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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문화

[첫 마음, 첫 발자국]눈물의 맛

정인숙 2020년 신춘문예 시조 당선자
입력 2020-03-30 03:00업데이트 2020-03-30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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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숙 2020년 신춘문예 시조 당선자
어릴 적 가족들과 해수욕장으로 여행을 간 적이 있다. 파도타기에 신이 나 놀 때는 몰랐지만 해변으로 나오고 나면 바닷물을 엄청 먹은 탓인지 입안은 불쾌한 짠맛으로 매스껍고 머리가 지끈지끈 아팠다. ‘도대체 바닷물은 왜 짤까’라는 궁금증이 생겨 동화책이란 동화책은 다 뒤져본 것 같다. 우리나라 전래동화에는 여러 형태의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바다에 가라앉아 계속 소금을 생산하고 있는 도구도 다양했다. 부채가 나오는가 하면 맷돌과 망(網)이나 방망이도 등장한다. 이런 전래동화가 사실이 아닐지라도 이 동화를 사실이라고 가정하면 욕심의 맛은 지독히 짠맛이 아닐까.

코흘리개 시절 나는 엄마를 졸졸 따라다니며 심심하다고 자주 보챈 것 같다. 그럴 때면 엄마는 어린 내게 굵은 소금 한 알을 입안에 넣어 주셨다. ‘혹시 사탕?’ 기대감에 탐색을 할 겸 혀를 피해 입안에 돌리다 보면 단맛 아닌 짜고 쓴맛에 심통을 내며 뱉어 내곤 했다. 그 짭짤한 맛이 이제는 추억이 됐다. 첫아이를 낳고 엄마가 끓여주신 미역국 맛이 아직껏 기억에 남아 국을 끓일 때는 항시 그 맛을 재연하려 하지만 제대로 내보질 못했다. 감칠맛 내는 조미료에 중독돼 그런 것일까.

산고의 진통 끝에 첫아이를 얻은 기쁨과 신비로움도 잠시, 감당 못할 관문에 부딪힌다. 젖몸살로 아이는 제 입술을 빠는 배냇짓을 하며 칭얼대고, 물젖에 젖은 옷을 갈아입으며 애도 울고 나도 울고 훌쩍거릴 때면 그때마다 엄마가 오셨다. 유독 체구가 작은 엄마는 당신 키를 훌쩍 넘는, 짯짯이 마르고 긴 기장 미역을 꺾어 조심스레 물에 불리셨다. 바싹 마른 어머니 손등 같은 미역이 몸집을 불려 큰 대야에 넘치고 넘쳐 파랗게 살아났다. 어머니의 손등 위로 눈웃음이 떨어졌다….

첫 미역국은 울음을 걷어내며 들이켰다. 젖이 제대로 돌자 꿀떡꿀떡 젖을 넘기는 아이, 그 모습을 보며 울컥울컥 들이켜던 미역국 한 사발. 어느 유명 요리사는 최고의 요리는 적절한 염도라 했다. 짭조름한 눈물의 맛이 그중에 최고라는 과학적인 연구도 있다 한다. 배움이 짧으신 엄마는 그 과학적인 결과를 어찌 아시고 기쁨의 눈물로 내 미역국에 간을 맞추신 것일까. 꿀컥 그리움을 삼킨다. 순간 그 맛의 비밀이 풀렸다. 딸아 기대해∼.
 
정인숙 2020년 신춘문예 시조 당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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