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스 형! 전셋값이 왜 이래? [손진호의 지금 우리말글]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0월 18일 09시 5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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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구 서울역 인근 아파트 단지 내 공인중개업소의 모습. 송은석기자 silverstone@donga.com
서울 중구 서울역 인근 아파트 단지 내 공인중개업소의 모습. 송은석기자 silverstone@donga.com
서울의 새 아파트 전셋값이 분양가를 웃돌기도 하는 등 집값과 전셋값 오름세는 수그러들 줄 모른다. “피가 마른다”는 실수요자들의 외침이 절절히 와닿는다.

사실 16개월 연속 상승했다느니, 속수무책이라느니 하는 ‘전셋값’은 말의 세계에서도 ‘엄청 올랐다’.

전셋값은 표준국어대사전 발간(1999년) 때 표제어로 오르지 못했다. 왜일까. 전셋값은 말 그대로 ‘전세의 값’이다. 그렇다면 전세(專貰)가 ‘값’을 치르고 사고파는 물건일까? 세(貰)는 ‘삯’이지 ‘값’이 아니다. ‘전세가 싸다’, ‘전세가 올랐다’라고 해야 한다.

근데 뭐, 언중은 전세가격 전셋집 전세방 전세가 못지않게 전셋값을 입에 올린다. 이를 반영해 국어원 웹사전은 전세가와 같은 뜻으로 전셋값을 표제어로 삼았다. 세(貰)도 ‘남의 건물이나 물건 따위를 빌려 쓰고 그 값으로 내는 돈’이라며 ‘삯’을 ‘값’으로 바꾸었다.

가수 나훈아 씨. 사진출처 예아라 예소리 동아일보DB
가수 나훈아 씨. 사진출처 예아라 예소리 동아일보DB
‘집들이’도 전셋값 못지않게 말의 세계에서 몸값을 높여가는 중이다. 손님을 대접하는 일을 ‘손겪이’라고 하는데, 대표적인 손겪이가 바로 집들이다. 혹여 ‘집알이’라는 말을 아시는지? 집알이는 새로 집을 지었거나 이사한 집에 구경 겸 인사로 찾아보는 걸 말한다. 그러니까 집주인이 하는 건 집들이고, 손님이 하는 건 집알이다. 문제는 사람들이 집알이라는 말을 모르다 보니 집들이를 두 경우에 모두 쓰게 된 것이다. 이러다 집알이라는 말이 사라질지도 모를 일이다.

집에 관한 예쁜 우리말이 많다. ‘집가심’과 ‘집치레’, ‘집가축’도 그중 하나다. 새집을 사거나 이사를 가면, 티끌 하나 없이 집 안 청소를 하게 된다. 이때 알맞은 우리말이 집가심이다. 입안을 개운하게 씻어내는 것을 ‘입가심’이라고 하듯, 집가심은 집 안을 깨끗이 씻어내는 청소를 말한다. 이를 두고 ‘입주 청소를 한다’와 같이 말하는 이들도 있지만 아마도 쉽고 고운 우리말인 집가심을 몰라서일 것이다.

한편 ‘집치레’와 ‘집주릅’, ‘집가축’은 말의 세계에서 서러움을 겪고 있다. 집을 보기 좋게 잘 꾸미는 일을 뜻하는 집치레는 외래어 ‘인테리어’에 밀리고 있고, 집 흥정을 붙이는 일을 직업으로 가진 사람을 일컫는 집주릅은 ‘부동산 중개인’에 자리를 내줬다. 그런가 하면 ‘집을 새로 꾸미지는 않고 손볼 곳만 고쳐 정리해 돌보는 걸 뜻하는’ 집가축은 생소해서인지 입말에서 멀어져간다.

또 있다. 드라마 등에서 주인공이 억울한 누명을 쓴 뒤면 어김없이 ‘누군가 집에 들어와서 사람이나 물건을 찾기 위해 뒤지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집뒤짐’이다. 흔히들 ‘가택수색’이라고 하는데, 이 어려운 한자어 대신 집뒤짐을 쓰면 좋을 듯싶다.

그나저나 테스 형! 전셋값이 왜 이래? 집값은 또 왜 이래.

songba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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