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老작가의 담담한 고백 “욕심 버리니 자유가 오더라”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5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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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는 늙지 않는다/현기영 지음/260쪽·1만2000원/다산책방

나이 듦에 대한 수많은 책들이 쏟아진다. 고령화의 영향이겠지만, 노년을 다양한 측면으로 조명한 책들은 다가올 시간에 대해 그만큼 만만찮은 준비가 필요한가 싶은 생각도 들게 한다.

현기영 씨(75)의 에세이는 이런 마음의 부담을 좀 덜어줄 듯싶다. 현 씨는 제주도4·3사건을 소재로 삼은 ‘순이 삼촌’, 조선 말기 제주의 민란을 다룬 ‘변방에 우짖는 새’ 등의 소설로 잘 알려진 작가다. 날 선 역사의식을 소설화해 온 그가 들려주는 노년의 이야기는 뜻밖에도 편안하고 넉넉하다. 그 자신도 이렇게 속내를 털어놓는다. “싸우는 동안 증오의 정서가 필요했고, 증오가 가득한 가슴으로는 ‘사랑’이란 말만 들어도 속이 느끼했는데, 이제 나는 그 사랑이라는 두 글자에 대해서도, 그것을 노래한 사랑의 시에 대해서도 머리를 조아려 사과를 한다.”

나이 들면 ‘꼰대’가 되리라는 편견에 대해 현 씨는 이 에세이를 통해 여유 있게 손을 내젓는다. 그는 “노경에서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이 적지 않은데, 그중 제일 큰 것이 포기하는 즐거움”이라면서 “이전 것들에 너무 아등바등 매달리지 않고 흔쾌히 포기해버리는 것, 욕망의 크기를 대폭 줄이는 것”이라고 적는다. 포기했다는 게 무력해졌다는 걸 의미하진 않는다. 작가는 그 대신 “자유를 얻었다”고 말한다.

이가 흔들리다 빠지고, TV 앞에서 생전 안 흘리던 눈물을 글썽일 만큼 몸에, 마음에 쇠락이 찾아온다. 도둑처럼 슬그머니 찾아온 노년을 맞곤 처음엔 탄식하지만, 작가는 이를 받아들이고 마음에 품기로 한다. 그랬더니 그때껏 보지 못했던 삶과 문학의 다른 면이 보인다. “모든 걸 엔터테인먼트와 쇼로 만들어버리는 이 경박한 시대에 해묵은 엄숙주의만을 고집하다가는 비웃음을 당하기 십상이지 않겠는가”라고 작가는 반문한다. 노년만의 여유를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현 씨의 인식이 궁극적으로 모이는 부분은 ‘작가의 임무란 무엇인가’다. “글 쓰는 자는 어떠한 비극, 어떠한 절망 속에서도 인생은 아름답다고, 인생은 살 만한 가치가 있다고 독자에게 확신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각성이 생겼다.” 무엇보다 그렇게 고백하는 작가의 노년이 아름답게 여겨짐은 물론이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소설가는 늙지 않는다#현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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