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효음 잠재울 두 개의 심장이 뛴다

류청희 자동차 칼럼니스트 입력 2020-02-21 03:00수정 2020-02-2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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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청희의 젠틀맨 드라이버]
럭셔리카에 부는 하이브리드 바람
페라리 SF90 스트라달레의 전동화 구동계 시스템.
류청희 자동차 칼럼니스트
자율주행 기술과 함께 요즘 자동차에 관한 주제로 가장 주목받는 것 중 하나는 전동화다. 국내에서도 지난해 전기차를 포함한 친환경차 판매량이 10만 대를 넘어섰다. 자동차 전동화의 대표적 예인 전기차로 좁혀 보더라도 전동화 흐름이 뚜렷해지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지난해 전 세계 시장 규모는 200만 대를 넘어섰고 2025년이 되면 1000만 대 이상으로 급증하리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세계적으로 자동차 판매가 줄고 있는 상황에서 전기차가 전체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가파르게 커지고 있는 셈이다.

사실 적잖은 수의 소비자가 전동화를 경제성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지만 자동차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줄일 수 있다는 의미도 크다. 세계 각국 정부가 법규를 통해 내연기관 차를 억제하고 전동화 차를 장려하는 주된 이유도 거기에 있다. 영국과 프랑스 등 유럽 주요 국가들은 앞으로 15∼20년 뒤에는 일반 내연기관 차의 판매를 금지할 예정이다. 이처럼 내연기관 차의 생산과 판매를 금지하려는 흐름은 세계 여러 나라로 퍼져 나가고 있다.

환경에 미치는 영향으로 초점이 옮겨가면서 조금은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던 럭셔리 카 브랜드들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경제성 관점에서 본다면 그리 민감하지 않아도 괜찮았지만 환경 중심으로 바뀌는 법규는 경제성과 관계없이 내연기관 차 판매 자체를 어렵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전동화를 대하는 입장은 갈라진다. 전동화를 적극 추진하는 브랜드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곳도 있다. 전반적으로는 전동화를 피할 수 없는 흐름으로 받아들이는 듯하다.
페라리는 오랜 전동화 경험을 바탕으로 첫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슈퍼카인 SF
90 스트라달레를 내놓았다.

럭셔리 브랜드 중에서도 스포츠카에 집중하고 있는 곳들은 전동화를 진지하게 고려하거나 제품에 적극 반영하고 있다. 페라리는 이미 2013년부터 한정생산한 라페라리로 하이브리드 슈퍼카의 양산을 시작했다. 페라리가 하이브리드 기술을 연구하기 시작한 시기는 그보다 훨씬 더 이르다. 그 계기가 된 것은 모터스포츠 즉 페라리가 오랫동안 참여해 온 포뮬러원(F1) 자동차 경주였다. 라페라리의 하이브리드 기술은 2009년부터 F1 경주차에 쓰이고 있는 커스(KERS) 시스템에 뿌리를 두고 있다.

라페라리에 쓰인 하이브리드 시스템은 V12 6.3L 800마력 가솔린 엔진에 163마력 전기 모터와 커스 시스템을 결합한 것이다. 이를 통해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는 불과 2.4초, 시속 300km까지는 15초 만에 가속할 수 있는 놀라운 성능을 낸다. 이처럼 놀라운 성능에도 이산화탄소 배출량과 연료소비량은 같은 엔진을 쓴 다른 페라리보다 적다.


