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각화는 나에게 아무런 말도 해주지 않습니다. 그저 스스로 존재할 뿐입니다. … 마음을 비우고 그저 암각화를 바라봅니다. 한참 보고 있으면 어느 순간 번쩍, 새로운 것이 보입니다.”
최근 출간된 ‘하늘이 감춘 그림, 알타이 암각화’(불광출판사)의 한 대목이다. 저자는 뜻밖에도 학자가 아니라 대한불교조계종 기획실장을 지냈고 현재 백년대계본부 사무총장을 맡고 있는 일감 스님이다.
저자는 2005년 수묵화가이자 암각화 전문가인 김호석 화백의 권유로 경남 고령군 장기리 암각화를 본 뒤 그 인연을 시작했다. 하지만 암각화에 대한 ‘몰래한 사랑’은 종단 내 여러 소임 때문에 쉽게 이뤄지지 못했다. 2016년 다짜고짜 러시아 알타이에 가자는 김 화백의 휴대전화 문자가 날아왔다. 이후 휴가 때마다 러시아와 몽골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등을 10차례 오가며 암각화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이 책은 불교적 관점에서 접근한 암각화 명상록이다. 스님은 선인들이 남긴 태양과 물고기, 사슴 같은 그림뿐 아니라 극도로 절제된 선과 도형 앞에서 ‘시인’이 됐다. 현지에서 탁본을 뜬 암각화 사진과 선시(禪詩), 체험이 담긴 에세이들이 어우러졌다. “암각화는 하늘과 땅 그리고 인간이 일궈낸 화엄(華嚴)만다라입니다. 암각화를 보는 것은 맑고 오래된 거울, 고경(古鏡)을 보는 것과 같습니다.”
스님은 ‘기도하는 밤’이라는 제목을 붙인 암각화를 보면서 “이렇게 철학적인 밤하늘을, 누가 다시 그려 낼 수 있을까”라고 썼다. 15∼21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아라아트센터에서 암각화 탁본 60여 점을 모은 전시회도 열린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