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자본가는 어떻게 노동의 가치를 착취하는가

김갑식 문화전문기자 입력 2020-08-01 03:00수정 2020-08-0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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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의 모든 것/마리아나 마추카토 지음·안진환 옮김/524쪽·2만3000원·민음사
가치, 나아가 부의 원천은 무엇인가. 금융위기를 비롯해 글로벌 경제의 불안감이 커지면서 가치 창출에 대한 오랜 논쟁이 재점화됐다. 민음사 제공
저자 마리아나 마추카토
“야만적인 금광업계 거물들은 금을 탐사하지도 않았고 금을 가공하지도 않았는데, 무슨 희한한 연금술인지 금은 전부 그들의 수중에 들어갔다.”

책의 도입부에 실린, 1929년 미국 최초의 산별노조를 설립한 빅 빌 헤이우드의 말이다. 영국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UCL) 교수이자 ‘혁신 및 공공목적연구소’ 소장인 저자 마리아나 마추카토는 이 말을 인용하며 오늘날에도 비슷한 질문이 불가피하다고 강조한다.

그의 문제의식은 헤이우드의 언급처럼 신체와 정신의 노동을 쏟아붓는 노동자들은 형편없이 적게 벌고, 자본을 소유한 사람들과 시장에서 금을 사고파는 것 말고는 하는 게 없는 사람들이 많은 돈을 버는가 하는 것이다.


책의 원제는 ‘The Value of Everything: Making and Taking in the Global Economy’. 제목처럼 저자는 그 연금술의 비밀을 가치 창조와 가치 착취에서 찾았다. 그렇다고 좌파 경제학의 옛 논리를 답습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21세기에 벌어지고 있는 각종 경제 현상을 중심으로 주류 경제학에 대한 비판적 고찰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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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9장으로 구성된 책의 구성은 논리적이다. 1, 2장은 중상주의와 중농주의, 고전경제학, 마르크스경제학, 신고전파 경제학 등을 섭렵하며 가치이론의 역사와 쟁점을, 3장에서는 국부(國富)로도 불리는 국내총생산(GDP) 시스템의 문제점을 살핀다.

저자에 따르면 가치 창조는 새로운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기 위해 다양한 자원이 동원돼 상호 작용하는 과정이다. 반면 가치 착취는 기존에 존재하는 자원과 산출물을 이리저리 돌림으로써 발생하는 거래를 통해 부당하게 높은 이득을 올리는 것이다. 특히 노동에 따른 가치가 가격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가격이 가치를 결정한다는 논리가 경제학과 사회의 ‘지배 이데올로기’로 자리 잡으면서 가치 창조와 가치 착취를 구별할 수 없게 됐다고 주장한다.

4∼6장은 은행을 비롯한 이른바 ‘금융 거인들’의 가치 착취 논리와 실태에 대한 비판, 7장은 애플과 구글 등으로 상징되는 혁신 경제에서조차 가치 착취가 이뤄지고 있는 현실을 다뤘다. 8장은 저자의 화제작 ‘기업가형 국가’(2013년)의 연장선으로 국가를 비롯한 공공부문의 적극적인 역할을 강조했다.

이 책의 장점은 원론적인 관점을 제시하면서도 가계대출, 사모펀드와 헤지펀드 같은 자산 운용업, 자사주 매입, 특허를 통한 가치 독점 등 세상의 관심사도 키워드로 다뤘다는 것이다. 저자는 여러 차례 “일부를 착취자라고 비난하고, 일부를 창조자라고 찬양하는 것은 핵심이 아니다”라면서 경제학에서 ‘죽어버린’ 가치 논쟁의 부활을 주장하고 있다. 가치 착취가 아닌 공생의 경제생태계를 이끌 수 있는 시발점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어쩌란 말인가. 이미 돌아갈 수 없는 먼 길을 떠난 배의 공허함이 남는다.

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가치의 모든 것#마리아나 마추카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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