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저항-실험정신 가득했던 X세대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2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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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립미술관서 ‘X: 1990년대 한국미술’ 2월 19일까지 열려

[1] 이윰 작가가 1995년 개인전에 선보인 ‘레드 디멘션―예술가의 옷’.
[2] 박혜성 작가가 1994년 금호미술관 ‘이런 미술―설거지’전에 출품했던 ‘나는 너의 침대를 사랑한다: 비누 비너스’.
[3] 이형주 작가가 전시실에 재현한 1988년 홍대거리의 ‘일렉트로닉 카페’. 컴퓨터통신 장비를 갖춰 화제를 모았다.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1] 이윰 작가가 1995년 개인전에 선보인 ‘레드 디멘션―예술가의 옷’. [2] 박혜성 작가가 1994년 금호미술관 ‘이런 미술―설거지’전에 출품했던 ‘나는 너의 침대를 사랑한다: 비누 비너스’. [3] 이형주 작가가 전시실에 재현한 1988년 홍대거리의 ‘일렉트로닉 카페’. 컴퓨터통신 장비를 갖춰 화제를 모았다.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흘러간 옛 문화콘텐츠를 내세운 이벤트의 성패 관건은 타이밍이다. 사회의 분위기, 유행하는 문화 상품의 양상에 따라 같은 추억거리에 대한 반응이 ‘신선한 재조명’과 ‘안이한 답습’으로 전혀 다르게 갈릴 수 있다.

 내년 2월 19일까지 서울 중구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는 ‘X: 1990년대 한국 미술’전은 후자에 가깝다. 1990년대 문화현상의 복권을 이끌었던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가 연초에 이미 세 번째 시즌을 마친 뒤다. 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뜨거운 정치적 상황의 키워드는 ‘구습 타파’다. 20여 년 전의 미술계 움직임을 추억과 함께 되짚어 보자는 요량으로 마련한 전시에는 여러모로 불리한 여건이다.

 ‘1990년대’를 표제로 걸었지만 이 전시가 다루는 기간은 민주화항쟁이 일어난 1987년부터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재판이 열린 1996년까지 10년간이다. 이 사이 한국 사회는 서울 올림픽, 군부정권의 종언, 김일성의 사망, 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 붕괴 등의 큰일을 겪었다.

 전시실 중앙에 당시 신문기사 복사본을 진열해 놓았다. 전시 자료라기보다는 복고적 공간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한 보조 장치로 보인다. 유부남 유부녀의 불륜을 다룬 TV 드라마 ‘애인’(1996년)을 그해 국정감사 도마에 올린 국회의원이 “이런 이야기는 페놀보다 심각한 공해라는 것이 정신과 의사들의 지적”이라 일갈했다는 기사는 1990년대가 생각보다 훨씬 더 멀어진 과거임을 확인시킨다.

 전시기획을 맡은 여경환 큐레이터는 “20세기 말 한국 미술계의 특징은 이데올로기로부터 벗어나려 한 움직임에 있다”고 했다. 전시는 이에 따라 특정 지향점을 밝히지 않고 ‘기성 화단과의 단절’ 또는 ‘새로운 형식 탐구’라는 명제를 내걸고 프로젝트별로 모였다 흩어지기를 반복한 신세대 작가들의 소그룹 활동을 복구해 정리했다. 다른 한편에는 서울 강남구 백화점 내 갤러리 전시의 흔적을 나열하고 이불 공성훈 이윰 등 그 시기 등장한 작가들이 선보인 설치, 영상, 퍼포먼스 작업을 재현했다.

 주최 측은 “노스탤지어의 감상에 그치는 단순한 회고전이 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했지만 전시 작품에서 그에 대한 참여 작가의 반박을 읽을 수 있다. 1988년 고무장갑에 석고를 채워 굳힌 조각 ‘손’을 한 사설 갤러리에서 선보였던 강홍구 작가는 이번 전시를 위해 다시 제작한 작품 뒤에 이런 글을 써놓았다.

 “석고로 만든 손은 인간의 욕망에 관한 농담이었는데 시간이 지나 의미는 사라지고 이미지만 남았다. 죽은 작업을 다시 불러내는 전시라는 주술은 무엇을 위한 걸까. 유령이 다시 육체를 얻는 건 환생이고, 육체가 남은 유령은 좀비다. 이 작업은 환생한 좀비쯤 된다. 이 전시도 그러할 것이다. 아닌가?”

 전시실 출구 쪽에는 신촌과 홍대 앞에 들어섰던 ‘락카페’ 공간을 재현했다. 환생한 5개 공간 중 2곳인 ‘발전소’와 ‘곰팡이’를 만든 김형태 씨는 하필 지난달 여직원 성추행 의혹이 불거져 국립박물관문화재단 사장직에서 해임됐다. 추억은 역시 타이밍이다.

손택균기자 sohn@donga.com
#x세대#서울시립미술관#1990년대 한국 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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