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이 살벌하다고요? 한국사회서 영감 받았죠”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6월 20일 03시 00분


세계적 재즈 고등교육 프로그램 ‘포커스이어’ 한국인 최초 합격
재즈 보컬 겸 작곡가 전송이

서울 마포구에서 18일 만난 재즈 보컬 겸 작곡가 전송이. 그는 “파도가 치고 바다가 갈라지듯 극적인 음악을 좋아한다. 언젠가는 각 지역의 아리랑만 모아 재즈로 재해석한 앨범을 꼭 내고 싶다”고 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서울 마포구에서 18일 만난 재즈 보컬 겸 작곡가 전송이. 그는 “파도가 치고 바다가 갈라지듯 극적인 음악을 좋아한다. 언젠가는 각 지역의 아리랑만 모아 재즈로 재해석한 앨범을 꼭 내고 싶다”고 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불안한 5박자로 반복되는 피아노의 상승 선율은 끝없이 갈마드는 수백만의 성난 물음표 같다. 처연한 단조 멜로디를 오가던 보컬은 끝내 귀곡성으로 화한다.

재즈 음악계에 괴물이 나타났다. 보컬 겸 작곡가 전송이(34)다. 그가 최근 낸 6분짜리 곡 ‘November Anger’는 촛불집회와 관련한 가장 창의적이며 살벌한 노래다. 후반부, 부서질 듯 비장하게 내려치는 드럼 심벌과 피아노의 불협화음은 무시무시한 심판 장면을 소리로 묘사한다.

미국 뉴욕에서 활동 중인 전송이는 최근 스위스의 세계적인 재즈 고등교육 프로그램 ‘포커스이어’에 한국인 최초로 합격했다. 장래가 밝은 재즈 음악가 7명을 전 세계에서 선발해 집중 교육하는 과정이다. 최근 미국에서 ‘November…’가 담긴 정규 1집 ‘Movement of Lives’를 낸 뒤 귀국한 전송이를 만났다. 강원도 태백에서 태어난 그는 원래 클래식 작곡가 지망생이었다. 그는 “부모님은 전교조 해직 교사였고, 집안이 넉넉한 환경은 아니었다”고 소개했다.

작은 지방 도시에서 단칸방 살이를 하면서도 부모는 전송이로 하여금 다양한 예술 주변을 기웃대게 했다. “피아노 학원에도 다녀보고 사물놀이도 배워봤어요. 중학교 때는 성악도 했죠.” 음악 머리가 보통이 아님을 느낀 부모는 전송이를 무리해서라도 지인이 거주하는 오스트리아에 보내기로 한다. 고2에 학교를 중퇴하고 떠난 만리타향에서 그는 만 17세의 나이에 그라츠 음대 입학시험을 통과한다.

“헬무트 라헨만, 리게티 죄르지의 작품을 들으며 현대음악 작곡에 몰두했죠.” 현지 라디오에서 곡을 발표할 정도로 주목받았지만 이른 나이에 타국에서 마주한 삶의 무게가 컸던 탓인지 우울증을 앓다 학교를 나왔다.

방황의 끝에 결심했다. ‘스트레스 덜 받고 내가 진짜 즐길 수 있는 걸 해보자.’ 어려서부터 노래하는 게 좋았다. 2008년 스위스 바젤 음대에 재즈 보컬 전공자로 다시 입학했다. “마일스 데이비스의 트럼펫 선율을 듣고 채보해 보컬로 바꿔 부르며 훈련했어요.”

방랑이 이어졌다. 학교를 졸업한 뒤 “본토에 가보자”는 생각에 터전을 미국으로 옮겼다. 낮에는 현지인들에게 케이팝 노래를 가르치고 저녁에는 작은 레스토랑에서 노래하며 창작에 몰두했다.

그 가운데 ‘November Anger’도 있었다. “한국의 국정농단 사태를 접하며 화가 났어요. 뉴욕의 한인 촛불집회 무대에 서서 ‘걱정말아요 그대’ ‘상록수’를 부르기도 했죠.” 세월호 희생자 추모곡 ‘Blue Sea’도 음반에 담았다. 한숨처럼 펼쳐지는 전송이의 보컬에 꿈결 같은 에코 효과가 더해진다. “모든 게 느리게 움직일 바닷속 풍경을 상상해 소리로 표현했어요. 그 안에 있을 아이들을 보듬어주고 싶었죠.”

뿌리를 보여주려 마지막 곡으로 ‘Jungsun Arirang’을 넣었다. “함께한 해외 연주자들에게 김영임 씨가 부른 버전을 들려주면서 한국적 장단을 살려달라고 주문했죠.”

전송이는 “‘포커스이어’가 끝나는 내년에는 유럽에서 앨범을 내고 본격적으로 활동해볼 계획”이라고 했다. “계속해서 전위적인 음악을 써 나가는 것이 저의 꿈이에요.”

전송이의 치밀한 악곡과 폭풍 같은 노래는 30일 오후 8시 30분 서울 강남구 ‘클럽 케이 서울’(음료 포함 4만 원)에서 직접 들어볼 수 있다. 1집에 실린 9곡을 모두 연주한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전송이#재즈 음악#november an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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