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제복 벗는 국내 1호 프로파일러 “이젠 범죄연구에 전념”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4월 18일 03시 00분


코멘트

권일용 경감 4월말 명예퇴직
“유영철-강호순 잔혹함에 힘들어… 정년 8년 남았지만 물러날 때, 경험 정리해 후배들에게 도움줄 것”

이달 말 명예퇴직하는 권일용 경찰청 범죄행동분석관. 한국 프로파일러 1호인 그는 이상범죄 연구란 ‘자아실현’을 위해 경찰복을 벗기로 했다. 동아일보DB
이달 말 명예퇴직하는 권일용 경찰청 범죄행동분석관. 한국 프로파일러 1호인 그는 이상범죄 연구란 ‘자아실현’을 위해 경찰복을 벗기로 했다. 동아일보DB
국내 1호 범죄행동분석관(프로파일러)인 권일용 경찰청 범죄분석팀장(53·경감)이 30일 경찰복을 벗는다. 악인의 목소리에 귀 기울인 지 17년 만에 명예퇴직을 선택했다. 정년을 8년가량 앞두고서다.

2000년부터 권 경감은 세상을 경악하게 한 범죄자들과 마주했다. 정확한 수를 셀 수 없을 정도다. 연쇄살인범 유영철 정남규 강호순, 토막살인범 오원춘, 초등생 성폭행범 고종석 등이다. 그들의 내면을 끄집어내고 특징을 이해해야 사건의 실마리를 풀고 범죄를 막기 위한 대책을 세울 수 있었다.

17일 동아일보 기자와 만난 권 경감은 “이들을 보면서 인간의 잔혹함이 어디까지인지 짐작 가지 않아 힘들었다”며 “‘피해자가 운이 없어 그런 것 아니냐’고 탓하는 그들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이해해야 했다”고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서 오랜 ‘감정노동’의 무게가 느껴졌다.

경찰은 그만두지만 권 경감은 다른 방식으로 ‘범죄와의 전쟁’을 이어간다. 현재 그는 광운대 범죄학과 박사과정에 있다. 그리고 ‘이상 범죄의 가해자 및 피해자 특성’을 주제로 논문을 준비 중이다. 그는 범죄와 관련해서 현대를 ‘이상 범죄의 시대’로 정의했다. 평범한 이웃의 얼굴을 한 범인에게 선량한 시민이 피해를 입고 곳곳의 폐쇄회로(CC)TV 덕분에 범죄자를 빨리 잡지만 범행 동기를 규명하는 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당장 인천에서 발생한 8세 여아 살해 사건도 정확한 범행 이유는 여전히 미궁에 빠져 있다. 권 경감은 “더 이상 범죄자의 머릿속을 들락날락할 것이 아니라 연구에 집중하면서 지난 경험을 정리하고 싶다”며 “앞으로 후배 프로파일러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1989년 8월 순경으로 경찰 생활을 시작해 1993년 감식요원으로 과학수사 분야에 첫발을 내디뎠다. 2000년 서울지방경찰청 범죄분석팀에서 심리분석을 맡아 1호 영예를 달았다. 살인 사건 같은 죽음을 업으로 삼으며 명예를 얻고 상도 받았다. 권 경감은 “큰 상을 받으며 머릿속에 떠오른 얼굴은 가족이나 동료가 아니라 담당했던 사건의 피해자 가족”이라며 “타인의 불행인 범죄로 좋은 평가를 받은 것이 계속 미안했다”고 말했다. 죽음 앞에서 변치 않는 겸손이 그를 17년간 버티게 한 힘이었다.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권일용#국내 1호 프로파일러#범죄행동분석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