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진호 어문기자의 말글 나들이]제비 생각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4월 19일 03시 00분


코멘트
손진호 어문기자
손진호 어문기자
음력 3월 초순에는 우리나라를 찾아온다는 제비. 그렇지만 요즘 도심에서는 거의 자취를 감췄다. 지지배배…지지배배…, 지절대는 그 소리가 그리워지는 요즘이다.

제비 하면 새만 있는 게 아니다. ‘인간 제비’도 있다. ‘제비족’의 인상은 좋지 않지만 1989년 방영된 ‘왕룽일가’에서 “예술하자(춤추자)”며 여인네들을 등치던 제비족 ‘쿠웨이트 박(최주봉)’은 나름 귀엽기도 했다. 하지만 제비로선 여간 분통 터질 노릇이 아니다. 새끼들을 굶기지 않으려 쉴 새 없이 벌레 등을 잡아 먹이는 자신을 제비족과 관련지으니 말이다.

‘제비족.’ 유흥가를 전전하며 돈 많은 여성에게 붙어사는 젊은 남자를 말한다. 이 말, 어디서 왔을까. 우선 ‘제비’의 외모에서 왔다는 설이다. 몸매가 매끈하고 보기 좋은 사람을 ‘물 찬 제비’라고 하듯 제비족도 춤 솜씨가 빼어나고 매너도 좋으니 그럴듯하다. 또 하나는 일본에서 여자에게 빌붙어 사는 젊은 남자를 ‘제비(燕·쓰바메)’라고 부른 데서 온 것으로 본다(조항범, 정말 궁금한 우리말 100가지). 일본의 ‘쓰바메’나 우리의 ‘제비족’이나 있어서는 안 될 인간인 건 마찬가지다.

제비의 서러움은 이뿐 아니다. 혹시 연과(燕과), 연소(燕巢), 연와(燕窩)라는 말을 들어보셨는지. 모두 ‘제비집’을 뜻하는 한자어다. 하나같이 뜻을 파악하긴커녕 읽기도 만만찮다. 이 어려운 한자어는 다 올라 있는데 정작 알기 쉬운 제비집은 표제어에 없는 게 우리 사전이다. 그런가 하면 제비꽃을 일상적으로 이르는 말로 오랑캐꽃을 올려놓고 있다. 제비꽃이라는 예쁜 이름을 쓰면 어디 덧나나. ‘제비추리’라는 말은 제비와는 전혀 관련이 없다. 소주 안주로 많이 구워 먹는, 소의 안심에 붙은 고기다. 이를 ‘제비초리’로 잘못 아는 사람도 있지만 제비초리는 뒤통수나 앞이마의 한가운데에 골을 따라 아래로 뾰족하게 내민 머리털을 뜻하니 번지수가 영 다르다.

그런가 하면 가슴 아픈 제비도 등장했다. 집 없이 떠돌면서 구걸하는 북한의 유랑자를 일컫는 ‘꽃제비’다. 북한이 이들의 존재를 부인해선지 이 말은 조선말대사전 등에 올라 있지 않다.

참, ‘꾀다’의 잘못으로 묶여 있던 ‘꼬시다’도 당당히 표준어가 됐다. 언중이 ‘꾀다’ ‘꼬이다’ 같은 표준어 대신 말맛이 좋은 ‘꼬시다’를 입길에 더 많이 올린 결과다.
 
손진호 어문기자 songbak@donga.com
#제비#인간 제비#제비족#왕룽일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