를 보낸 사람들에게는 우이독경이 아닐 수 없으며 외려 ‘분노유발 섭식’이 되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곱창구이 식당들 간판을 보면 이상하게도 황소가 들어간 곳은 많고 암소라 쓴 간판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곱창 맛을 비교했을 때 비육(肥育)을 시키지 않은 한우 황소가 제일 좋고 미경산 한우, 즉 새끼를 낳지 않은 암소가 그 뒤를 잇는다는군요. 새끼를 많이 낳은 암소의 곱창은 상품가치가 떨어져 주로 가격이 저렴한 식당에서 취급하거나 전골 용도로 쓰인다고 들었습니다. 곱창 맛의 절반은 신선한 재료이고, 절반은 정성스러운 손질임은 일러 무엇 하겠습니까!

석창인 석치과 원장·일명 밥집헌터 s2118704@naver.com

#지방질#행복감#곱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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