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마지막 순간까지 품위 지키며 떠날 수 있을까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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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죽음이 삶에게 말했다/김범석 지음/264쪽·1만5000원·흐름출판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은, 괜찮은 죽음에 대하여/케이티 버틀러 지음·고주미 옮김/368쪽·1만7000원·메가스터디북스

최근 고령화가 심화되면서 품위 있고 존엄하게 생을 마감하기 위해 ‘웰다잉’을 고민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게티이미지코리아

‘웰 다잉’(well dying)은 죽음을 아름답게 받아들이는 태도다. 웰 다잉을 택한 이들은 갑작스럽게 죽기를 거부한다. 살아온 날을 천천히 정리한 뒤 삶을 마무리한다. 이는 자신을 돌보는 가족을 배려하는 방법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회생 가능성이 없는 환자가 치료 대신 죽음을 받아들이는 존엄사도 웰 다잉의 정신과 맞닿아 있다. 최근 웰 다잉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는 가운데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를 고민한 책 두 권이 출간됐다.

서울대 암병원 종양내과 전문의로 일하는 김범석 교수(44)는 암 환자들의 죽음을 지켜보는 일상과 생각을 담은 에세이를 펴냈다. 그는 4기 암 환자들을 치료하고 있다. 그 앞에서 환자들은 완치가 아니라 생명을 조금이라도 연장하기 위해 항암 치료를 받는다. 예정된 죽음 앞에서 환자들은 분노하고 울부짖는다. 마지막 순간을 뒤로 미루기 위해 발버둥치는 환자들 앞에서 그는 겸허하게 고개를 숙인다.

한 환자는 가난한 농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주경야독 끝에 겨우 대학에 갔다. 열정적으로 일해 외국계 기업 임원이 됐다. 그러나 50대 중반 찾아온 암은 극복하지 못했다. 열심히 살아온 만큼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모든 항암치료를 다 했지만 더 이상 방법이 없다”는 통보에 환자는 분노했다. “나는 이렇게 죽으란 말이냐”고 언성을 높였다. 환자 눈에 살기가 어린다.

현장에서 죽음을 목격한 경험은 존엄사 제도에 대한 고민으로 옮겨간다. 2018년 2월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되면서 사망이 임박한 말기 암 환자는 무의미한 연명 치료를 중단할 수 있게 됐다. 환자가 의식이 없을 경우 가족이 결정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장에선 불법과 합법의 경계가 모호하다. 이 법에 대해 그는 “누가 어떻게 산소 주입을 중단할지에 대해선 고민해주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호흡기를 떼어낸 의사에겐 일말의 부담과 죄책감이 남아 있다는 것. “불법과 합법의 경계는 애매하고 인간의 판단은 인위적”이라고 그는 고백한다.


웰 다잉에 대한 글을 지속적으로 써온 미국 수필가 케이티 버틀러(72·여)는 죽음을 잘 받아들이는 방법을 담은 안내서를 펴냈다. 그는 몸 상태에 따라 준비할 게 다르다고 조언한다. 신문 부고 기사를 눈여겨볼 정도의 상태라면 인생 후반기를 지탱할 좋은 가치관을 만들 때다. 생일 케이크의 촛불을 한 번에 끄는 게 힘들다면 일상을 좀 더 단순화시켜야 한다. 심각한 말기 암 통보를 받았다면 병의 진행 상태에 대해 주치의와 솔직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남은 시간이 며칠밖에 없을 땐 어떻게 해야 할까. 그는 병원을 벗어나 집에서 마지막을 준비하기를 권한다. 사소하지만 임종 때 중요한 것들을 준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간병하는 사람들이 먹을 수 있는 간편한 음식이나 시집, 종교 경전이 있으면 좋다. 자신이 죽기 직전 연명 치료를 할지에 대한 의견이 담긴 서류는 눈에 잘 띄도록 냉장고 문에 붙여 둬야 향후 문제의 소지가 적다. 가족들이 119에 전화해 울부짖지 않도록 미리 당부할 것을 제안한다. 그가 이토록 냉철한 조언을 담은 웰 다잉 준비법을 내놓은 건 삶이 죽음에 내몰리지 않길 바라서다. 그는 “평화롭고 자율적이고 인간적인 죽음의 길은 있다”고 단언한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웰다잉#죽음#고령화#존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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