지난해 국내 판매를 시작한 페라리의 최신 모델인 SF90 스트라달레 역시 하이브리드 스포츠카다. 이 차에는 라페라리에 쓰인 것보다 한 단계 더 발전한 기술이 쓰인다. 외부 전원을 연결해 배터리를 충전할 수 있는 장치를 더해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차(PHEV)가 된 것이다. 페라리의 첫 양산 PHEV인 SF90 스트라달레에는 7.9kWh 용량의 리튬이온 배터리가 설치되어 배터리를 완전히 충전한 상태에서는 최대 25km 거리를 전기 에너지만으로 달릴 수 있다. 전기 모터도 세 개가 달려 더 다양한 조건에서 전기 에너지를 활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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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보르기니도 2017년에 콘셉트카 테르조 밀레니오를 통해 전기차 기술을 연구하고 있음을 알린 데 이어 지난해부터 시안이라는 이름의 하이브리드 슈퍼카를 만들기 시작했다. 63대 한정생산되는 이 차의 동력계는 V12 6.5L 785마력 엔진에 34마력 전기 모터를 더한 것으로, 전기 모터의 성능과 개입 정도가 비교적 작은 ‘마일드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쓴다. 대신 테르조 밀레니오에서 미리 선보인 슈퍼커패시터 기술을 적용해 본격적인 전동화를 단계적으로 준비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맥라렌은 2013년부터 375대 한정 생산한 P1을 통해 PHEV 기술을 구현한 바 있다.

스포츠카와 같은 고성능 차의 전동화는 에너지 효율을 높인다는 측면 이외에도 다양한 장점이 있다. 배출가스와 연료소비를 줄일 수 있다는 점과 주택가를 비롯한 도심에서 요란한 배기음으로 주변을 시끄럽게 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전기 모터가 스포츠카의 성능은 물론 운전의 즐거움을 높이는 데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언제든 최대토크를 낼 수 있는 전기 모터 특성 덕분에 가속 성능이 좋아지는 것은 물론 차의 움직임도 더 민첩하고 정확하게 만들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상대적으로 느긋하게 흐름을 지켜보고 있던 브랜드들도 전동화에 동참하고 있다. 특히 전기차를 긍정적으로 보는 럭셔리 브랜드들도 많다. 전기차의 기술적 특성이 럭셔리 카와 잘 어울릴 수 있어서다. 내연기관 차에 비해 동력계에서 비롯되는 진동과 소음이 훨씬 더 작은 만큼 쾌적하고 편안한 승차감을 얻기에는 전기차가 더 수월하다.

다만 럭셔리 브랜드는 대부분 생산량이 많지 않기 때문에 완전히 새로운 동력계 기술로 전환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기술인 만큼, 전기 동력계를 사용한 차에서도 전통적인 브랜드의 개성과 장점을 고스란히 구현할 방법을 찾는 데 시간이 걸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인프라를 비롯한 충전 편의성도 고려할 부분이어서 여력이 있는 브랜드들은 단계적으로 전동화를 추진하고 있다. 예를 들어 벤틀리가 지난해부터 미국과 유럽 등 세계 일부 시장에서 사전예약 판매를 시작한 벤테이가 하이브리드 같은 중간 단계를 거치는 것이다. 벤테이가 하이브리드는 외부 전원으로 충전할 수 있는 PHEV로, 배터리에 충전한 전기만으로 달릴 수 있는 최대 거리가 50km에 이른다. 이 차에 쓰인 기술은 앞으로 나올 다른 벤틀리에도 응용되어 올라갈 예정이다.

그렇다면 언제쯤 럭셔리 카에서 전기 모터가 엔진을 완전히 대체할 수 있을까? 롤스로이스는 ‘법적으로 허용하는 한, 최대한 오래 12기통 엔진 차를 내놓을 것’이라고 한다. 자동차를 둘러싼 환경 변화를 피할 수 없는 만큼, 전동화를 준비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토르스텐 뮐러외트뵈슈 롤스로이스 모터 카즈 최고경영자(CEO) 역시 정확한 시기를 제시하지는 않았지만 적절한 시기가 되면 전기차를 내놓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의 말에서도 알 수 있듯 시기가 정해지지 않았을 뿐 배출가스를 전혀 내놓지 않는 럭셔리 브랜드 차들의 시대는 반드시 올 것이다.
#스타일매거진#패션#류청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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