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문예 2020]문학평론 ‘검은 돌의 문장들-임솔아론’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월 1일 03시 00분


코멘트
읽고, 글 쓰며 살고 싶은 마음 하나로…

● 당선소감


홍성희 씨
홍성희 씨
글을 쓰며 살고 싶었습니다. 제게 언어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데 언어가, 언어를 갑옷처럼 입고 삐져나오는 것들이 온통 두렵고 버거워서, 글을 쓰며 살고 싶다는 마음 하나 붙잡고 여러 날 말없이 지냈습니다. 어둡고 차가운 물, 숨을 곳 없이 놓인 몸을 견디며 한참을 지내다 뻐끔, 숨을 쉬면, 작게 떠오르는 공기방울을 목소리로 들어주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제 모든 것의 이유인 우리 가족, 지독한 시간을 지켜봐 주시는 정과리 선생님, 말의 따뜻함을 알려주시는 여러 선생님들, 각자의 마음을 여미며 함께 걷는 친구들, 서로의 체온을 지켜주며 살아갈 너, 그리고 제 부족한 글을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께 마음을 다해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무엇을 해내겠다는 약속 없이, 제 언어에 대한 낙관 없이, 다만 읽고 끝끝내 쓰는 일을 계속해보고 싶습니다. 그럴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제가 적은 글자들이 한 볕에 앉아 다른 이들의 작은 목소리들을 기다릴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1988년 서울 출생 △연세대 영어영문학과 졸업, 동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박사 수료


▼말의 폭력에 대항하는 ‘가능성’ 찾아내▼

● 심사평


신수정 씨(오른쪽)와 강지희 씨.
신수정 씨(오른쪽)와 강지희 씨.
투고된 평론들을 통해 많은 연구자들이 최근 한국 문학의 변화에 대해 기민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전반적으로 글의 밀도도 지난해보다 높았으며, 글의 대상으로 선정한 작가들만 보아도 동시대 문학을 향한 응전의 열기를 확인할 수 있어 고무적인 심사 자리였다.

최종 논의 대상으로 삼은 것은 네 작품이다. 그중 유일하게 소설을 다룬 ‘마음이라는 지진계―최은영의 ‘내게 무해한 사람들’’은 최은영의 소설 속 빛의 원리와 진동을 설명해내기 위해 고심한 흔적들과 마지막 장에서 던지는 질문이 눈에 띄었다. 하지만 아직 승화된 자신만의 비평적 언어가 잘 느껴지지 않았다.

‘난 가끔 눈물을 흘린다―박소란론’은 아픔과 허기라는 키워드를 통해 박소란의 시적 세계의 변화를 단정하게 정리해내고 있었으나, 그렇게 도출해낸 변화에 대한 설명들이 다소 소박하고 단편적이었다. ‘우리를 허무는 우리의 구름―김이듬론’은 적극적으로 여성주의를 경유하는 독해 속에서 성별 이분법을 넘어서는 해체적 시도를 읽어내고, 소수적인 문학에 불가피하게 내재된 언어라는 도구의 한계까지도 적절히 짚어주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검은 돌의 문장들―임솔아론’은 임솔아의 시에서 평면을 부수는 깊이 있는 언어들이 발생하는 방식을 섬세하게 읽어내며, 말의 폭력에 대항하는 최선의 자세와 가능성을 찾아내고 있다. 깊은 절망과 불안이 넘쳐흐르는 세계 가운데서 텍스트를 단순화하지 않고 세계와 접속시키면서, 자신만의 발화를 아름답고 활력적인 방식으로 제시하는 이 평론 앞에서 심사위원들은 기쁜 마음으로 의견을 모을 수 있었다. 당선을 축하드린다. 앞으로도 도전적이며 혁신적인 비평적 시도로 오래 함께 걸어갈 수 있는 동료가 되어주시기를 부탁드린다.

신수정 명지대 문예창작과 교수·강지희 문학평론가
#동아일보#신춘문예#2020#문학평론#검은 돌의 문장들 임솔아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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