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한국인의 초상’

  • 동아일보

27개 에피소드에 담은 우리 모습

‘한국인의 초상’에서 지하철에서 자리를 차지하는 데 열을 올리는 한국인들의 모습. 국립극단 제공
‘한국인의 초상’에서 지하철에서 자리를 차지하는 데 열을 올리는 한국인들의 모습. 국립극단 제공
12일 막을 올린 국립극단의 신작 ‘한국인의 초상’은 올봄 연극계의 기대작 중 하나였다. 지난해 ‘조씨 고아, 복수의 씨앗’으로 동아연극상 대상 및 연출상을 거머쥔 국립극단과 고선웅 연출이 다시 손을 잡은 작품이기 때문이다.

‘한국인의 초상’은 여느 연극과는 사뭇 다르다. 이야기의 기-승-전-결은 찾아볼 수 없고, 한국인의 생활과 한국 사회를 보여주는 27개의 에피소드가 개연성 없이 옴니버스 형식으로 펼쳐진다. 하지만 극이 관객에게 전달하려는 주제는 명확하다. ‘오늘날, 한국인의 모습은 무엇인가.’

‘출근길 지옥 같은 지하철,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않는 사람들, 불륜을 즐기는 중년, 종교에 의지하는 사람들, 카카오톡으로 해고 통보를 받은 실업자, 아이를 낳자마자 학대하며 쓰레기통에 버리는 부모, 떼로 다니며 폭력을 일삼는 일진들, 여성 혐오에 빠진 사람들….’ 누구나 한 장면쯤은 ‘내 이야기’라며 공감하게 된다. 내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주변 사람들이 겪은 일이거나 적어도 한 번쯤 뉴스에서 접한 한국인의 자화상들이 소재다. 이렇다 보니 관객은 85분간의 러닝타임 내내 극에 몰입하며 울고 웃게 된다.

극은 ‘헬조선’이라 불리는 한국 사회를 적절하게 담았다. 하지만, 극 후반부에선 갑자기 작품의 색깔이 180도 바뀐다. 버스 기사인 한 노인이 ‘해(sun) 보는 거야’라고 외치며 희망을 이야기하고, 버스에 탄 승객들도 ‘해(do)보는 거야’라고 긍정의 응답을 보낸다. 보통의 연극이라면 갑작스러운 분위기 전환 장면이 어색할 만도 한데, ‘과장’과 ‘비개연성’을 무기로 한 이 작품에서는 되레 ‘매력’으로 다가온다. 곱씹어볼수록 연구 대상인 작품이다. 28일까지 국립극단 소극장 판, 전석 3만 원. 1644-2003

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국립극단#한국인의 초상#연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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