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비 하면 새만 있는 게 아니다. ‘인간 제비’도 있다. ‘제비족’의 인상은 좋지 않지만 1989년 방영된 ‘왕룽일가’에서 “예술하자(춤추자)”며 여인네들을 등치던 제비족 ‘쿠웨이트 박(최주봉)’은 나름 귀엽기도 했다. 하지만 제비로선 여간 분통 터질 노릇이 아니다. 새끼들을 굶기지 않으려 쉴 새 없이 벌레 등을 잡아 먹이는 자신을 제비족과 관련지으니 말이다.
‘제비족.’ 유흥가를 전전하며 돈 많은 여성에게 붙어사는 젊은 남자를 말한다. 이 말, 어디서 왔을까. 우선 ‘제비’의 외모에서 왔다는 설이다. 몸매가 매끈하고 보기 좋은 사람을 ‘물 찬 제비’라고 하듯 제비족도 춤 솜씨가 빼어나고 매너도 좋으니 그럴듯하다. 또 하나는 일본에서 여자에게 빌붙어 사는 젊은 남자를 ‘제비(燕·쓰바메)’라고 부른 데서 온 것으로 본다(조항범, 정말 궁금한 우리말 100가지). 일본의 ‘쓰바메’나 우리의 ‘제비족’이나 있어서는 안 될 인간인 건 마찬가지다.
그런가 하면 가슴 아픈 제비도 등장했다. 집 없이 떠돌면서 구걸하는 북한의 유랑자를 일컫는 ‘꽃제비’다. 북한이 이들의 존재를 부인해선지 이 말은 조선말대사전 등에 올라 있지 않다.
참, ‘꾀다’의 잘못으로 묶여 있던 ‘꼬시다’도 당당히 표준어가 됐다. 언중이 ‘꾀다’ ‘꼬이다’ 같은 표준어 대신 말맛이 좋은 ‘꼬시다’를 입길에 더 많이 올린 결과다.
손진호 어문기자 songba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