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두 하나 치열한 삶… ‘지대방 솔직 토크’ 묻어두긴 아깝죠”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3월 26일 03시 00분


코멘트

서울 보문사 주지 지범 스님
40년 선방 체험 ‘선원일기’ 화제



지범 스님에게 선원은 도전과 배움, 낭만을 찾아나선 멋있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다. 그는 “그곳에 간다고 생각하면 보름 전부터 맘이 두근거린다”며 “중노릇은 재밌게 해야지, 힘들다 생각하면 길게 못 간다”라고 했다.
김갑식 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지범 스님에게 선원은 도전과 배움, 낭만을 찾아나선 멋있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다. 그는 “그곳에 간다고 생각하면 보름 전부터 맘이 두근거린다”며 “중노릇은 재밌게 해야지, 힘들다 생각하면 길게 못 간다”라고 했다. 김갑식 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최근 불교계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책이 있다. 40여 년 선원(선방)수행담을 담은 지범 스님(62·서울 동작구 보문사 주지)의 ‘선원일기’(사유수)다. 1979년 출가 뒤 수좌(首座·선원에서 참선 위주로 수행하는 승려)로 살아온 스님의 삶과 함께 수좌들의 세계가 진솔하게 그려졌다. 때아닌 춘설(春雪)이 내린 21일 국사봉 아래 보문사에서 스님을 만났다.

―전국 선원에서 50안거(安居·여름과 겨울철 스님들의 집중 수행기간) 이상을 보냈다. 과거와 요즘 선원의 차이는….

“가장 큰 차이점은 각방을 쓴다는 것 아닐까. 삭발, 목욕일도 과거 보름 간격이었다면 이제는 열흘, 일주일로 짧아졌다.”

선원에는 만만치 않은 수행과 입심으로 분위기를 휘어잡는 이른바 ‘지대방 조실(祖室)’이 있다. 지대방은 물건을 넣고 다니는 자루를 일컫는 우리말 지대에 방(房)이라는 말을 합친 것. 스님들이 행장을 놓아두는 공간을 뜻한다. 지범 스님은 “지대방이 다각실로 바뀌었는데 이전만큼 소통이 없다”라며 “지대방에서 큰스님들에 대한 평은 물론 전국의 소식을 다 듣고, 중노릇도 배웠다”라며 웃었다. 그가 꼽은 대표적 지대방 조실은 명진(전 봉은사 주지) 정묵(통도사 극락암 선덕) 법웅(수덕사 전월사 주석) 현봉 스님(송광사 광원암 감원)이다.

―해제비(解制費)에 얽힌 사연도 흥미롭다.

“해제비는 절집 관행으로 안거에 참여한 스님들에게 지급하는 일종의 거마비다. 신도들이 보낸 공양금과 사찰에서 낸 보시를 합해서 N분의 1로 나눈다. 아무래도 유명 스님이 안거에 들어오거나 절이 크면 해제비가 넉넉하다. 살림이 쉽지 않은 수좌들은 그 돈으로 병원도 가고 생활비로 충당하면서 6개월 정도 살게 된다.”

―인심 좋은 선원….

“통도사 정혜사 백담사 월정사 상원사 정도다. 그런데 스님들이 이곳으로 몰리다 보니 ‘삼진 아웃’ 제도가 생겼다(웃음). 같은 곳에는 두 철까지만 연속으로 갈 수 있는데 나름대로 합리적인 룰인 셈이다.”

―어머니의 당부가 찡하다.

“출가 이후 어머니가 손을 잡으며 ‘꼭 서산 스님 같은 도인이 돼 달라’고 하셨다. 30대 초반 때 더 늦기 전에 생사문제를 해결해 깨닫겠다며 계룡산 대자암 무문관에 올라가는데 산새도, 나도 울고 있더라. 들어가면서 눈썹부터 밀었다. 코피가 나고 엉덩이 진물이 생기고 그러는데 도통 화두는 안 들리더라. 2개월 무렵 이번 생에는 어렵겠다며 유서를 쓰고 하루만 더 살아보자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며칠째 자기보다 큰 먹이를 옮기지 못해 바동거리던 개미가 마침내 턱을 깔딱 넘더라. 미물도 원을 성취하는데 왜 나는 안 되나. 다시 공부를 점검했다.”

―결론은 무엇이었나.

“빨리 깨쳐 큰스님 노릇 하자는 욕심만 있지 중생에 대한 자비심이 없더라. 그래서 중생을 위한 기도를 시작했는데 눈물이 나더라. 20일째 화두가 들리면서 몸이 가벼워졌고,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객승(客僧)이 많은 것으로 유명하다.

“보문사 문은 항상 열려 있다. 한 해 400∼500명 정도다. 부담이 아니라 평생 수행한 그분의 삶이 오시는 것이니 부처님처럼 모셔야 한다.”

―명진 스님에 대한 쓴소리도 있다.

“명진 스님은 열려 있고 장점이 많은 분이다. 그분의 쓴소리대로 종단이 비판받을 구석이 많지만, 좋은 일도 많은데 매번 나쁜 일만 얘기하느냐는 의미였다.”

―앞으로 계획은….

“스님들의 치열한 삶의 얘기가 한낱 지대방 얘기로 끝나는 게 아쉬워 책을 출간했다. 도인이 되기에는 내가 부족한 것 같다. 인연이 있다면 연로한 스님들이 찾는 선원을 개원하는 게 꿈이다.”
 
김갑식 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지범 스님#선원일기#수좌#해제비#보문사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