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봄을 기다리는 시인의 살가운 말씨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2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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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앞에 봄이 있다/김종해 지음/120쪽·1만1500원·문학세계사

“저는 이월이요,/라고 서슴지 않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눈바람이 매운 이월이 끝나면,/바로 언덕 너머 꽃피는 봄이 거기 있기 때문이지요.”(‘봄꿈을 꾸며’에서)

입춘이 지났는데 추위는 더 기승을 부린다. 봄이 오기는 오는가. 책은 오랑캐 땅에 핀 풀꽃 같은 서정시 33편을 모은 시집이다.

저자는 등단 54년 동안 700여 편의 시를 발표했고, 한국시인협회장을 지냈다. 평소 시를 잘 읽지 않는다 해도 그의 시는 낯익은 이들이 많을 게다. 낙엽 가득한 등산로 중간에서, 인파 가득한 지하철역 스크린도어에서, 영화 상영을 기다리는 극장 공익광고에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곳곳에서 어렵잖게 그의 시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이여/상처받지 않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추운 겨울 다 지내고/꽃필 차례가 바로 그대 앞에 있다”(‘그대 앞에 봄이 있다’에서)

난해하지 않다. 읽다 보면 언 몸이 발가락 끝부터 간질간질 녹아온다. 소리 내 읽을 때 맛이 더 산다. 기다리고, 절망하고, 상처 입은 이들의 심정을 헤아리고 공감하면서 위안과 안식을 건넨다. 그의 시가 널리 사랑받아온 이유일 게다.

이남호 문학평론가는 “시의 산전수전도 다 겪은 노(老)시인은 이제 높은 뜻을 만들려고 긴장하지 않으며, 멋진 기교의 언어를 구사하려고 애쓰지도 않으며, 새로운 시의 비경을 찾아 헤매지도 않는다. 반백 년의 시력(詩歷)은 시인으로 하여금 일상의 느낌과 생각이 그대로 시가 되게 했다”고 평했다.

“우산 하나로 이 빗속에서 무엇을 가리랴/…/아직 우리에게 사랑이 남아있는 한/한 번도 꺼내 쓰지 않은/하늘 같은 우산 하나/누구에게나 있다”(‘우리들의 우산’에서)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그대 앞에 봄이 있다#김종해#봄꿈을 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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