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오신날]통도사 주지 영배 스님 “주지 취임후 下心으로 대했더니 모든 게 술술 풀려”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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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도사 주지 영배 스님 인터뷰
“절이 할수있는 최고의 서비스는 공연-음악 통해 치유해주는 것
울창한 소나무숲에 문화공간 조성…장르 안 가리고 다양한 공연 올릴 것
종교는 사회와 하나돼야 유지 가능 자연 속에서 중생의 상처 보듬어야”
일주문을 지나자 오른편에 죽죽 뻗은 아름드리 소나무가 기둥처럼 늘어서 있었다. 우람하면서도 미끈한 나무의 자태에 감탄하며 2km를 걷자 통도사가 눈에 들어왔다.
“소나무 있는 길을 ‘무풍한송로’라고 부르는데 중간에 팔각정 봤어요? 거기 잡목을 베어내고 소나무 사이로 나무 덱을 놓아 문화공간을 만들 생각입니다. 장르들 불문하고 공연을 할 수 있는 자연 무대입니다.”
통도사 주지 영배 스님(사진)은 그 생각만 하면 ‘가슴이 설렌다’고 했다. 사람들이 모여들어 좋은 자연 속에서 즐거워하고 공연과 음악을 통해 치유되는 것. 절이 이 시대에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서비스’ 중 하나라는 것이다. 1300년 전 자장율사가 건립했고 영축총림(叢林)의 본사인 통도사의 전통에서 볼 때 파격적인 구상으로 느껴졌다.
“앞으로 종교는 사회, 문화와 하나가 되지 않으면 더이상 유지하기 어려워요. 제가 1년 가까이 주지로 있는 동안 통도사로 직접 찾아와 출가한 사람이 한 명도 없어요. 그만큼 불교가 사람들과 멀어진 것이지요. 공연장이 불교와 사람들을 다시 잇는 끈이 됐으면 합니다.”
영배 스님은 지난해 5월 말 취임 이후 외치(外治)보다는 내치(內治)에 힘썼다. 그는 ‘하심(下心)’으로 대했다. 우선 300여 명의 스님이 함께 공양할 때 방장(方丈) 스님 옆 자리였던 주지 석을 아래로 한 칸 내렸다. 그 대신 그 자리는 법랍 높은 스님들에게 양보했다.
“주지가 앉으면 주지석이지, 그게 따로 있나요. 허허. 사람을 대할 때 섭섭하지 않게 대접하고 하심으로 대하면 되지요. 그런데 하심이 진짜여야 해요. 그게 가짜면 한 번은 통해도 결국은 더 악화됩니다.”
그는 최근 총선 결과 등 정치 상황에 대해서도 ‘하심’이 부족한 탓이라고 했다.
“대통령부터 ‘하심’을 가져야 합니다. ‘내가 옳고, 내 지시에 따라야 하는데 왜 안 하냐’ ‘국회가 안 도와줘서 일이 안 된다’고 남 탓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먼저 다른 의견을 존중하는 낮은 자세를 갖고 소통해야 정치가 제대로 될 겁니다. 총선 결과는 그렇게 하라는 국민의 명령이에요.”
그는 유럽에서 정치인들을 만나 보면 ‘정치인’을 권력자로 보지 않고 ‘정치를 하는 직업인’으로 보는 것이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정치인이 남보다 우월하다는 생각이 없더라구요. 당연히 지시하거나 특혜를 받아야 한다는 의식도 없고요. 그저 딴 사람은 생업에 종사하느라 정치를 못 하니까 대신 직업으로 정치를 하는 사람이 바로 정치인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정치인과 일반 국민이 수직적 상하관계가 아닌 수평적 관계가 되는데 우리나라도 그렇게 됐으면 합니다.”
이달 말 주지 임명 1년을 맞는 그는 전임 주지인 원산 스님이 시작한 불사를 하나씩 마무리 짓고 있다. 절과 너무 가깝게 붙어 있어 선원은 수행 정진에 집중할 분위기를 만들어주고자 멀리 옮기고 가람 배치도 다시 정리할 예정이다. 또 새로 짓고 있는 스님들 숙소에 외부 주요 인사가 와서 머물 수 있는 방도 마련하기로 했다. 다만 요양병원은 건물 짓는 것 외에도 운영 예산이 많이 들어 일단 3년간 유보했다. 이 불사들을 마무리 지으면 그가 구상한 ‘공연장 설립’에 나설 예정이다.
“흔히 새로 소임을 맡으면 남이 하던 것은 안하고 내 것부터 하겠다고 나서는 경우가 많은데 그건 낭비예요. 모든 게 원만히 마무리될 수 있도록 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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