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소로는 ‘자연의 은둔자’가 아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9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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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데이비드 소로/로라 대소 월스 지음·김한영 옮김/808쪽·4만8000원·돌베개

“어제 나는 여기 들어와 살기 시작했다.”

1845년 7월 5일 토요일 아침. 헨리 데이비드 소로(1817∼1862)는 새 노트를 꺼내 이렇게 적었다. 글을 쓴 장소는 미국 매사추세츠주 콩코드의 월든 호숫가. 3개월 전 그는 아일랜드계 철도 노동자로부터 4달러 25센트를 주고 이곳의 판잣집을 샀다. 소로는 직접 도끼를 들고 친구들의 도움을 얻어 이 집을 오두막집으로 바꿨다. 쟁기질로 집 옆 땅을 갈아 강낭콩을 심었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땅에게 풀이 아닌 콩으로 말하게 하는 일”이었다. 이 일은 고전이 된 책 ‘월든’을 꽃피웠다.

그러나 월든은 소로가 ‘자연의 은둔자’라는 오해를 일으킨 장본인이기도 했다. 소로는 때때로 염세주의에 찌들고, 세상과 담을 쌓고 지내는 잔소리꾼으로 폄하됐다. 그의 45년 생애 가운데 월든 호숫가에 머문 기간은 2년 2개월 2일에 불과했으며, 실은 이웃이나 친구들과 교류가 잦았다는 사실에 어떤 독자는 배신감을 느낀다. 그런 독자에게 이 책은 “당신이 아는 소로가 전부는 아니다”라며 이야기를 들려준다.

저자는 소로와 그의 친구들이 남긴 일기 편지 저작에 근거해 그의 생애를 추적한다. ‘시대가 바뀔 때마다 각 세대의 방식으로 소로를 되살렸으나, 자신이 찾던 소로를 발견할 수 없어’ 이 책을 썼다면서 말이다. 그 과정에서 저술 ‘시민불복종’과 ‘더 높은 법칙’의 개혁가 소로의 모습이 살아난다.

시민불복종에서 소로는 우리가 내리는 선택이 우리의 환경(정치적 환경과 자연환경)을 만든다고 말한다. 사소한 모든 선택의 총합이 지구라는 저울에 올라가 세계를 만든다는 것. 여기서 소로의 사회적 행동주의와 자연보호 사상은 한 뿌리에서 나온 것임을 가늠할 수 있다.

‘매사추세츠의 노예제’를 강연하던 날, 소로는 미국 헌법을 구둣발로 짓밟고 이렇게 외쳤다. “인간이 천박하다면 아름다운 자연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헨리 데이비드 소로#로라 대소 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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