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촛불혁명 ‘전문 시위꾼’ 아닌 ‘평범한 시민’이 이끌었다”

  • 동아일보

‘탄핵 광장의 안과 밖’ 펴낸 이현우-이지호-서복경 교수

정치학자 이현우, 서복경, 이지호 교수(왼쪽부터)가 펴낸 ‘탄핵 광장의 안과 밖: 촛불민심 경험분석’은 20차례 열린 촛불집회를 실증 연구한 책이다. 이현우 교수는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현상의 본질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팩트’로서 이해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정치학자 이현우, 서복경, 이지호 교수(왼쪽부터)가 펴낸 ‘탄핵 광장의 안과 밖: 촛불민심 경험분석’은 20차례 열린 촛불집회를 실증 연구한 책이다. 이현우 교수는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현상의 본질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팩트’로서 이해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헌정사상 최초로 광장의 촛불이 대통령 탄핵을 이끌어낸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해 11월부터 20차례 열린 촛불집회를 두고 ‘촛불혁명’ ‘명예혁명’과 같은 말이 이어졌다. 하지만 촛불의 주체는 누구였는지, 어떻게 광장을 찾았는지, 왜 촛불을 들었는지 팩트(fact)를 따져본 연구는 아직 없었다. 경험적 자료를 기반으로 광장의 촛불을 최초로 분석한 책 ‘탄핵 광장의 안과 밖: 촛불민심 경험분석’(책담)이 30일 출간된다. 저자는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에서 한국 정치를 연구하는 이현우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이지호 서강대 공공정책대학원 대우교수,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교수다. 이들은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3월까지 집회 참가자 258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 및 현장면접을 실시했다. 광장을 실증적으로 분석한 정치학자 3명을 13일 서울 마포구 서강대에서 만났다.》
 

이현우 교수는 “촛불의 주체는 정권을 반대해 온 ‘전문 시위꾼’이 아닌 헌법을 위반한 대통령 개인의 일탈행위에 분노한 ‘평범한 시민’이었다”고 분석했다. 지난해 12월 26∼29일 조사한 결과, 촛불집회 참가자 중 82.9%가 1, 2회 참석했다고 응답했다. 3회 이상 참가자는 17.1%에 그쳤다. 이 교수는 “반복 참가가 매우 적었는데도 대규모 집회가 열렸다는 건 참가자들의 폭이 넓었음을 의미한다”고 했다.

참가자들이 광장에 머문 시간도 짧았다. 지난해 11월 19일 4차 집회를 분석한 결과 참가자의 53%가 1시간 이내로 집회 장소에 머물렀다. 전체 참가자들의 평균 체류 시간은 80분에 불과했다. 집회가 보통 오후 2시부터 밤 12시까지 10시간가량 진행된 것을 미뤄 봤을 때 대부분의 참가자가 집회 장소에 짧게 머물렀음을 알 수 있다. 이 교수는 “머문 시간이 길지 않았다는 것 또한 정치적 반대를 위한 조직적 동원이 아니었음을 보여준다”고 했다.

이들의 연구에 따르면 대부분의 참가자는 자발적으로 친구, 직장동료, 가족과 함께 광장을 찾았다. 지난해 11월 26일 5차 촛불집회 참가자 2058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응답자의 80%가 ‘뉴스를 접하고 스스로 판단해 참가했다’고 답했다. ‘친구나 직장동료, 가족과 함께 참가했다’고 답한 이가 82%였고, ‘정당·단체·동호회 회원과 함께였다’는 답변은 3%에 그쳤다. 이지호 교수는 “이번 집회는 투쟁보다는 많은 사람들이 역사적 순간을 보고 즐기는 축제 같은 현장이었다”며 “나도 친구들과 함께 집회에 참가한 뒤 맥주를 한잔씩 하곤 했다”고 말했다.

이 책엔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집회와 비교, 분석한 내용도 실렸다. 조사에 따르면 2008년엔 진보-보수 참가율 차이가 3배였던 데 비해 2016년엔 2배에 그쳤다. 특히 중도-보수의 참가율을 비교해보면 2008년 중도 성향의 시민 참가율(10.7%)이 보수(4.9%)의 2배였지만 2016년엔 두 집단 간 참여율 차이가 2%포인트에 불과했다. 표본오차를 감안하면 두 집단 참가율 차이는 거의 없는 셈이다. “‘쇠고기 촛불’은 이명박 정권에 반대하는 반미 성향이 강한 이들의 집회였다면 ‘박근혜 촛불’은 국민적 공감대를 기반으로 이뤄진 시위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이현우 교수)

6월 민주항쟁의 주역이던 386세대, 즉 50대가 ‘박근혜 촛불’의 ‘키 맨(중심인물)’이었다는 분석도 나왔다. 2008년 당시 40대였던 386세대의 집회 참가율은 12.8%였으나 이들이 50대가 된 후 2016년 촛불집회 참가율은 23.4%로 2배 가까이로 증가했다. “386세대는 1987년 6월 항쟁의 격변기를 경험한 이들입니다. 이전 세대에 비해 민주주의와 자유, 인권 등을 중시하는 특징이 있죠. 나이가 들면서 보수화됐지만 민주주의에 대한 정치적 태도는 60대 이상과 뚜렷한 차이를 보입니다.”(이지호 교수)

촛불집회는 국민들의 민주주의나 정치에 대한 인식도 변화시켰다는 게 이들의 평가다. 국정농단 사태 이전인 2016년 6월엔 ‘민주주의는 다른 어떤 제도보다 더 낫다’라는 명제에 응답자의 52.7%가 ‘그렇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최순실 국정농단이 밝혀진 12월엔 ‘민주주의가 더 낫다’는 응답자가 75.5%로 늘었다. 연구자들은 이를 “민주주의에 긍정적인 기여를 하는 ‘정치적 시민’의 발견”이라 평했다.

“‘정치적’이라는 어휘의 의미를 바꾼 사건입니다. 과거엔 당리당략이라는 말과 동의어로 사용됐다면 이젠 민주시민이라면 해야 할 합당한 의무, 역할을 뜻하게 됐죠. 시민이 정치에 관심을 갖는 게 당연해졌고, 정치를 내 삶의 문제와 연결지어 생각하는 계기가 됐습니다.”(서복경 교수)

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촛불집회#대통령 탄핵#탄핵 광장의 안과 밖#이현우#이지호#서복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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