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진, 악으로 깡으로 버틴 10년…‘황후의 품격’

  • 뉴시스
  • 입력 2019년 2월 27일 09시 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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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진(40)은 ‘악으로 깡으로’ 10년을 버텼다. 2010년 SBS TV ‘괜찮아, 아빠 딸’을 통해 연기자로 첫 발을 내딛었다. 1997년 그룹 ‘베이비복스’로 데뷔해 가수로 활동한 기간까지 합치면 경력 20년이 넘는 베테랑이다.

30대가 돼서 연기자로 전향하는 게 쉽지는 않았다. 그래도 그때는 감수성이 풍부하고 의욕도 넘쳤는데, 나이가 들수록 눈치 볼게 많다.

“이제 ‘어지간히 알아서 할까’라고 생각하는데 아직도 카메라 앵글을 찾느라 정신이 없다”면서 “가수 활동 시절 짬밥까지 쳐주니 더 무섭다. ‘10년차 연기자’라는 무게감도 너무 커졌다”고 털어놓았다.
이렇게 앓는 소리를 해도 이희진은 항상 제 몫을 소화했다. 최근 종방한 SBS TV ‘황후의 품격’에서는 ‘태후’(신은경)의 딸이자 황제 ‘이혁’(신성록)의 누나 ‘소진 공주’로 활약했다. 자칫 비호감으로 보일 수 있는 캐릭터를 강약 조절하며 맛깔나게 표현했다. ‘이렇게 연기를 잘했어?’라고 놀랄 정도였다.

주동민 PD에게서 ‘소진공주는 약간 개그 코드와 푼수기가 있다’며 ‘연극하는 것처럼 표현해달라’는 주문을 받았다. 전체 리딩 때 바로 합격점을 받았다. 주 PD와 김순옥 작가는 ‘하고 싶은대로 하라’며 믿음을 드러냈다. “감독님과 작가님이 ‘템포감만 더 빨리 해달라’고 해서 그게 정답이라고 생각했다”면서 “대사가 워낙 세 악센트를 주면서 무한 반복하니까 음율이 생기더라. 그런 호흡을 따라가다 보니 핏대가 설 정도로 에너지를 방출했다”며 웃었다.

극본을 볼 때 느낌표, 말줄임표 하나 허투루 넘기지 않았다. “대사 옆에 ‘눈물 뚝’이라고 적혀 있으면, 바로 눈물이 나와야 직성이 풀렸다”며 “이제 나이가 들어서 눈물이 잘 안 나온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이희진은 소진공주를 연기하며 몸무게가 3㎏나 빠졌다. 원체 말랐는데, 살이 계속 빠져 ‘거식증에 걸린 것 같다’는 말을 들을 때는 속상하기도 했다. 한 신을 찍고 나면 “배가 너무 고팠다”며 각설탕, 요구르트 등으로 당을 충전했다고 귀띔했다. 그래도 “웃음 코드가 많아서 대사를 노래하듯이 하다 보니 재미 있었다”며 “찍을 때는 살짝 창피하고 민망할지언정 연기하는 재미에 푹 빠져 살았다”고 돌아봤다.

소진공주는 공주로 태어나 누구한테나 막 대하는 ‘갑질 대마왕’에 성질부리기 대가다. 가진 것은 많지만, 자존감은 바닥이다. 애정결핍을 성형수술, 쇼핑, 술로 달래곤 했다. 이희진은 내면에 있는 또 다른 자아를 끄집어내 연기했다. 바로 베이비복스 때부터 힘들면 나오는 ‘희자’다. 소진공주를 연기하면서 외로웠던 감정이 올라왔는지 울컥하며 눈물을 글썽였다.

“내가 소심하고 눈치를 많이 본다. 트리플 A형이라서 남에게 민폐 끼치고, 뭔가 문제 생겼을 때 빨리 해결하지 못하면 미치는 성격이다. 이런 점을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일부로 걸걸하게 오버해서 행동한다. 이 모습이 소진공주더라. 베이비복스 활동 때도 너무 피곤하면 정신 놓고 혼잣말하거나 머리에 꽃 달고 놀았다. 그때 별명이 희자다. (심)은진이와 (김)이지 언니가 ‘왜 연기 안 하고 희자의 모습이 나오느냐’고 하더라. 외로움을 많이 타지만 남들에게 안 들키려고 했던 부분이 소진에게 많이 보였다.”
누구보다 이희진은 엄마 역으로 나온 신은경(46)에게서 큰 위로를 받았다. 자신이 민망하지 않게끔 “리액션을 더 크게 해줬다”며 고마워했다. ‘왕식이 갖게 해달라’고 울부짖는 장면에서 눈물이 막혔을 때 신은경은 ‘왜 울려고 해. 충분히 놓아’라며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엄마는 준비돼 있어. 그래 해, 충분히 할 수 있어’라는 믿음이 눈빛으로 느껴졌다”고 전했다.

“신은경 선배는 천상 배우다. 감정 표현이 무궁무진하고, ‘이런 아이디어가 어디에서 나올까?’싶다.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배우들이 연기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준다. 선배가 갖고 있는 연기의 깊이는 누구도 따라갈 사람이 없다.”

천우빈 역의 최진혁과 로맨스도 재미를 더했다. 소진공주는 황실에 들어온 경호원 우빈에게 홀딱 반했다. 그런데 일곱 살이나 어린 최진혁(33)과 러브라인이 너무도 어색했다고 한다. 연기 데뷔작인 ‘괜찮아, 아빠 딸’에 함께 출연한 인연이 있는데 의외였다.

“그때는 성숙한 역을 맡았는데, 나이 들어서 빨주노초파남보가 들어간 화려한 옷을 입고 소리 지르는 연기를 하니 민망하더라. 진혁이가 ‘누나 호흡이 정말 좋아졌다’면서 격려해주는데, 일부러 민망해하지 말라고 위로해주는 느낌이 들었다”면서 “진혁이와 꽁냥꽁냥하는 신을 찍을 때마다 ‘너희 팬들에게 너무 미안하다’, ‘누나가 조금만 젊었으면 얼마나 좋았겠느냐’고 했다”며 부끄러워했다.

남자로 느껴진 적은 한 번도 없을까. “오히려 ‘괜찮아, 아빠 딸’때 진혁이가 더 성숙하고 멋있어 보였다. 첫 드라마여서 아무것도 모를 때였는데, 진혁이가 연기 관련해서 이것저것 조언을 많이 해줬다. 나를 많이 끌어줬다”며 고마워했다.
‘황후의 품격’은 마지막 52회가 시청률 16.5%(닐슨코리아 전국 기준)를 기록하며 인기몰이했다. 하지만 첫 회부터 종방까지 ‘막장’이라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중후반부로 갈수록 극 전개가 엉성해져 시청자들의 몰입도를 떨어트렸다. 사람이 시멘트에 뒤덮여 생매장 당할뻔 하고 동물을 학대하거나, 위험한 수위를 넘나드는 애정신, 조현병 환자 비하, 임신부 성폭행 묘사 장면 등이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이희진은 “생각하기 나름”이라며 “극한 상황을 말도 안 되게 표현하지만, 캐릭터의 성격과 스토리가 적절하게 버무려져 있다”고 강조했다. “김순옥 작가는 사람들이 예상하지 못한 타이밍에 새로운 요소를 훅 집어넣는다. 이걸 공감 못하면 막장이라고 하는 것 같다”며 “다른 드라마에서 안 나오는 신이 많았는데, 작가님의 색깔 아니냐. 작가님은 ‘그래 나 막장인데 너네 보잖아, 그래서 스토리가 딴 데로 빠져서 망했니?’라는 마음인 것 같다. 정형화된 드라마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움에 놀랐고 재미있었다”는 어떤 해명을 내놓았다.

전작 ‘품위있는 그녀의’(2017)의 백미경 작가와 비교에는 “두 분 다 굉장히 솔직하고 여장부 스타일이다. 흐지부지 넘어가지 않고 원하는 걸 정확하게 전달한다”며 “쪽대본을 준 적이 한 번도 없다. 누구보다 작품 전개가 구체적이고, 머릿속에 확실히 가지고 있다”고 답했다.
이희진은 매년 한 작품씩 쉬지 않고 활동을 했다. ‘최고의 사랑’(2011), ‘마의’(2012~2013), ‘특수사건 전담반 TEN’(2013), ‘황금무지개’(2013~2014), ‘닥터 프로스트’(2014~2015) 등에서 연기력을 쌓았다. 특히 ‘품위있는 그녀’는 터닝 포인트가 됐다. 당시 강남 자부심이 깊은 파워 블로거 ‘김효주’ 역을 맡아 열연했다. 아이 둘 엄마에 연하남과 불륜을 저지르는, 쉽지 않은 캐릭터였다. 그렇다면 ‘황후의 품격’은 어떤 작품으로 남아 있을까.

“정신 놓고 발악하다가 웃고, 귀여운 척 하면서 누군가와 사랑하고 쑥스러워 해보고 구박도 당하고 모든 감정을 복합적으로 다 표현했다. 조연으로서 감칠맛 나는 연기를 하기에 최고였다. 마흔살이면 아줌마, 생활 연기할 때인데 이렇게 다할 수 있는 캐릭터가 없지 않느냐.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 연기 욕심이 많냐고? 이제 가정을 꾸리고 싶다. 극중 딸로 나온 (오)아린이의 어머니가 나보다 어리더라. 확 와닿았다. 항상 남편과 아이가 ‘왜 잠만 자냐’면서 ‘밥 달라’고 하는 모습을 상상한다. 오늘도 이 상상을 하면서 집으로 갈 것 같다. (웃음)”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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